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 산책] 박균호 '수집의 즐거움'
[장서 산책] 박균호 '수집의 즐거움'
  • 김대영 기자
  • 승인 2020.03.25 22:38
  •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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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수집 이야기

다양한 분야에서 수집 활동을 하고 있는 수집가와 수집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취미서이다. 지은이 박균호는 영남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후 동대학원에서 영어교육학을 전공하여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다.

수집이라고 하면 언뜻 떠오르는 것이 우표 수집이나 화폐 수집이다. 이 책에는 화폐 수집가가 나온다 .

화폐 수집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현행 화폐부터 모으기 시작한다. 현재 사용할 수 있는 지폐의 종류는 몇 종일까? 정답은 무려 29종이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지폐지만 이렇게 많은 종류의 지폐가 사용 가능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1962년 6월 10일, 즉 화폐개혁 이후에 발행된 ‘원’ 표기의 모든 지폐는 모두 사용 가능하다.

국내 최고가 지폐는? 국내에서 유통된 화폐 중에서 최고가로 거래된 지폐는 ‘한국은행 신 100환’ 황색지폐다. 1953년 제2차 긴급통화조치를 단행할 때 한국은행은 미국에서 제조한 화폐를 국내에서 제조한 화폐로 바꾸고자 1953년 3월 7일 발행한 신 10환과 1953년 12월 18일 발행한 신 100환 권을 한국조폐공사에서 제조했다. 앞면에는 이승만 대통령, 뒷면에는 독립문이 있는 지폐다.

이 두 지폐는 제조는 국내에서 했지만 미국에서 수입한 황색의 조폐지를 이용해서 제조했다. 그러나 불과 몇 개월 뒤부터는 미국산 황색이 아닌 백색의 국산 용지로 발행했다. 그러니까 미국에서 수입한 황색 조폐지로 제조되었고 발행 기간이 불과 몇 개월이라는 높은 희소성 때문에 최고가의 명예를 차지한다. 황색지와 백색지는 인쇄된 색이 완전히 달라서 육안으로도 쉽게 구분이 된다.

황색지폐의 가격은 현재 미사용 상태로 거래되는 것이 없을 정도로 희귀하다. 거의 미사용 상태에 가까운 것이 1천500만 원 정도이고 미사용 상태로 존재한다면 2천만 원이 넘을 것이다. 지폐의 상태 중에서 가장 낮은 병품이나 낡아서 찢어진 보품이라도 40~50만원에 거래된다.

화폐 수집가들이 말하는 고가 희귀본 4대 천황의 지위는 지폐와 동전이 각각 2개씩 공평하게 차지한다. 지폐의 희귀본은 ‘한국은행 개 갑 100환(일명 모자상)’과 ‘한국은행 개 500환(일명 세종 500환)’이며 동전으로는 ‘1998년 500원’ 동전과, ‘1970년 적동화 10원’ 동전이다.

‘한국은행 개 갑 100환’의 명칭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겠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만 원권은 6번째 권종이다. 그런데 처음 발행한 만 원권을 1차 만 원권, 다음 것을 2차 만 원권으로 명칭을 붙이지 않고 가나다라의 순서에 입각해 처음 발행한 만 원권은 일련번호가 ‘한국은행 가 만 원권’이다. 자연스럽게 다음 모델은 ‘한국은행 나 만 원권’이 되며 가장 최신 모델이 6번째 만 원권이니까 ‘한국은행 바 만 원권’이 정식 명칭이다. 그러면 ‘한국은행 개 갑 100환’에서 ‘개’의 의미는 무엇일까? 개는 고칠 개(改)의 의미로 ‘개정된 갑’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두 번째로 나온 갑 권이고 ‘한국은행 개 갑 100환’은 결국 처음 발행된 100환 지폐의 개정된 모델이라는 뜻이 되겠다.

‘한국은행 개 갑 100환’은 일명 ‘모자상’이라고 불리는데 그 이유는 말 그대로 앞면에 ‘어머니와 아들’의 그림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모자상’은 1962년 5월 16일에 처음 발행되었다가 1962년 6월 10일에 ‘화폐 개혁’에 의해 유통 정지가 된 비운의 지폐다. 즉 발행을 시작한 지 겨우 25일 만에 유통 정지된 최단명 지폐인데 이 점이 이 화폐가 희귀한 이유다. 이 지폐는 일련번호가 없이 판 번호로 인쇄되었으며 유통 중지가 될 때까지 1, 2, 3 번만이 세상에 나왔다. 지폐가 사용된 흔적이 없는 상태라면 200만 원 정도인데 유통 정지가 되기 직전에 발행된 판번호 3번은 500만 원을 호가한다.

