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통하여 삶을 성찰하고 의미있게 한다
지난 2월 16일은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善終) 10주기를 맞는 날이었다. 로마 가톨릭에서는 사람이 임종할 때에 성사(聖事)를 받아 대죄(大罪)가 없는 상태에서 죽는 일을 선종이라 한다. 김 추기경은 한국 최초의 추기경이자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의 대부이다. 헐벗고 가난한 자들의 수호천사이기도 하다. 그리고 국민적 갈등과 대립의 성실한 중재자 역할을 자임해왔다.
그분의 환한 미소와 평화로운 모습은 우리들 가슴 속에 영원히 남아 있다. 그분의 정신과 말씀과 행동은 일상처럼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다. 비록 그분이 돌아가셨다고 말하지만 우리들 머릿속에는 그분이 아직 살아계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태어난 이상 누구나 죽게 되어 있다. 또한 죽음에는 지위나 빈부의 차이가 없다. 의학과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이 길어질 수는 있지만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천하를 호령하며 불로장생을 희구하던 중국의 진시황(秦始皇)도 결국 49세로 생을 마감했다. 예수·석가모니·공자·마호메트·소크라테스 같은 성인(聖人), 종교인, 철학자 등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록펠러(John Davison Rockefeller) 같은 세계적 부호도, 스티브 잡스(Steve Jobs) 같은 천재도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죽기 전 스티브 잡스는 말했다. “아무도 죽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래도 죽음은 우리 모두의 숙명이다. 아무도 피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 죽음이기 때문이다.”
삶에 있어서 죽음은 필연적인 사실이며, 죽음은 삶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삶의 종착지가 죽음이요, 죽음의 과정 속에 삶이 있다. 따라서 죽음은 삶에 있어서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현상이다. 그런데 우리는 죽음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금기시하고 기피한다. 죽음을 나와 관계없는 남의 일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죽음을 슬퍼하고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러면서도 평소 죽음에 대한 자각과 준비는 하지 않는다. 임종의 순간이 되어서야 죽음을 느끼고 당황해한다. 외국에서는 ‘죽음학(Thanatology)’이라는 학문의 한 분야로서 죽음을 연구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죽음에 대한 준비와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를 통하여 삶의 의미와 가치를 음미하고 성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셸리 케이건 (Shelly Kagan) 교수의 ‘죽음이란 무엇인가’가 국내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이는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 탈 벤 샤하르(Tal Ben Shahar) 교수의 ‘행복이란 무엇인가’와 함께 세계 3대 명 강의로 손꼽힌다. 그리고 ‘신과 함께’,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 같은 죽음과 관련된 영화가 주목을 받으면서 국내에서도 죽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죽음에 관한 다음의 사항들이 주요 관심대상이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죽음 뒤에 다시 새로운 삶이 계속되는가
●육체 이외에 영혼이란 실체가 과연 존재하는가
●죽는다는 것이 왜 슬픈 일인가
●죽는다는 것이 왜 두려운가
●죽음에 직면하여 어떠한 자세와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아름다운 죽음을 위하여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
●죽음에 관한 철학자, 성현들의 사상과 견해는 무엇인가
●죽음에 관한 세계 각국의 인식의 차이는 무엇인가
●각 종교별 죽음관은 어떻게 다른가
●죽음과 관련된 법과 제도, 정책의 내용은 무엇인가
●죽음을 소재로 한 문화, 산업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따라서 앞으로 이 면에서 이들 내용을 중심으로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20여 차례에 걸쳐 살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