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 산책] 데이비드 롭슨 '지능의 함정'
[장서 산책] 데이비드 롭슨 '지능의 함정'
  • 김대영 기자
  • 승인 2020.03.20 19:17
  •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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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당신이 어리석은 실수를 하는 이유와 지혜의 기술

심리학, 신경과학 등의 최신 연구 성과를 토대로 ‘지능의 함정’을 피하고 증거 기반 지혜를 개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 교양심리학 서적이다. 저자인 데이비드 롭슨은 인간의 두뇌와 신체, 행동의 관계를 전문적으로 취재하는 인문·과학 저널리스트이며, 옮긴이 이창신은 전문번역가이다.

이 책은 루이스 터먼(Lewis Terman)의 지능 검사에서 최상위층(IQ 140~192)에 해당하는 ‘흰개미’들이 그다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어서 머리 좋은 사람이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때로는 평균적인 사람보다 실수를 더 많이 하는 사례를 들면서 지능의 함정에 대하여 고찰한다.

DNA 대량복제를 가능케 하는 기술인 중합효소 연쇄 반응(Polymerase Chain Reaction)을 발명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은 캐리 멀리스(Kary Mullis)는 외계인의 존재를 믿고, 점성술에 열광했으며, 에이즈를 부정하고, 인간은 에테르라는 물질을 통해 아스트랄계(Astral Plane)라고 하는 천체계를 돌아다닐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명탐정 셜록 홈스를 탄생시킨 소설가 아서 코넌 도일은 마술사이자 탈출 전문 곡예사인 해리 후디니(Harry Houdini)의 돌아가신 어머니를 부르는 교령회(交靈會, 산 사람이 모여 죽은 사람과 소통하려는 시도)를 개최할 만큼 유령의 존재를 진지하게 믿었다.

1917년에 열여섯 살의 엘시 라이트(Elsie Wright)와 열아홉 살의 프랜시스 그리피스(Frances Griffith)라는 두 여학생이 웨스트요크셔 코팅글리의 계곡 주변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여러 요정의 사진을 찍었다고 주장했다. 사실 그 사진은 ‘메리 공주가 선물하는 책(Princess Mary’s Gift Book)’에서 오려낸 것이었다. 코넌 도일은 이 사진을 보고 ‘요정이 나타나다(The Coming of the Fairies)’라는 글을 쓰고, 사람들의 의심을 해명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머리가 뛰어난 사람 중에 편협한 생각 탓에 분별력을 잃은 사람은 그 외에도 많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한 후, 남은 생애 내내, 전자기와 중력을 통합된 하나의 이론(통일장이론)에 집어넣어 우주를 이해하는 더 원대하고 포괄적인 이론을 만들려 했다. 이후 25년 넘게 새 통합이론을 여러 차례 발표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1880년대 말, 최초의 업무용 전구를 생산하던 에디슨은 미국 가정에 전기를 공급할 방법을 찾으려 고심했다. 그의 생각은 안정된 ‘직류(DC)’ 방식의 전력망을 갖추는 것이었지만, 경쟁자 조지 웨스팅하우스(George Westinghouse)는 이미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교류(AC)’를 이용한 더 값싼 송전 방식을 찾아냈다.

에디슨은 교류 방식이 감전사를 더 쉽게 유발한다는 이유를 들어 교류가 너무 위험하다고 주장했으며, 대중이 교류에 등을 돌리도록 흑색선전을 하고, 떠돌이 말이나 개를 감전사 시키고, 법원에 전기의자 개발을 조언했다. 1890년대에 들어서 에디슨은 패배를 인정해야 했고, 그제야 비로소 다른 프로젝트로 관심을 돌렸다.

