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興)과 한(恨)은 사물과 사람과의 접촉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발로이다.
흥은 동적이고 한은 정적이다. 흥은 순간이나 한은 세월이다. 흥은 즐겁고 기쁜 감정이고 한은 안타깝고 슬픈 마음이다. 흥은 사라지나 한은 쌓인다. 한은 흥으로 발산되지 않으면 파멸의 길로 몰아간다. 88 올림픽과 2002 월드컵에서 우리 민족의 5천년 역사 속에 쌓인 한들은 흥으로 승화되어 세계적인 한류 문화의 기반이 되었다.
올해 101돌을 맞은 기미년(己未年) 삼일독립운동은 우리 민족의 억울하고 분하고 안타깝고 슬프게 응어리진 한들이 용광로처럼 분출된 흥이라고 하겠다. 전설적인 무용가 최승희(崔承喜, 1911~1969)는 춤사위를 통하여 전통의 한을 현대적인 흥으로 풀어내었으며, 이육사 시인은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리면서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을 기다리자고 하였다,
싸이와 BTS의 음악들이 흥을 위주로 하고 있다면 아카데미상에 빛나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들은 한을 주제로 하여 작품 가운데 절묘하게 흥의 요소를 가미하고 있다. 기정의 제시카송은 영화 중의 긴장과 불안감을 일순 해소해주는 카타르시스적인 흥이다.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아버지 기택의 한 마디는 4수생 아들의 죄의식과 한을 씻어주고 그에게 새로운 희망을 갖게 하는 흥이다.
최근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트로트 음악도 사랑과 이별, 향수, 모정들의 한을 바탕으로 우리나라에서 발전해 온 두 박자 계열의 음악 장르로서 오르락내리락, 엎치락뒤치락하는 한민족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또한 방송사의 가요 오디션에 소개되는 출연자들의 다양한 사연과 한이 음악과 춤으로 관객과 시청자들에게 전달되어서 공감을 사고 인기를 얻고 있다.
현인(玄仁, 1919~2002) 선생의 독특한 창법을 재현하여 가수로 데뷔한 조명섭 군과 목하 진행 중인 트로트 오디션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임영웅 군은 모두 할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할머니에게서 듣고 배우고 느낀 수많은 사연과 한들을 그들은 노래와 표정에 담아 희로애락(喜怒哀樂)의 흥으로 표출하여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다.
우수, 경칩이 지나도 수그러들지 않는 코로나19 감염병 사태 속에서 전국의 어린이집과 초등학교는 휴원 하고, 개학을 연기하고 있다. 하루하루 늘어만 가는 확진자 숫자에 놀라고, 마스크 줄 서랴, 식료품 조달하랴, 애 돌보랴, 바쁜 여린 젊은이들을 위하여 시니어들의 역할이 절실하게 기대되는 시점이다.
다시 새로운 백년에, 오늘 새겨진 우리들 한(恨)의 DNA들이 진화되어 노벨상과 아카데미상을 안고 오는 초인들이 이곳에서 우수수 나올 줄 누가 알리요?
쿼바디스 도미네(Quo Vadis Dom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