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티푸스 보균자 메리의 생애 ②
장티푸스 보균자 메리의 생애 ②
  • 정신교 기자
  • 승인 2020.03.16 19:2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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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티푸스 메리(Typhoid Mary)

뉴욕 이스트강의 브롱스구와 퀸즈구 사이에 있는 노스브라더섬의 리버사이드 병원은 천연두, 장티푸스, 결핵과 같은 감염병 환자를 격리 치료하는 종합병원이었다.

19074월에 이송된 메리 맬런은 거실과 주방, 화장실이 있는 별채에서 생활하였으며, 처음 수개월 동안은 정신적 스트레스로 왼쪽 눈을 감지 못하기도 했다. 그녀는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거나, 치료약제 개발을 위한 임상실험에도 참여하였는데, 163회 검사 중에 120회가 양성으로 나와서 간헐적 보균자로 밝혀졌다. 메리는 글을 읽고 쓸 수 있어서 병원의 업무를 보조하거나, 책과 신문을 보면서 소일하였다.

그러던 중에 뉴욕 아메리칸 신문의 자신에 관한 선정적인 보도를 보고, 깜짝 놀랐다.

장티푸스 메리 기사(뉴욕 아메리칸 신문,  Wikipedia)
장티푸스 메리 기사(뉴욕 아메리칸 신문, Wikipedia)

장티푸스 메리,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여자’, 분개한 메리는 신문사에 항의 서신을 보내었으며, 결국 신문사의 도움을 받아서 자신에 대한 불법적인 압송, 구금 및 인권 침해에 대하여 재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메리는 재판정에 출석하여 자신의 정당함과 불법적인 수감에 대하여 증언하여, 많은 시민들의 동정을 얻었으며, 심지어는 미시간주의 농부로부터 프로포즈를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공동체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공권력을 행사한 것은 정당하다는 판결에 따라 메리는 다시 노스브라더섬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듬해인 1910년도가 되자 보건국은 조리 업무에 종사하지 않고, 정기적으로 거취를 보고하는 등의 조건부로 메리의 격리를 해제하였다. 3년에 걸친 격리 생활에서 자유의 몸이 된 메리는 세탁부로 일하면서 꼬박꼬박 자신의 거동을 보고하였다. 세탁부는 조리사에 비해 고되고 보수도 적어서 지쳐 갈 무렵에 설상가상으로 정신적으로 의지하던 애인마저 심장병으로 사망하였다. 메리는 신문사의 도움을 받아서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였으나 증거 부족으로 기각되자, 종적을 감추었다.

19151, 뉴욕의 슬론 여성 병원에서 장티푸스가 발생하여, 25명이 감염되고 그 중 2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원장의 요청으로 현장을 조사하면서 소퍼 박사는 매리 맬런의 필체가 틀림없는 편지를 발견하였다. 그녀는 브라운 부인으로 이름을 바꾸어서 병원에 취업하였으며, 디저트를 잘 만들어 인기가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장티푸스 메리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19153, 48세의 메리는 심신이 피폐한 상태로 체포되어 종신형을 받아서 노스브라더섬으로 압송되었다. 다시 체포된 장티푸스 메리의 이야기는 전미국의 매스컴을 뜨겁게 달구었으며, 이번에는 모든 사람들이 그녀의 비열한 행위에 침을 뱉고 분개하였다.

뉴욕시에서는 병원의 별채에서 메리가 비교적 자유롭게 생활하도록 해주었다. 그녀는 병원에서 월급(12)을 받고 잡역부로 일하면서 허가를 받아서 시내로 휴가를 다녀오기도 했다. 병원의 잡무를 근면 성실하게 처리해서 간병인, 간호조무사로 승급하여 일을 하기도 하였다. 새로 온 여성 수련의와 친해져 그녀의 조수가 되어서 세균을 배양하고 현미경 검사도 하고, 임상실험에도 참여하였다.

메리가 거주하던 별채(노스아일랜드섬, Wikipedia)
메리가 거주하던 별채(노스아일랜드섬, Wikipedia)

1932년 크리스마스 날 아침, 메리는 갑작스런 뇌졸중으로 몸 오른쪽이 마비되어 침대 생활을 하면서 연명하였다. 병상에서 그녀는 그동안 모아 둔 5천불 가량을 교회에 기부하고 병원의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19381111, 69세의 나이로 그녀는 기관지 폐렴으로 사망하였다. 그녀의 시신은 화장되어 이스트강을 건너고 브롱스의 세인트 레이먼드 공동묘지에 묻혔다. 시신 해부로 그녀의 담낭 안에서 장티푸스균이 서식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메리는 53명에게 장티푸스를 감염시켰고, 그 중 3명이 사망하였으나, 수백 건 이상의 발병에 원인을 제공하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렇지만 여타의 남성 보균자들은 제쳐 놓고 유독 메리만 장기 격리 처분을 받게 된 것은 무슨 까닭 이었을까? 아일랜드이민과 성차별에 대한 편견들이 선정적인 언론 보도에 의하여 전근대적인 마녀사냥의 결과를 낳게 된 것은 아닐까?

절해고도에서의 격리된 생활 가운데서도 메리는 신앙에 의지하여, 신문을 읽고 편지를 쓰고, 주위 사람들과 같이 일을 하면서 남은 인생을 보냈다. 그러한 그녀의 긍정적인 삶이 평균 수명(40)보다 훨씬 더 오래 살게 하였다. 그녀가 떠난 후 리버사이드 병원은 전상자들과 마약중독자들의 재활병원으로 활용되었으나 1963년부터 폐쇄되었다.

최근 연구 결과에 의하면, 담석이 있는 실험쥐들의 담낭에서 장티푸스균들이 더욱 왕성하게 자라고 있으며, 균들은 담석에 달라붙어서 엷은 막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전자현미경으로 관찰되었다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빌 수 있다는 속담처럼 미생물도 의지할 곳이 있으면 더욱 잘 자라게 된다.

참고자료

1. 위험한 요리사 메리”,수전 캠벨 바톨레티(곽명단 역), 돌베개, 2018.

2. " The Curious Career of Typhoid Mary”, George A. Soper. Bulletin of the New York Academy of Medicine 45(1), pp 698-712, 1939.

3. "Gallstone play a significant role in Salmonella spp. gallbladder colonization and carriage”, Robert W. Crawford, et al., Proc Natl Acad Sci U S A, 107(9), pp 4353-4358, 2010.

장티푸스 예방 포스터(뉴욕시, Wikipedia)
장티푸스 예방 포스터(뉴욕시, Wiki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