애플의 공동설립자인 스티브 잡스도 마찬가지로 머리가 비상하고 창의력이 뛰어난 인물이지만, 그는 이따금 위험할 정도로 세상을 왜곡해 인식했다. 2003년에 췌장암 진단을 받은 뒤로는 특히 더했다. 그는 의사의 충고를 무시한 채 약초 치료, 영적 치유, 엄격한 과일주스 다이어트 같은 엉터리 치유법을 택했다. 주변 사람들은 잡스가 암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다고 확신했고, 머리가 워낙 좋아 반대 의견을 죄다 무시한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결국 수술대에 올랐을 때는 이미 암이 치료 불가능한 상태로 번져 있었고, 일부 의사는 잡스가 의사 지시만 따랐어도 지금까지 살아 있었을 거라고 믿었다. 에디슨과 잡스 모두 비상한 머리로 논리적 사고를 하기보다 합리화와 정당화를 하기에 급급했다.

저자는 이 책의 부록에서 지능의 함정에 해당하는 ‘어리석음’의 종류를 열거하고 있다. 고정형 사고방식(fixed mindset), 고착(entrenchment), 그럴듯한 헛소리(pseudo-profound bullshit), ‘뜨거운’ 인지(‘hot’ cognition), 마음 놓침(mindlessness), 메타-건망증(meta-forgetfulness), 모세 착각(Moses illusion), 솔로몬의 역설(Solomon’s paradox), 실용적 어리석음(functional stupidity), 오염된 정신도구(contaminated mindware), 의도한 추론(motivated reasoning), 인지 태만(cognitive miserliness), 자초한 교조주의(earned dogmatism), 재능 넘침 효과(the too-much-talent effect), 전략적 무지(strategic ignorance), 파흐이디오트(Fachidiot), 편향 맹점(bias blind spot), 피터 법칙(Peter principle), 합리성 장애(dysrationalia)이다.

증거 기반 지혜(현실 지혜)를 개발하는 방법의 하나로 벤자민 프랭크린의 ‘심리 대수학(Moral Algebra)’을 들 수 있다. 오늘날 찬반 목록이라 부르는 것과 아주 비슷하다. 어떤 문제를 결정할 때, 종이 한 장을 반으로 나눠 한쪽에는 장점을, 한쪽에는 단점을 쓴다. 그런 다음 장단점 항목을 찬찬히 살피면서 중요도에 따라 번호를 매기고, 중요도가 같은 찬성 하나와 반대 하나를 목록에서 지워나간다. 이렇게 하다 보면 나중에 항목이 남는 쪽이 있다. 하루나 이틀 더 생각해봐도 중요한 장단점이 생각나지 않는다면, 남은 항목을 보고 결정을 내리는 방법이다.

저자는 이 책의 부록에서 ‘심리 대수학’을 포함한 다양한 ‘지혜’의 종류를 열거하고 있다. 감정 나침반(emotional compass), 마음 챙김(mindfulness), 모호함 인내(tolerance of ambiguity), 사전 부검(pre-mortem), 성장형 사고방식(growth mindset), 성찰 능력(reflective competence), 소크라테스 효과(Socrates effect), 외국어 효과(foreign language effect), 유익한 어려움(desirable difficulties), 인식론적 정확성(epistemic accuracy), 인식론적 호기심(epistemic curiosity), 인지 예방 접종(cognitive inoculation), 적극적 열린 사고(actively open-minded thinking), 지적 겸손(intellectual humility), 집단 지능(collective intelligence)이다.

호기심과 성장형 사고방식은 지혜 개발의 중요한 특성이다. 1920년대 말 뉴욕 파로커웨이의 집 실험실에서 리티(Ritty)는 화학실험 세트와 전기 회로를 가지고 놀았고, 현미경으로 자연계를 연구했다. 리티는 스스로도 인정했듯이 학교에서 ‘착한 척하는 아이’였지만, 절대 대단한 아이는 아니었다. 리티는 문학, 그림, 외국어에서 애를 먹었다.

