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 산책] 김정운 '남자의 물건'
[장서 산책] 김정운 '남자의 물건'
  • 김대영 기자
  • 승인 2020.03.06 19:05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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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운이 제안하는 존재확인의 문화심리학

다양한 분야의 대표적인 사람들이 소장하거나 사용하고 있는 물건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인 김정운은 베를린자유대학교 심리학과에서 문화심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명지대학교 교수를 역임하였다. 현재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이 책은 1부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남자에게’는 중년 이후의 남자들이 겪는 존재 불안과 심리적 불안에 대한 문화심리학적 분석과 위로를 통해 그들이 주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삶의 기쁨과 행복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마음에 새겨 둘 만한 내용을 적어둔다.

삶이 재미없는 이들은 대부분 세상이 뒤집어지는 어마어마한 재미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 그런 재미는 없다. 행복을 거창하게 생각해서는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 내가 좋아하는 게 분명해야 설레는 삶을 살 수 있다. 방법은 간단하다. 지난 한 주간 내 일상에서 가장 기분 좋았던 순간을 떠올려보면 된다. 내가 설레며 기다렸던 일을 기억해내면 된다. 바로 그 일들이 내가 가장 재미있어 하는 것들이다. 그 설레는 일들을 끊임없이 계획하며 살면 된다(34쪽).

최근 결함모형에 기초한 현대 심리학에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긍정심리학(positive psychology)’이 그것이다. 이제까지 인간의 약점과 부정적 측면에 초점을 맞춰 연구해왔던 현대 심리학의 접근 방식에 대한 반성이다. 인간의 약점을 고치기보다는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자꾸 키워나가는 면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이야기이다. 누구에게나 약점이 있는 것처럼 누구에게나 장점이 있다. 이 장점을 끌어올리면 약점은 저절로 개선된다(41쪽).

잘난 척하거나 교만한 것은 그리 나쁜 게 아니다. 가장 인간적인 덕목이다. 세상에 진짜 무서운 것은 남과 비교하며 괴로워하는 ‘자기열등감’이다. 자기열등감에 한번 빠지면 웬만해선 헤어나기 힘들다. 남과 비교하고 괴로워하고 또다시 비교하고 또다시 괴로워하는 자기 부정의 악순환에 빠지기 때문이다(42쪽).

왜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자꾸 빨리 가는 걸까? 심리학자들의 대답은 아주 단순명료하다. 기억할 게 전혀 없기 때문이다.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고 느낄수록 긴장해야 한다. 의미부여가 안되니 쉽게 좌절하고, 자주 우울해지고, 사소한 일에 서운해진다. 시간을 천천히 흐르게 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기억할 일들을 자꾸 만들면 된다. 평소에 빤하게 하던 반복되는 일들과는 다른 것들을 시도하라는 이야기다(69~70쪽).

이젠 ‘근면’ ‘성실’ ‘고통’ ‘인내’ 같은 지난 시대의 내러티브와는 구별되는 새로운 차원의 성공 내러티브가 필요하다. ‘재미’ ‘행복’ ‘즐거움’의 내러티브가 진짜 성공한 삶의 조건이다(74쪽).

대나무는 마디가 있기 때문에 태풍이 불어도 부러지지 않는다. 마디가 없는 삶은 쉽게 부러진다. 아무리 바빠도 삶의 마디를 자주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주말이 있고 여름휴가도 있다.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 삶의 마디를 잘 만들어 ‘가늘고 길게’ 아주 잘 사는 것을 뜻한다(93쪽).

2부 ‘남자의 물건’은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13명의 물건에 대한 이야기다. 13개의 물건은 시인 김갑수의 커피 그라인더, 사진작가 윤광준의 모자, 김정운의 만년필, 이어령의 책상, 신영복의 벼루, 차범근의 계란받침대, 문재인의 바둑판, 안성기의 스케치북, 조영남의 안경, 김문수의 수첩, 유영구의 지도, 이왈종의 면도기, 박범신의 목각 수납통이다. 김갑수, 윤광준, 김정운의 물건에 대한 이야기는 ‘남자의 물건을 꺼내면 인생이 살 만해진다’는 소제목으로 김정운이 썼고, 나머지 열 사람의 물건 이야기는 김정운이 직접 인터뷰하여 기록하였다.

