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렬의 ‘우울증약 한 움큼, 정지된 카드 한 장, 현금 5.800원’
이상렬의 ‘우울증약 한 움큼, 정지된 카드 한 장, 현금 5.800원’
  • 김채영 기자
  • 승인 2020.03.25 07:38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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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렬의 ‘우울증약 한 움큼, 정지된 카드 한 장, 현금 5.800원’

 

회색 빌딩 사이로 어둠의 잔병들이 배회합니다. 열어놓은 창틈 사이로 매화 향이 짙게 스며듭니다. 가까이에 매화군락이 있나 봅니다. 뜻밖입니다. 비정한 도시와 매화 향기, 퍽 다행스러운 조합입니다.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막내입니다. 느닷없이 던지는 말 한마디.

“형, 날 위해 기도해줘”

“지금?”

“응, 전화로”

“참 뜬금도 없다, 너”

사실, 근래 이런 전화가 몇 차례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저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나 지금 바빠, 다음에’. 하지만 이번에는 그러면 안 될 것 같아 도로변에 차를 세웠지요. 막내 동생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주님, 우리 막내 많이 힘든가 봅니다. 불안한 마음 붙잡아주시고, 힘든 상황 당신의 지혜로 잘 이겨내게 하옵소서. 아프지 말고, 엄마 잘 모시고, 운전조심하고...” 기도는 어느덧 잔소리가 되어 버렸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전화 끝목소리에 맥이라곤 하나도 없습니다.

“형, 나, 아버지 계신 곳으로 가고 싶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끊어!”

막내는 수줍음이 많습니다. 여러 사람 앞에서는 입도 뻥긋 못 떼면서 나한테만 용감합니다. 툭하면 전화해서 푸념 질입니다. 형제 중 나와 제일 많이 닮았다는 말을 그는 싫어했지요. ‘형은 착해서 싫어. 그렇게 살아서 싫어, 형처럼 살지 않을거야’라던 막내. 어머니를 모시고, 장가도 안 가고, 중년이 되어버린 내 동생 막내. 돈 벌면 형 집 사준다던, 아직도 돈 못 번 우리 막내.

마지막 통화 후, 하루 지난 시간, 소파에 앉은 채 숨을 거두었습니다. 심장마비. 43세. 나더러 그렇게 몸조심하라던 막내, 저는 살인적인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연이은 사업 실패, 생존능력 부재, 나약한 심성, 이것이 우리가 막내에게 붙여놓은 꼬리표입니다.

천성이 경쟁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만히 놔두면 저 혼자는 잘 놀고 잘 사람, 셈 치는 것보다 흙 만지며 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이런 친구가 막내입니다. 진달래 붉은 산기슭에 둘러싸인 시골 중학교에 다니고 있던 아이를 도시로 불러냈습니다. 엘리트 코스랍시고 도시인의 명찰을 달아놓고, 경쟁에서 이겨보라고, 네 꿈을 펼쳐보라고 냉혹한 사지로 떠밀었습니다. 속병을 앓는지 몰랐습니다. 결국, 자본주의 아성으로부터 추방당해버린 막내, 모든 원인을 한 사람의 중년 남성에게만 돌리기에 세상은 너무 가혹하네요.

소리 내어 우는 것도 사치였던 동생의 유일한 저항은 취기를 빌려 ‘형, 힘들어 날 위해 기도해줘’라는 말밖에요. 그리고 얼음장 같았던 형의 단 답,

‘나 지금 바빠, 다음에’.

휴, 이게 말이 됩니까. 사람들의 아픔 돌아본답시고 같잖은 소리하며 돌아다녔던 그 무심의 시간들이 정작 막내에겐 경각의 시간이었다니.

어머니의 뜻대로 가족끼리만 모여 장례를 치렀습니다. 화장장에서 오열하는 어머니를 지키느라 나는 울지 못했습니다. 도시가 무섭다는 막내의 말이 이제야 생각났습니다. 되도록 도심과 멀리 떨어진, 신작로도 보이지 않는 외진 곳에 막내를 묻었습니다. 돌아오는 길, 격하게 만발한 벚꽃 잎이 터집니다. 슬프도록 곱네요. 버거운 삶 살아내느라, 짊어진 짐 지고 버티느라 올봄 저 꽃잎이 눈에 들어왔겠나 싶어요.

‘참 좋은 날에도 간다, 녀석아.’

운전 중, 꾹 놀러 놓았던 속울음이 터져버렸습니다.

막내의 방, 문을 열었습니다. 마지막 사투를 벌였던 현장입니다. 이렇습니다. 책상 위 모니터 가장자리에 빼곡히 붙은 포스트잇, 거래처, 거래용어들, 이름들, 숫자들, 치열했던 그의 최후 순간들, 침대 위에 갈색 잠바 하나, 주머니 속 소지품 셋.

우울증약 한 움큼, 정지된 카드 한 장, 현금 5.800원.

 

에세이집 ‘잘 가라 환(幻) 에세이스트. 2020. 02. 20.

 

문학은 앙금으로 가라앉은 희로애락을 소비하는 창구 역할을 한다. 특히 수필 장르는 독자라는 불특정의 대상을 앉혀놓고 속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주면서 자기를 위로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혼자 아파하기보다 어떤 형식을 취하든 밖으로 토해내는 것이 감정 조절은 물론 평상심을 찾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진솔함과 곡진한 문체가 미덕이면서 강한 울림을 주는 작품이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끊어” 이 짧은 한마디가 이토록 아픔을 주는 말인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읽는 이의 마음을 잔잔히 흔들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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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환 2020-03-25 19:01:42
너무멋진 글 잘 읽었어요.
일상에서 무심코 던지는 말한마디도 엄청난 파장을 몰고올수 있음을 -
누구나 쓸수있는게 수필이라지만 독자에게 뭔가 주는게 있어야겠지요 -

류영길 2020-03-25 11:24:10
가슴이 아려옵니다
인생의 짐이 이다지도 무거운지 모르는 사람이 많겠지요
오늘부터 비판하지 않고 조용히 살랍니다
유순한 말과 욕심없는 맘으로 살고 싶습니다

김만태 2020-03-25 10:27:10
사연이 있었을까요?
그 힘든 막내가 어머니를 모셨을까요.
말 문이 막히듯,
미사여구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하긴,
열매맺고 지는 꽃이 몇송이나 될까요.

무철 2020-03-25 10:11:27
‘나 지금 바빠, 다음에’.
사람은 대부분 자신의 입장에서 남을 생각하고 거기에 맞추어 응대합니다.
내 주위에도 나의 무관심한, 건성으로 한 말 한마디에 상처 받은 사람은 없었을까?
혹시라도 그런 일이 있었지 싶어 나를 다시 한번 더 뒤돌아보게 됩니다.
좀 더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여야겠습니다.
숙연한 마음으로 글을 읽으며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 가짐이 얼마나 중요한 지 새삼 느꼈습니다.
어려운 시기에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

크리스찬 2020-03-25 09:57:08
우울한 아침에 더 우울한 수필로 위로 받았다면 이이러니인가요? 혹자들은 말합니다. 부모님을 보낼때 보다 형제자매를 보낼때가 더 아프다고 합니다. 왜 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도 그랬어요. 촌수를 따져도 부모가 가카운데도 말입니다. 아플땐 살아 있으니까 아프다고 스스로 위로해 봅니다. 살아 있으면 그 아픔에서 벗어날 시간도 올것이고 더 나은 희망도 꿈꿀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