언어 구사력이 약해 학교 IQ 테스트에서 125점을 받았다, 어린 리티는 가정용 백과사전을 닥치는 대로 읽었고, 수학 입문서 시리즈를 보며 곧 독학하는 법을 익혔다. 노트는 삼각법, 미적분학, 해석기하학으로 가득 채워졌고, 직접 문제를 만들어 두뇌를 최대한 활용하는 훈련도 했다. 파로커웨이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물리 동아리에 가입했고, 학교 대항 대수학 리그에도 참가했으며, 뉴욕 대학이 매년 실시하는 수학경시대회에서는 뉴욕시의 모든 학생을 제치고 1등을 차지했다. 이듬해에 그는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 입학했다.

학생들은 나중에 리티의 풀 네임인 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이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물리학자로 거론되는 걸 보게 된다. 양자 전기 역학(Quantum Electrodynamics)을 이해하는 그의 새로운 방식은 아원자 입자(Subatomic Particle) 연구에 대변혁을 일으켰고, 이 연구로 도모나카 신이치로(Sin-Itiro Tomonaga), 줄리언 슈윙거(Julian Schwinger)와 함께 1965년에 노벨상을 받았다. 파인만은 방사성 붕괴에 숨은 물리학을 발견하는 데도 일조했을 뿐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훗날 크게 후회했다.

파인만의 천재성은 물리학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안식년을 얻어 물리학 연구를 쉬고 유전을 연구하던 중에 유전자가 변이를 일으켜 서로를 억제하는 방식을 발견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언뜻 그림이나 외국어에는 서툴러 보였지만, 그는 뒤늦게 그림을 배워 놀라운 재능을 드러냈을 뿐 아니라 포르투갈어와 일본어로 말하고 마야 상형문자를 읽었다. 그림도, 외국어도, 어려서 공부하던 식으로 끈질기게 매달린 결과였다. 이외에도 그는 개미 행동 연구, 봉고 드럼 연주, 라디오 수리에 몰두했다. 1986년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폭발 사고 이후 폭발을 일으킨 엔진 결함을 찾아낸 것도 그의 끈질긴 탐구심 덕이었다.

루이스 터먼의 흰개미들은 처음에는 장래가 촉망됐지만, 그 중 많은 수가 나이 들어서는 ‘내 재능이면 잘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을 느꼈다. 이와 반대로 파인만은 ‘부족한 지능’으로 출발했지만, 그 지능을 가장 생산적인 방식으로 활용하면서 어른이 된 이후에도 계속 사고력을 키우고 확장했다.

호기심과 성장형 사고방식은 파인만 외에도 크게 성공한 많은 사람에게서 공통으로 나타난다. 찰스 다윈은 어렸을 때 그다지 두각을 나타내지 않았고, 자신의 지능을 평균 이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게 분명하다. 그는 스스로에 대해 ‘다른 똑똑한 사람들처럼 대단히 재치 있거나 이해력이 빠르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선생님들과 아버지에게 지적인 면에서는 평균을 밑도는 아주 평범한 아이로 인식되었다. 학창시절의 내 성적을 돌이켜 보건대 당시 내게 장래를 낙관할 만한 유일한 자질이 있었다면 그건 흥미로운 것이면 무엇이든 분야를 가리지 않고 강한 열정을 보이고, 복잡한 주제나 사물을 이해하는 데 큰 즐거움을 느꼈다는 것이다’라고 했다.

다윈에게 지식에 대한 갈증이 없었다면 비글호를 타고 항해하면서 그처럼 고통스러운 작업을 할 수 있었으리라고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그는 즉각적인 부나 명성을 바라지 않은 게 분명하다. 그의 연구는 수십 년이 걸렸고, 이렇다 할 보상도 없었다. 그러나 배움에 대한 욕구가 강해 주변의 교조적 논리를 의심하며 깊이 연구했다.

주변 세상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졌던 다윈은 획기적인 진화 연구 외에도 호기심을 주제로 최초의 과학논문도 썼다. 어린아이들이 어떻게 지칠 줄 모르는 실험으로 주변 세상을 자연스럽게 배워나가는가에 관한 논문이다.

