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Sri Lanka), 찬란한 문화의 도시에 가다④
스리랑카(Sri Lanka), 찬란한 문화의 도시에 가다④
  • 임승백 기자
  • 승인 2020.03.30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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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로나루와(Polonnaruwa)는 도시 전체가 고대 유적으로 뒤덮인 거대한 전람회장을 방불케 한다. 아누라다푸라(Anuradhapura), 칸디(Kandy)와 함께 스리랑카(Sri Lanka)의 문화 삼각지대를 이루고 있는 폴로나루와 고대 도시(Ancient City of Polonnaruwa)는 유네스코(UNESCO)가 선정한 세계 문화유산이다.
12세기에 지어졌다는 폴로나루와 왕궁터(Vejayanta Pasada)는 파라크라마바후 왕의 궁전으로써 목욕탕, 정원, 집회소(Chamber) 등 왕궁으로서의 면모를 잘 갖추어져 있다. 임승백 기자
폴로나루와 왕궁터(Vejayanta Pasada)는 파라크라마바후 왕의 궁전으로서 목욕탕, 정원, 집회소(Chamber) 등 왕궁으로서의 면모를 잘 갖추고 있다. 임승백 기자

여행 첫날을 가급적 여유롭게 보내려던 생각과는 다르게 매력적인 유적과 풍광을 즐기느라 빡빡한 하루를 보냈던 것 같다. 아침에 몸이 찌뿌둥하였지만, 차를 마시며 어제의 여행 이야기를 하다 보니 감흥이 다시 떠오르며 몸이 한층 개운해진다. 여행 이야기가 끊이지 않자 옆에서 듣고 있던 아셀라가 "오늘 가는 폴로나루와(Polonnaruwa)는 더 많은 추억을 남길 수 있다"고 귀띔을 해준다.

폴로나루와 고대 도시(Acient City Of Polonnaruwa)는 스리랑카 중북부에 있는 도시로서 브라만교(Brahmanism : 고대 인도에서 베다 경전을 근거로 성립된 종교)를 신봉하였던 촐라(Cholas) 왕조에 의해 세워졌으며, 12세기 신할라(Sinhala) 왕조의 파라크라마바후 1세(Parakramabahu Ⅰ, 1123~1186) 때 전성기를 맞이하면서 많은 유적을 남겼다고 한다. 신할라 왕조의 유적과 브라만교의 유적이 서로 어우러져 찬란했던 고대 전원도시로서의 품격을 더해준다. 폴로나루와의 유적 전부를 구경하려면 몇 달이 걸릴지 모른다고 현지인들은 말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유적이 넓게 퍼져 있어 대부분의 여행객은 자전거나 승용차 등 다양한 교통수단을 이용하여 여행을 즐긴다고 한다. 다행히도 우리는 아셀라의 멋진 승용차를 타고 박물관을 시작으로 폴로나루와의 보물 여행을 떠난다.

박물관에서 10여 분 거리에 있는 폴로나루와 왕궁터(Vejayanta Pasada)는 12세기에 지어진 파라크라마바후 왕의 궁전으로 40개의 방과 함께 목욕탕, 정원, 집회소(Chamber) 등 왕궁으로서의 면모를 잘 갖추고 있는 유적지이다. 캄보디아의 앙코르 와트(Angkor Wat)보다 규모나 섬세함이 다소 떨어진다고 하지만, 나름 아담하면서도 고풍스러운 멋은 그에 못지않은 것 같다.

