부모님을 개 도우미로 쓰지 말라!
부모님을 개 도우미로 쓰지 말라!
  • 배소일 기자
  • 승인 2020.04.01 12:54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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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성을 살아계신 부모님께!

젊은 여인 몇이 공원 벤치에 앉아 데리고 나온 애완견 자랑에 입이 마른다. 개를 호텔(Pet Hotel)에 맡기고 휴가 떠날 참인데, 눈치도 빠르고 너무 영특해서 여행 눈치를 채더라고 온갖 수다를 떤다. 바라보던 노인은 긴 한숨 내쉰다.

변두리에 사는 노인댁은 머지않아 서울집으로 올라오라는 아들의 연락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다. 아들집에 다녀오면 사람들은 남의 속도 모르고 어떻게 지내다 왔냐고 묻곤 한다. 차마 개 봐주고 왔다는 말은 못하고 그냥 얼버무린다. '큰 호강이라도 받다가 내려온 줄로 알았겠지만..'

아들 내외는 결혼한지 8년이 지나도록 손주도 낳지 않고 개새끼를 제 자식 돌보듯, 갖은 정성을 다 들인다. 노인은 작년에도 보름간 개와 단둘이 먹고 자고 운동시키는 보국대를 해주고 돌아왔다. 아파트 현관 앞에 세워둔 개 유모차를 보면서 다시는 아들 집에 오지 않겠다는 다짐도 하면서.

평소 전화 한 통 없는 아들 내외지만 매년 휴가나 해외여행을 떠날 때면 노인댁 전화벨은 귀가 따갑다.

아들집에 도착하면 며느리는 시어미에게 개 돌보기 교육부터 시작한다. 해피는 매일 목욕을 시켜야 하고, 해피 식사는 노화 방지나 면역력 향상을 위해 아침에는 유기농 오리고기를, 저녁에는 닭고기를 먹이라는 메모를 준다.

“어머니! 해피는 보통 개가 아니에요. 치와와라고 300만원 주고 데려왔어요, 저보다 저이가 해피를 더 사랑해요. 우리 없는 동안 신경 좀 써주세요. 저녁에는 공원에 나가 산책을 꼭 시켜야 하고요.“

‘허,,, 어미에게는 용돈 10만원도 벌벌 떨면서 개새끼가 뭐라고 쇠고기에 오리고기냐!’ 못마땅하지만 내심일 뿐, 주구장창 개소리에 불평 한 번 못해 봤다.

‘무슨 팔자가 개새끼만도 못 한 거지?’ ‘개 값이 비싼들 부모보다!’ ‘제 부모는 자장면에, 골방에서 재우고, 개는 유기농 오리고기 쇠고기에, 호텔에서 자게 하고..’

개 산책 시키고 돌아오니 전화벨이 울린다.

"엄마! 여기 하와이야! 해피 산책하고 목욕시켰어? 밥도 잘 먹고, 잘 놀아? 오늘 아침에는 유기농 오리고기 먹였지? 엄마! 엄마! 내 말 잘 들리지? 요즘 해피가 컨디션이 안 좋으니까 해피 방 에어컨은 26도로 맞춰서 켜줘, 해피는 큰소리치면 경기하는 거도 알지!“ 어미 안부는 묻지도 않고 그저 해피 해피만 찾는다.

지난 여름이 떠오른다. 치와와가 몸살이라며 오밤 중에 허둥지둥 동물병원에 다녀와서는 ”우리 해피가 영양실조에 운동 부족이래“라던 아들이, 어미 속이 불편했을 때는 ”엄마는 과식해서 그래. 아침에 동네 병원에 가봐!“라고 핀잔 받았다. 노인은 ’뭔 과식을 해? 먹은 건 찬밥에 김치밖에 없다‘고 속울음 삼키기도 했다.

”부모는 식구 중에 순번이 개 다음으로 맨 꼴찌다“라는 농담같은 진담도 있지만, 일부 사람 사이에서 개가 부모님 이상으로 귀한 대접 받는 세상이 개탄스러울 뿐이다.

부디 그 정성으로 부모님을 먼저 섬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