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운슬링-행복한 가정] 잘 생긴 남자 좋아하지 마세요
[카운슬링-행복한 가정] 잘 생긴 남자 좋아하지 마세요
  • 시니어每日
  • 승인 2020.03.23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도와주세요:

내 나이 86세.  젊은 날은 누구에게나 얼마나 꿈이 큽니까? 나는 대구에서 이름 있는 여상을 나와, 전매청에서 일하는 아주 잘 생긴 남자와 그때는 드문 연애결혼을 했습니다.

남편은 월급을 축내지 않고 꼬박꼬박 잘 갖다 주었습니다. 나름대로 재미있게 살았습니다. 그동안 나는 딸 셋을 낳았습니다. 아들이 낳고 싶었지만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늘 남편에게 아들하나 안겨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러고 살던 어느 날 남편은 고개를 푹 숙이고, 낯선 아가씨는 아기 하나를 안고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이게 무슨 날벼락입니까? 남편과의 사이에 낳은 아기였습니다. 낳은 아기도 딸이었습니다. 아내가 아들 못 낳는다는 이유?로 처녀와 눈이 맞았던 모양입니다. 얼마나 감언이설로 아가씨를 꼬득였겠습니까?  잘 생긴 용모 때문에 아가씨도 자기 고생할 줄 모르고 쉽게 넘어 왔던 것입니다. 시댁식구들은 날 인정하고 우리 며느리 같은 사람 없다고 늘 칭찬해주었는데 남편은 아니었는가 봅니다. 

아직 시퍼렇게 멍든 가슴이 그대로인데, 그 멍이 채 가시기도 전에 어느 날 또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어느 여인숙에 가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찾고 찾아 갔더니 아이구 이게 또 무슨 일입니까? 전에 본 아가씨가 아니고 또 다른 여자와 방금 낳은 아기 둘이 있었습니다.

나는 할 말을 잃고 퍽 주저앉았습니다. 생각해 보니 그 아가씨가 불쌍해졌습니다. 남편을 죽이고 싶었습니다. 울고 있는 아가씨 때문에 난 온갖 감정을 누르고 참고 참았습니다. 그 아기도 딸이었습니다. 집으로 가자고 했지만 아가씨는 어림도 없었습니다.

닷새를 미역국 끓여 보살펴 주고 너나 나나 같은 여자로써 그 남자가 밉다는 이야기며 서로 신세한탄을 하였습니다. 내가 없는 잠깐 사이 아기를 데리고 여인숙을 나가고 없었습니다. 그후론 연락이 없었습니다. 남편도 얼마 못살고 저 세상으로 돌아가고 딸 넷을 기르며 살았습니다. 

딸애들이 잘 커 주어서 결혼하여 아이를 낳으면 내가 다 길렀습니다. 지금은 정말 효도 받으며 잘 살고 있습니다만 무슨 마음인지 가끔은 그때 그 아가씨들이 보고 싶을 때가 있답니다. 데리고 간 그 딸애는 잘 크는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꼭 지나온 세월이 하룻밤 꿈 같습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말도 보고 소도 본다고 하더니...... 나 같은 인생이 또 있을까요?  

 

조언드림니다:

사람이 평생을 살다보면 우리 내담자 말씀처럼 말도 보고 소도 본다더니 참 기가 막힌 일을 겪으셨군요. 아들 못 낳는 것이 여자 혼자만의 책임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런 황당한 핑계를 대는 사람을 우리는 철면피라 하지요?

세상이 바뀌어서 지금은 아들보다 딸이 좋다고들 하지 않습니까? 그 때만 해도 아들 선호사상이 심할 때라 그런 일이 종종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내가 자랄 때 우리 동네도 보면 그런일로 큰 소리가 떠나지 않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그것도 드센 여자나 고함치며 남편에게 달려들고 하지만 기가 약한 사람은 참고 아무말 못했습니다.

크지 않은 동네에 그런 사람이 서너 명은 작은 댁을 들여다 놓고 살았습니다. 말없이 사는 것을 미덕으로 알고 살았던 때였습니다.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이란 것이 얼마나 꼬리가 질겼는지?  축첩방지법 제정에 관한 이승만 대통령의 특별 담화까지 발표되면서 본격적으로 축첩 타파에 나섰지요. 여인들의 데모도 있었고요.

1960년대 초까지도 축첩의 인습을 뿌리뽑지 못하다가 박정희가 대통령이 되고부터 교사, 군인, 경찰 등등 공무원은 축첩을 못하게 했었습니다. 시앗을 보면 부처도 돌아 앉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아내가 속으로 얼마나 가슴 아파하며 시퍼렇게 가슴엔 멍이 들고 속울음을 삼켰는지 그걸 모르지는 않을 것인데 말입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지요? 이성을 잃어버린 동물적인 본능만이 존제하지 않았겠어요?  

그때 만난 아가씨들도 지금은 초로의 길을 걷고 있지 싶습니다. 노년이 되어 가끔 생각하면서, 추억보다는  한 여자의 가슴에 못을 박았구나 라며 후회하곤 할 것입니다. 참 지혜롭게 잘 대처하셨습니다. 쥐어뜯고 싸우고 난리가 날 판인데 그러지 않고 달래며 받아주었으니 그 마음이야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마음이 한들 같아서 살아냈을 것입니다. 아가씨가 데리고 온 아기까지 넷을 차별없이 잘 길러 효도받고 계신다니 참고 견딘 대가로 하늘이 복을 주신 듯합니다. 충분히 효도받을 만 합니다. 편안하게 오래오래 만수무강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유가형(시인·대구생명의전화 지도상담원)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