왕궁터 옆에 있는 바타다게(Vatadage)는 원형의 석조사원이다.  원형을 나타내는 ‘Vata’와 치아를 뜻하는 ‘Da’ 그리고 사원이라는 의미의 ‘Ge’가 합쳐진 단어이며 고대연대기 ‘Culavamsa’는 부처 치아를 보관하기 위해 원형 석조 사원을 지었다고 되어 있다. 폴로나루와의 바타다게는 부처님의 치아나 보시 그릇을 보관하기 위해 지어진 것이 아니냐고 추정을 한다. 이 원형 사원은 정교한 석조 조각으로 장식된 두 개의 석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아래 석단은 북쪽으로 난 문으로만 출입할 수 있고 상부의 석단은 4개의 문마다 불상이 앉아 있는 독특한 건축물이다. 사원 전체가 부처님과 관련된 문양이나 조형물로 이루어져 있어 불교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금세 옷깃을 여미며 합장을 하게 된다.

원형 사원인 바타다게(Vatadage)의 상부 석단에 있는 불상. 임승백 기자
원형 사원인 바타다게(Vatadage)의 상부 석단에는 4개의 문마다 불상이 앉아 있다. 임승백 기자

친구가 불상을 향해 절을 하자 신기했는지 서양인들은 연신 사진을 찍어댄다. 맨발로 불상 앞으로 다가가던 한 무리의 관광객들은 뜨거운 바닥 때문에 팔짝팔짝 뛰고 난리다. 그 모습이 우스꽝스러운지 흉내도 내고 웃어대며 한바탕 난장판이 되자 관리인이 놀라서 달려와 조용히 하라며 주의까지 준다.

원형사원보다는 다소 한산한 란콧 베헤라(Rankoth Vehera)는 더위를 피해 그늘에 누워 파란 하늘을 향해 치솟은 첨탑을 바라보며 상념에 빠지고 싶은 곳이다. 니샨카 말라(Nissanka Malla)에 의해 지어졌다는 란콧 베헤라는 금(Gold)으로 치장한 뾰쪽한 사리탑이라는 의미를 지닌 지름 170m, 높이 33m의 벽돌로 지어진 원형 사리탑이다.

금으로 된 뾰쪽한 사리탑이라는 의미의 란콧 베헤라(Rankoth Vehera) 전경. 임승백 기자
금으로 장식된 뾰쪽한 사리탑이라는 의미의 란콧 비하라(Rankoth Vehera) 전경. 임승백 기자

합장을 한 채로 사리탑 주위를 돌고 있을 때 어디선가 음악 소리와 함께 행렬 무리가 갈 비하라(Gal vihara) 사원으로 향하고 있다. 흥미롭고 신기하기도 하여 행렬 뒤를 따라 사원 안으로 들어간다. 그들은 사원 마당 뜰을 한 바퀴 돌고선 불상 앞에 둘러앉아 서로 실을 잡고 의례를 치른다. 공양 시간인지 아니면 무슨 의례인지 모르지만 한 상 잘 차려진 제단을 향해 스님들이 바삐 움직이는 모습이 근엄하기까지 하다.

갈 비하라(Gal Vihara) 석굴 사원에서 의례를 치르고 있다. 임승백 기자
스님들이 갈 비하라(Gal Vihara) 암석 사원에서 의례를 치르고 있다. 임승백 기자

갈 비하라(Gal vihara) 사원은 암석 사원이다. 사원 내에는 큰 화강암 바위에 부처님이 새겨진 4개의 암석 부조와 입불상이 있으며 입불상 옆에는 14m에 이르는 열반의 와불상이 있다. 특히 와불상은 오른쪽 팔을 머리에 받치고 왼쪽 팔은 몸과 허벅지 위에 편안하게 뻗고 있는 열반상을 묘사하고 있어 사원의 신비함을 더해 준다.

불상을 향해 절도 하고 시주전에 시주를 하는 것을 본 노스님이 우리의 모습이 기특했는지 다가와 불상에 관해 설명해준다. 누워 있는 불상의 베개에는 혀를 내민 놈이 있다고 자세히 보란다. 열반의 세계를 나타낸다고 한다. 인간에게는 눈, 코, 입, 귀, 머리라는 다섯 가지의 악마가 있으며 모든 번뇌는 이 다섯 가지에서 나온다고 한다. 다섯 가지 악마를 떨쳐버려야만 비로소 열반의 세계에 들어간다고 한다.

