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에 대한 단상
마스크에 대한 단상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0.03.03 16:0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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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는 선과 악이란 양면성을 지닌 물건이다.
질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무조건 마스크를 쓰란다

대한민국은 현재 ‘코로나19’란 바이러스와 전쟁 중이다. 비단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미국을 비롯하여 유럽 등 전 세계가 코로나바이러스와 전쟁 중이다. 1월 20일 최초 확진(중국인 35세. 여)자가 나왔을 때만 해도 정부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 국민들을 향해 일상생활로 돌아가 정상적인 생활을 하라고 했다. 하지만 이후 상황은 급변했다.

코로나바이러스 명도 우한에서 어느 날부턴가 ‘코로나19’로 바뀌었다. 이를 두고 국민들은 시진핑주석의 방한을 앞두고 중국의 눈치를 본다고 한 목소리를 내지만 정부는 소귀에 경 읽기로 일관했다. 그뿐만 아니라 의사협회에서 중국인에 대한 입국금지를 강력하게 요구했지만 이조차 일고의 가치가 없다면서 깡그리 무시하며 지금에 이르렀다.

이러한 정부의 실정이 현재 국민들에게 끼치는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어 3월 3일 13시 현재 확진 총 4,812명, 사망 총 29명으로 최악의 상태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더 염려스러운 것은 이 전쟁이 언제 끝날지 또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려야 끝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사람들은 언제 닥칠지도 모르는 죽음의 공포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비단 전쟁은 이 뿐만이 아니다. 아침에 처음 대하는 뉴스에서 확진 자의 수를 확인하고 나면 그 다음으로 마스크에 관한 뉴스를 보고는 한숨이다.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며 절로 가슴이 답답한 것이다. 마스크 또한 정부의 수급조절의 실패 및 중국으로 대량지원이라는 악수를 두어 국민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본래 마스크란 얼굴의 생김새, 얼굴을 감추거나 달리 꾸미기 위하여 나무, 종이, 흙 따위로 만들어 얼굴에 쓰는 물건 또는 병균이나 먼지 따위를 막기 위하여 입과 코를 가리는 물건을 이르는 단어다. 거즈로 만드는 마스크는 1919년 세계적으로 유행한 스페인 감기, 즉 인플루엔자가 유행하였을 때부터 사용되었다. 이외에도 서아프리카 파가 족의 님바(nimba)와 같은 거대한 마스크나 자바 섬의 가면극에 쓰이는 토펭(topeng)같은 우아한 마스크 등등이 있다.

한편 ‘코로나19’와 관련하여 기장군에서는 총55억 원이란 예비비를 마련하여 3차에 걸쳐 가구당 총 15매의 마스크를 배부할 예정이며 나아가 확산방지를 위해서 손 소독제, 방역인력과 장비, 방역약품 구입 등에 전 행정력을 동원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임진왜란의 영웅 이순신장군이 강조한 유비무환의 정신에 입각하여 군민들을 질병으로부터 보호하려는 군 수장의 통찰력이 제대로 통한 것이다. 이에 대해 군수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때와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를 반면교사로 삼았다고 했다. 그럼에도 어느 애청자는 그 또한 매점매석이 아니냐고 물었고 그 답으로 군수는 작금의 사태가 일어나기 전, 즉 1월 말경에 제조사와 합의한 가운데 이미 물량을 확보한 상태였다고 했다.

이러한 마스크는 선과 악이란 양면성을 지닌 물건이다. 영화 ‘마스크’를 통해 보듯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면 뜻밖의 힘을 발휘한다. 평범한 은행원이었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고대 시대의 유물인 마스크를 발견한다. 이때부터 그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는 내용으로 후일 악당의 손에 들어간 마스크를 회수하고 애인을 구한다는 내용이다. 한때 보이스 피싱(전화를 통하여 신용카드 번호 등의 개인정보를 알아낸 뒤 이를 범죄에 이용하는 전화금융사기 수법)이란 범죄가 유행처럼 번질 때 범죄 예방을 위해서 마스크를 쓰는 것을 절대적으로 금했다. 당시는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를 하면 간첩을 보듯 먼저 의심부터 했다.

그런데 이제는 질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무조건 마스크를 쓰란다. 그런데 꼭 써야하는 마스크지만 마음대로 쓸 수가 없다. 이유인즉 그렇게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마스크를 구하기란 하늘에 별 따기처럼 어렵기 때문이다. 2시간은 기본, 그래도 구할 수만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180명 한정 판매에서 180명이란 사람이 모이자 시간에 관계없이 판매가 이루어졌다. 항의하는 시민들에게 관계자는 어차피 180명분, 그때 오나 지금 오나 못 사기는 마찬가지라며 당당하게 돌려세운다.

이에 사람들의 마스크에 대한 갈망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아침마다 뉴스에서는 오늘은 어디 어디를 통해서 몇 백만 장을 판매한다고 자랑스럽게 떠든다. 하지만 실상 현장가면 그 많다던 마스크가 땅으로 꺼졌는지 하늘로 솟았는지 없다. 급기야 3월 3일 아침뉴스에서는 격리대상이며 유증상자가 마스크를 사려고 줄을 섰다. 이어 기자의 질문에 그는 “나도 어딜 다니려면 마스크가 필요치 않겠습니까?”며 오히려 항변이다. 이는 이기심이 극에 달한 아주 위험한 상황인 것이다. 이를 간파한 기자의 재빠른 조치로 인해 더 이상 확대 되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이후 기자는 질병에 관한 매뉴얼에 따라 스스로 자가 격리에 임하는 모범을 보였다.

그럼 그 많다던 마스크는 다 어디로 갔을까? 기계처럼 어제도 줄을 서고, 오늘도 줄을 서고, 내일도 또 줄을 서서 나도 몰래 사재기(매점매석)는 하고 있지 않을까? 만일 그렇다면 진짜 필요한 이웃을 위해서 욕심을 조금 내려놓는 것은 어떨까? 마스크 부족으로 인해서 이웃이 질병에 감염된다면 나 또한 덩달아 위험한 것이다. 서로를 위해 욕심을 버려야 하는 것이다. 정부를 전적으로 믿는 것은 아니지만 마스크의 제조 물량을 대폭 늘리고 앞으로도 지속해서 공급할 예정이라는 뉴스에 희망을 걸고 상부상조의 미덕을 보일 때이기도 하다.

전쟁은 늘 끝이 있기 마련이다. 그날이 언제일지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코로나19’란 질병이 퇴치된 그 끝에 섰을 때 다함께 웃어야만 진정한 승리인 것이다. 이를 위해서 늦은 감이 없잖아있지만 그간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정부에서는 ‘코로나19’의 예방과 차단, 퇴치는 물론 마스크 공급에 전력을 기울어 주었으며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