‘한국은행 개 500환(일명 세종 500환)’은 지폐 수집의 꽃이라고 불린다. 1961년 4월 19일에 발행을 개시해서 1962년 6월 10일에 유통이 정지되었고 발행기간은 1년 2개월 정도다. 발행량이 적고 발행 기간이 짧아서 온전한 상태로 보관된 것이 없으므로 수집가들에게 인기 있는 권종이다. 일반적인 미사용권이 400~500만 원 정도인데 그보다 상태가 더 완벽한 등급인 68등급(지폐 등급은 4등급 이하에서 70등급까지 있다)은 무려 700~800만 원까지 치솟는다.

이제 동전으로 넘어가자.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500원 동전은 1982년부터, 100원은 1970년부터 제작되었는데 연도별로 발행량이 천차만별이다. 평균적으로 6천400만 개 정도 제작되는데 1987년은 극히 소량인 100만 개가 발행되었고 가장 많기로는 2000년도의 경우 1억 2천800만 개가 발행되었다. 그런데 1987년도보다 적은 수량이 발행된 해가 1998년이었다.

엄밀히 말해서 1998년에는 500원 주화가 제작되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 왜냐하면 1998년은 사람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유통 주화’는 전혀 제작되지 않았고 다만 일종의 기념품인 ‘민트’만 8천 개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민트라는 것은 CD 케이스만 한 상자에 1원부터 500원까지 6종의 동전 컬렉션을 모아서 포장한 것이다. 모두 액면가로는 666원에 지나지 않는다. 1998년도 민트에 포함된 500원 동전의 가격은 120만원 정도이다.

‘1970년 적동화’는 대체 어떤 동전인가? 10원 주화는 1966년에서 1970년까지는 적동(동 88%, 아연 12%)으로, 그 이후에는 황동(동 65%, 아연 35%)으로 제작되다가 현재의 좀 더 작은 10원 동전에 이른다. 그러니까 10원 동전은 세 가지 종류가 존재하는데 문제의 1970년에는 황동과 적동이 모두 생산되었다. 즉 1970년에는 적동화로 제작되다가 황동화로 교체된 시기라서 그해의 초반기에 제작된 적동화는 그 수량이 극소수여서 수집가의 표적이 되었고 구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1966년~1967년 사이에 제작된 적동화는 더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희소성이 낮은 탓에 몇 만 원에 지나지 않는 반면 1970년 적동화는 희소성이 있어서 4대 천황이 되었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1970년 적동화는 200만 원에 거래된다.

‘똥돈’도 수집 대상이다. 똥돈이라는 민망한 별명을 가진 화폐는 1983년 6월 11일 발행 개시한 ‘나 천 원권’(2차 천 원, 현재 발행되는 직전 화폐)을 말한다. 1983년 이 화폐가 처음 발행되었을 때 돈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소문이 퍼졌다. 소문은 사실이어서 시궁창 냄새 같은 악취가 나는 지폐였다. 소문이 소문인지라 사실관계를 조사했고, 미국에서 배로 몇 달에 걸쳐 가져온 인쇄용 잉크가 상한 냄새의 원인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관계 당국이 전량 회수에 들어갔지만 이 조치에 비협조적인 사람이 많았던지라 신권과 교환되지 않고 버젓이 보관된 분량도 많았다. 이때 회수되지 않고 살아 남은 ‘나 천 원권’은 똥돈이라는 명칭으로 화폐 수집 시장에서 거래가 되기 시작했다. 당시 똥돈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주식 시장에서 삼성전자 주식을 가지고 있는 것과 비견되는 행운을 누렸다. 일련번호 앞자리가 가가가, 가가나, 가가다로 시작되는 것이 정식 똥돈이라 한다.

‘영제권’은 영국에서 제조한 지폐를 말한다. 1962년 6월 10일 화폐 개혁을 단행할 때 전격적으로 사용되었다. 영국에서 미리 화폐를 제작해서 화폐 개혁과 동시에 국내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물론 영제권이 국내에 들어오기 전날까지도 철통 보안이 유지되었다. 화폐 개혁이 단행되기 전까지는 미국에서 제작한 미제, 즉 거북선 도안의 지폐 5종과 한국조폐공사에서 제조한 환권이 통용되었다. 영제권은 1원, 5원, 10원, 50원, 100원, 500원으로 총 6종이다.