호기심과 성장형 사고방식은 학습을 개선하고 자신을 다그쳐 실패를 극복함으로써 우리 인생의 항로를 바꿀 수 있는, 일반 지능과는 별개인 중요한 정신적 특성이다. 호기심과 성장형 사고방식이 있으면 위험할 정도로 교조적이고 한쪽으로 치우친 사고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지적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하고 싶다면 반드시 키워야 할 필수 자질이다.

캘리포니아 롱비치에 있는 지적 덕목 아카데미(IVA, Intellectual Virtues Academy)는 증거 기반 지혜의 모든 원칙을 적용하려는, 단일 기관으로는 가장 종합적인 시도를 하는 학교이다. 학교의 모든 교실 벽에는 IVA가 좋은 생각, 좋은 배움에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9개 ‘주요 덕목’이 슬로건과 함께 붙어 있다. 9개 덕목은 세 가지 범주로 나뉜다,

1. 시작하기 ① 호기심: 궁금해하고, 깊이 생각하고, 왜냐고 묻는 성향. 이해하고픈 갈증과 탐색하고픈 욕구. ② 지적 겸손: 지적 수준이나 위신에 개의치 않고, 지적 한계와 실수를 기꺼이 인정하는 태도. ③ 지적 자율성: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사고 능력, 스스로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능력.

2. 제대로 실행하기 ① 집중하기: 학습에 기꺼이 ‘개인적으로 참여’하려는 태도. 집중력을 흐트러뜨리는 것을 멀리 한다. 마음을 집중하고 정신을 쏟으려고 노력한다. ② 지적 신중함: 지적 함정이나 실수를 감지하고 그것을 피하려는 성향. 정확성을 중시한다. ③ 지적 치밀함: 적극적으로 설명하려는 성향. 단지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나 쉬운 답에 만족하지 않는다. 더 깊은 뜻을 탐색하고 더 깊이 이해하려 한다.

3. 어려움 극복하기 ① 열린 태도: 기존의 틀을 벗어나 생각하는 능력. 경쟁하는 다른 관점도 공정하고 정직하게 경청한다. ② 지적 용기: 창피함이나 실패 등이 두려워도 생각과 소통을 멈추지 않는 적극적 태도. ③ 지적 고집: 지적 도전과 싸움을 기꺼이 감수하는 태도. 포기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곧장 나아간다.

이 9개 덕목은 IVA 교육 모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든 없는 사람이든, 지능의 함정을 피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갖춰야 하고 점검해야 할 정신 자질이다.

기자는 이 책을 읽고 나서 호기심을 너무 많이 가지는 것은 지적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기자는 어릴 때부터 동화와 소설을 좋아하고, 만화를 배우기 위해 가출한 적이 있으며, 농사를 지으면서 독학으로 기타와 하모니카를 배웠다. 한문은 초등학교 때 삼국지를 읽으면서 익혔고, 고문은 검정고시를 준비하면서 혼자 공부했다. 대학에 다니면서부터 명리학에 관심을 가지고, 교육학, 법학을 전공하였고, 퇴직 후에는 문헌정보학을 공부했다.

교사 시절에는 신선이 되기 위해 단전호흡을 하고, 방학을 이용하여 속리산 기슭에서 선도 수련을 했다. 관리자가 된 뒤에는 불교 공부를 열심히 했고, 야생화 사진을 찍기 위해 온 들판을 헤매고 다녔다(샌프란시스코에 가서도 사진만 찍었다). 헬스클럽에 제대로 다니지도 않으면서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보디빌딩 백과’를 구입하기도 했다.

지금쯤은 작가, 연주자, 만화가, 명리학자, 도사, 불교학자, 사진작가가 되어 있어야겠지만, 어느 한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남아 있는 것은 이것 저것 공부한다고 사모은 책들 뿐이다. 호기심은 많았지만 지속적인 성장형 사고를 하지 않은 탓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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