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함께 이겨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함께 이겨내고 있습니다
  • 김채영 기자
  • 승인 2020.03.17 10:00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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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함께 이겨내고 있습니다 

'귀차니즘'의 일종이랄까. 나는 홈쇼핑 마니아다. 먹거리 빼고는 웬만한 것을 집에 앉아서 주문하는 소비 유형을 고수한다. 그이도 나도 구입한 것이 없는데 택배 기사의 문자가 왔다. “코로나19 관련 고객님들과 택배기사의 안전을 위해 비대면 배송을 실시할 예정입니다. 고객님들의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그로부터 40여 분 뒤 “택배 문 앞에 둘게요.”라고 다시 왔다.

올 게 없는데 뭐지 하면서 남편보고 나가보라고 했다. 살짝 연 현관문을 엉덩이로 받치고 서서 머뭇거리고 있었다. 2중문 안에서 지켜보던 성미 급한 나는 뭐가 왔기에 그러고 있느냐며 잠시를 못 참고 재촉했다. 상자가 크다는 말과 함께 상당히 무겁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럼 잘못 배달된 택배인가 보다고 단정 지어 말했다. 그랬더니 아니라고, 보낸 이는 삼성이고 받는 이는 자기 이름이 적혀있다는 것이 아닌가.

난 언제나 이게 문제다. 내 방식대로 단정 짓는 것. 박스를 풀어 확인하기도 전에 아들이 생필품을 사서 보낸 것으로 확신했다. 그렇잖아도 코로나19의 확진자가 대구에서 대거 나오면서 아들딸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필요한 거 있으면 부쳐주겠다며 마트도 나가지 말라는 금족령이 내려졌다. 제 어미가 불로5일장 구경하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아는 딸애는 시장도 절대 가지 말라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당부를 하던 터였다.

20kg짜리 박스가 알차게도 채워져 있었다. 즉석밥에다 갖가지의 즉석죽, 즉석국, 대부분이 비상식량들이었다. 비타민제와 홍삼 그리고 유산균, 건강까지 챙긴 세심함에 웃음이 났다. 다행히도 우리 집은 불안과 불편을 겪을 뿐 뉴스에서 보듯이 그리 심각한 상황은 아니기에 말이다. 돈 아끼라고 입이 마르도록 이르건만 쓸데없이 낭비한 것이란 생각에 고맙다는 인사가 나오지 않았다. 대뜸 왜 필요 없이 아까운 돈 썼냐며 잔소리부터 뱉어내고 말았다.

후회는 빨라도 늦다고 했던가. 아들 이야기는 들어보지도 않고 역정부터 낸 것이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대구가 집인 직원들한테 특별히 보낸 구호품이었다. 그야말로 자식 덕에 아주 특별한 선물을 받은 것이다. 박스를 젖히고 하나하나 꺼냈다. 가득 찬 물품들이 회사의 정성이라 생각하니 뒤늦은 고마움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코로나 때문에 죽는 게 아니라 굶어서 죽겠다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라지 않은가. 자재가 못 들어와서 일손을 놓고 있다는 동생, 식당 문을 닫았다는 이웃, 내 주변에도 힘든 사람들이 많다. 구호품 앞에서 생각이 복잡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