영제권이 수집가의 표적이 되는 이유는 지폐의 색깔이 예쁘고 무엇보다 지폐의 크기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화폐는 가로의 길이가 다를 뿐인데 당시의 영제권은 가로 세로의 길이와 높이가 모두 달랐다. 영제권 100원 지폐에는 독립문 그림이 새겨져 있었는데 ‘독립문’이 아닌 ‘득립문’이라고 오타가 난 상태로 유통이 되었다. 우리나라가 아닌 외국에서 제조되었고, 화폐 개혁을 전격적으로 시행하느라 급하게 제작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실수라고 추측한다.

우리가 화폐 수집가들에게서 배워야 할 점은 돈을 다루는 방법과 태도이다. 수집가들은 반지갑보다는 장지갑을 주로 사용한다. 반지갑은 지폐가 반으로 구겨지기 때문이다. 지폐를 지갑에 수납할 때는 지폐의 방향을 일치시킨다. 모든 지폐를 앞면으로 통일시켜서 수납한다. 그리고 고액권 순으로 정렬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른 사람에게서 받은 지폐는 항상 일련번호를 꼼꼼히 살핀다. 이렇게 하다 보면 일련번호 1111111이나 0000001과 같은 수집의 대상이 되는 지폐를 발견하는 횡재를 만나기도 한다. 천 원권 지폐가 10만 원의 가치를 가진 희귀본인 경우도 있기 때문에 잔돈을 받으면 항상 꼼꼼히 확인한다. 거스름돈으로 동전을 받아도 반드시 발행 연도를 확인한다.

이 책에는 화폐 수집가 외에 영화 피규어 수집가, 유명인 피규어 수집가, 틴토이 수집가, 연필 수집가, 프로야구 기념품 수집가, 청첩장 수집가, 괴담 수집가, 영상 장비 수집가, 코카콜라병 수집가, 책 수집가, <드래곤볼> 수집가, 농구화 수집가, 스타벅스 텀블러 수집가, 미술 도구 수집가, 만년필 수집가, 엔티크 용품 수집가, 러시아 음악 수집가를 소개하고 있다.

일본 만화가 토리야마 아키라가 그린 <드래곤볼> 수집가 한경수는 수집을 계기로 여고생을 만나 결혼하고 영화사에 취직하는 행운을 얻었다. 기자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잊고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20여 전에 기자는 아들과 드래곤볼을 같이 보고, 나중에는 책이 나올 때마다 직접 구입해서 42권을 모았다. 기자가 K초등학교에 근무할 때 후배인 여교사에게 드래곤볼 42권을 다 가지고 있다고 자랑했더니 자기 아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면서 빌려달라고 하였다. 만화책을 빌려주면서 다 읽고 돌려달라고 했다. 그런데 그 여선생님은 중고책 값 정도를 주면서 나에게 책을 샀다고 하였다. 세월이 지나면서 드래곤볼 가격이 자꾸 오르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구하려고 해도 구할 수가 없었다. 지금 드래곤볼 전 42권 세트는 15만원에서 20만원 정도에 거래된다. 그때 드래곤볼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지 않았어야 했다. 후회해도 때는 늦었다.

기자의 수집품은 책 외에 비디오테이프와 CD, DVD 등이 있다. 비디오테이프 900개, DVD 308장, CD 556장을 모았다. 책이 많지 않았을 때는 비디오테이프를 책장에 꽂아서 보관했다. 그런데 집을 방문한 사람들이 옛날에 비디오가게를 했느냐고 자꾸 물어서 무척 창피했다. 그래서 창고, 방구석으로 옮겨가면서 쌓아두다가 지금은 책장 옆, 책상 밑, 서랍장 서랍 속에 보관하고 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무엇인가를 모아왔다. 남자아이들은 구슬과 딱지를 모으고, 여자아이들은 인형이나 예쁜 스티커를 모았다. 좋아하는 것을 모으는 즐거움, 그리고 모은 것들을 늘려가는 기쁨은 누구나 느껴본 적이 있는 희열이다. 수집은 ‘별난 취미’가 아니라 인간이 가진 원초적 본능에 가깝다. 이 책에 등장하는 수집가들 역시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그들이 우리와 다른 것이라면 수집품에 대한 애착이 조금 더 강하다는 것뿐이다. 괴테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수집가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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