갈 비하라(Gal Vihara) 암석 사원에 있는 열반에 든 불상. 임승백 기자
갈 비하라(Gal Vihara) 암석 사원에 있는 열반에 든 불상. 임승백 기자

설명을 듣고 다시 바라본 부처님은 편안하고 인자하기 그지없다. 해석이 엉터리면 어떻고 노스님의 설명이 틀리면 어떤가? 그냥 멋진 말씀이면 그만이지. 감동한 친구가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스님에게 ‘달러($) 시주’를 하고선 고개를 숙여 합장한다. 노스님은 안전하고 즐거운 여행을 하라며 덕담까지 전해준다.

마치 부처님의 세상에 있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혀 있을 즈음 하늘에는 어둠이 찾아들기 시작한다. 이 나라가 왜 소승불교의 근원지이며 불교의 나라인지를 알 수 있는 멋진 여행이었다. 사람들의 버킷리스트(Bucket List)에 스리랑카가 반드시 꼽히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듯하다. 다시 한번 더 오고 싶은 곳이다. 갑자기 눈에 익은 건물 앞에 차가 세워지고 친구가 건물 안으로 급히 뛰어 들어가더니 잠시 후 스리랑카 전통 술인 '아락(Arrack)'을 들고나온다. 그렇게 찾아온 담불라의 마지막 밤은 아락과 함께 취해가는 여행 이야기로 깊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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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로나루와 왕궁터(Vejayanta Pasada)에서 만난 작은 인연

폴로나루와 궁전 앞에서 만난 한국어를 배우는 스리랑카 청년. 임승백 기자
폴로나루와 왕궁터에서 한국어를 배운다는 스리랑카 청년을 만나다. 임승백 기자

더위를 식히기 위하여 나무 그늘에 앉아 물을 마시고 있을 때 수상한 청년이 슬며시 다가온다. ‘이놈이 왜 나에게 다가오지? 나는 배낭여행 경험이 아주 많은 놈이니까 엉뚱한 짓 하지 마라!’ 배낭을 껴안으며 경계를 풀지 않는다.

청년은 내가 한국인임을 알고는 대뜸 한국말로 인사를 하며 관심을 보인다. 순간 나의 의심은 관심으로 바뀌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한국어 학원에 다닌 지 3개월 정도가 되었다는 청년은 친구와 이곳에 자주 나와 한국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한국어 실력이 많이 는다며 좋아한다. 한국 문화도 좋아하지만, 자신뿐만 아니라 친구들도 한국에서 일하는 게 꿈이라며 가방에서 한국어 교재를 끄집어내어 자랑한다.

‘이 녀석 봐라. 기특하네’ 한국어 교사 자격증이 있는 나는 한국어를 배우는 것에 대해 칭찬해주며 즉석에서 한국어 강의를 펼친다. 한참을 따라 하고 묻고 하던 청년은 자기가 배우는 학원의 선생보다 훨씬 잘 가르친다며 90도로 인사를 하고선 친구들에게 달려가 자랑을 한다. 뛰어가는 청년의 뒷모습이 어찌나 짠한지 다시 불러 학원비에 보태라며 몇 푼의 돈과 초콜릿을 건넨다. 반드시 꿈을 이루라고 말은 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 이국땅으로 갔었던 우리네 아버지들이 떠올라 미안하고 씁쓸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학원비도 만만찮을 텐데 관광지까지 와서 한국어를 배우려는 녀석의 열정과 꿈을 반드시 이루겠다는 눈빛이 계속 아른거린다.

일행인 친구가 한층 상기된 표정을 하고선 왕궁터에서 내려오자 아셀라는 말없이 슬며시 엄지를 치켜세우며 나에게 웃음을 보낸다. 어디 아프냐며 장난을 걸어오는 친구에게 ‘예쁜 여자를 보고 마음이 아프다’라고 얼버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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