커피 그라인더와 오디오 전문가인 시인 김갑수는 물건이나 도구가 자신의 쾌락에 기여하는 게 아니라 김갑수 자신이 물건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삶을 산다고 말한다. 그는 “사람은 행복해지기 위해 산다는 것처럼 거짓말은 없는 것 같아. 자신이 행복한가, 불행한가에 대해 생각하는 순간부터 불행해지기 시작하는 거야. 시간, 공간을 인식하는 순간부터 인간은 불행해질 수 밖에 없어. 시간, 공간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지. 물건에 헌신하다 보면 내가 사라지지. 행복과 불행에 대해 생각하지 않게 되는 거야. 빠지고 몰입하는 거라고. ‘자아’라는 주체로 사는 게 아니라 대상에 함몰되는 거지. 돈이나 밥이 아닌 다른 것에 함몰되는 것은 참 근사한 거야”라고 말한다. 칙센트미하이의 플로우(flow) 이론이다(139쪽).

윤광준은 중년 남자에게 흔히 볼 수 없는 아주 중요한 덕목이 있다. 남의 이야기를 아주 잘 들어준다. 한국 남자들은 나이가 들수록 자기 이야기만 하려 한다. 그러나 윤광준은 반대다. 자신의 이야기는 남이 물어볼 때만 한다. 그렇다고 단답형 대화를 하는 사람이 절대 아니다. 윤광준 자신의 이야기가 시작되면 너무 흥미롭고 재미있다. 그러나 남이 이야기할 때는, 하나도 재미없는 늙은 아저씨들의 중언부언도 꼼짝 않고 집중해서 들어준다. 아무리 술을 마셔도 흐트러짐이 없다. 참 큰 바위 같은 사람이다(149쪽).

언어를 다스리는 장군, 이어령에게 책상은 사열대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책상을 한국에서 가장 큰 것으로 만들었다. 3미터. 지식 영역을 상징하는 책상만큼은 한국 최고, 세계 최고여야 한다는 욕심이다. 큰 책상에 대한 그의 욕심은 모든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공간 점유의 욕구와 크게 다르지 않다(164쪽).

이 책의 제목인 ‘남자의 물건’은 신영복의 글씨다. 소주 이름이 된 ‘처음처럼’에 대해 신영복은 “노트에 쓴 글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노트를 뜯어내면 뒷장의 멀쩡한 노트가 떨어져 나간다. ‘처음처럼’이라는 게 뜯어내는 게 아니고, 뭔가 그 다음 장을 다시 처음의 마음으로 쓰는 것. 그래서 글씨가 좀 잘못되었더라도 뜯어내지 않고 다시 시작함으로써 결국 두꺼운 노트를 갖게 되는 그런 마음이 필요하다. 산다는 것은, 인생이라는 것은 결코 뜯어낼 수 없는 거다. 늘 이제 다시 시작하는 마음처럼,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추운 겨울 저녁에도 마치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언제나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는 뜻으로 시작된 거예요.”라고 말한다(189~190쪽).

사람은 누구나 감추는 게 있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잠시 멈추는 순간이다. 감추고 싶은 게 있다는 뜻이다. 차범근은 다르다. 다 드러난다. 처음 만나도 눈에 보이는 모습이 전부라는 걸 알 수 있다. 차범근은 자기가 들고 있는 패를 다 드러낸다. 숨기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사람이다. 자기 패를 다 드러내놓고 나오는 사람처럼 무서운 경우는 없다. 세상에 진실한 것처럼 강력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차범근의 진실함은 순수함에서 나온다(205~206쪽).

안성기는 혼자 아주 자주 중얼거린다(232쪽). 혼자 중얼거리는 것을 심리학에서는 ‘자기중심언어(egocentric speech)’라고 한다. 자신의 내면의 느낌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박탈된 경우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도덕적 책임이 큰 사람에게 많이 나타난다. 이들에게는 자신의 내면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대체 수단이 필요하다. 그림이 가장 대표적인 경우다. 어릴 때부터 익명성을 포기하고 산 안성기에게 그림은 아주 중요한 내면의 표현수단이다(237쪽).

김정운과의 인터뷰 내내 김문수가 반복한 말은 “천재의 기억보다 바보의 기록이 정확하다.”(274쪽)

책을 읽고 나서 기자의 물건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책'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인 1971년부터 올해 2월까지 50년 동안 14,872권을 모았다. 책장 37개를 채우고 남는 책은 베란다 창고, 거실을 비롯한 4개의 방에 쌓아두었다. 시골 부모님 집에도 가져다 두었다.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주관한 제30회 책의 날(10월 11일) 기념식에서 논문, 잡지 등을 제외한 9,749권으로 ‘2016 모범장서가상 대상’을 받았다. 기자가 책을 대하는 태도는 김갑수가 커피 그라인더를 대하는 태도와 같다. N.A. 바스베인스는 장서가를 ‘점잖은 미치광이(젠틀 매드니스/A Gentle Madness)’라고 불렀다.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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