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채영의 ‘그리움’
김채영의 ‘그리움’
  • 김채영 기자
  • 승인 2020.05.06 07:50
  •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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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영의 ‘그리움’

 

산등성이 고운 노을 한 자락 뜨면

남새밭 가꾸던 엄마 돌아올까

덜 자란 목 길게 뽑아 늘이고

귀이개로 잘 닦은 두 귀 쫑긋 세우니

서걱서걱 댓잎 몰고 가는 바람소리였습니다

 

무심한 해는 저 홀로 산을 넘고

불덩이 노을은 하늘이 삼키어 가고

키 작은 굴뚝에선 밥 짓는 연기 등천을 하고

창문마다 초롱 별빛 소곤소곤 걸리는데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함께 놀던 아이들 매캐한 먼지 내음만 남긴 채

정다운 손끝에 이끌려 일제히 흩어져가고

어둔 골목 혼자 남은 아이는 한 그루 버드나무 되어

노을 삼킨 빈 하늘만 쳐다보았습니다

설익은 별 하나에 조록조록 엄마 얼굴 새기었습니다

 

2004년 대구은행주최 여성백일장 수상작

 

나도 짧게나마 엄마를 가진 적이 있었다. 형체 없는 ‘그리움’이란 천형을 반백 년 끌어안고 산다. 솔직히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실감이라기보다 개념에 더 가깝다. 끈끈한 모정을 저축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엄마의 빈자리 즉 결핍감에서 오는 허전함의 표식인지 모른다. 머리 허연 예순 넘은 남편이 팔순의 노모를 ‘엄마’ 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부를 때 나는 내 엄마의 부재를 재확인하게 된다. 그 순간이 무척 쓸쓸하다. 살아서는 불러볼 수 없는 이름이니까. 그만큼 엄마란 호칭은 금기어처럼 입속 깊이 묻어두고 살 수밖에 없다. 어떤 날은 내 딸이 ‘엄마’ 하고 부르는데 내가 엄마라는 사실을 잊고 별안간 낯설게 들린다. 결코 엄마의 존재가 필요 없는 나이란 없다. 엄마 있는 사람은 느끼지 못할 비애감이 크다.

그리움은 인간이 가진 숙명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이란 글을 읽었다. 허나 그리움의 소릿값엔 눈물이 동반하리라. 어버이날을 앞두고 본인의 어쭙잖은 처녀작을 소개하려 꺼냈다. 이 글을 읽는 독자가 엄마 없는 화자에게 엄마가 되어주기를 기대하면서. 백일장이란 데 처음 나갔다. 졸작을 읽노라니 그날의 혼몽함으로 빠져든다. 계명대학교캠퍼스였고 철쭉이 만발하여 황홀경의 극치였다. 훗날 그 학교에 입학하게 된 것은 그날의 강렬한 홀림이 한몫을 하지 않았나싶다. 시제가 ‘그리움’이었다. 시창작법도 모르면서 열 살의 감정을 더듬어 썼는데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우수상에 뽑혔다. 50만 원의 상금과 함께. 이모한테 10만 원 부쳐드리며 그리움을 달랬다. 살아서는 불러볼 수 없는 이름, '엄마'를 목울대에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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