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감영공원
경상감영공원
  • 안영선 기자
  • 승인 2020.03.03 14:5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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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감영이 있던 자리...1970년 중앙공원으로 처음 조성
도심 속의 공원으로 푸른 숲과 아름다운 꽃밭, 잔디광장이 잘 조성

여행을 시작하며

대구 중구의 근대골목은 대구시민뿐 아니라 대구를 찾는 사람들의 관광명소로 자리를 잡았다. 실제 관광객 수도 급증하고 있으며, 특히 2012년 ‘한국관광의별’에 선정되었고, 2015년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국내 관광지 100선’에 뽑혔으며, ‘행정안전부의 2012년 지역특화 우수사례’ 평가에서 문화환경 분야 전국 최우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골목투어 근대로의 여행’은 1코스에서 5코스까지 있는데, 1코스 출발점 경상감영공원에서부터 5코스 남산100년 향수길 상트르성바오로수녀원까지 1회에 1, 2코스씩 50여 포인트를 소개하려고 한다.

 

 

경상감영공원. 안영선 기자

 

경상감영공원은 대구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 역에서 5분 거리에 있다. 현재는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지만 조선시대 경상감영이 있던 자리다. 감영(監營)은 조선시대 각 도를 관찰하던 관청으로 전국에 8곳이 있었다. 초기에는 경주 상주 안동 등 여러 지역으로 옮겨 다니다가 17세기 초에 이르러 도시가 고정되었다.

선화당은 관찰사가 집무를 보던 곳으로1601년 경상감영이 대구로 옮겨올 대 조성되었다. 이후 1670년, 1730년, 1806년 세차례의 화제로 소실되고 지금 건물은 1807년 관찰사 윤광안이 지은 것이다. 현존하는 관아 건축이 별로 없어 귀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안영선 기자

경상감영은 조선 선조 34년(1601) 대구로 옮겨 왔고, 지금의 중구 포정동21에 자리잡았다. 경상감영은 대구의 도심 중앙에 위치하며 대구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에서 500여m 거리에 있어 이용하기에 편리하다.

징청각(澄淸閣)은 관찰사의 숙소로 1601년에 지어졌으나 선화당과 함께 세 차례 화재로 소실되고 지금 건물은 1807년 다시 지은 것으로 앞면 8칸 옆면4칸 팔작지붕이다.  안영선 기자

경상감영은 1896년(고종 33)에 지방 행정을 13도제로 개편한 이후에도 경상북도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경상의 이름은 경주와 상주에서 따온 것이다. 1910년부터 1965년까지 경상북도 청사로 사용하였다가 청사가 산격동으로 이전되고 난 후 대구시에서 1970년 중앙공원으로 최초 개장하였다. 1997년 경상감영공원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노인들이 쉬어가기도 편리한 공원으로 알려져 현지에서는 '대구의 탑골공원'이라고도 불린다.

선정비는 대구향교를 비롯해 각지에 흩어져 있던 선정비를 이곳에 모아놓았는데 백성에게 덕을 베푼 관찰사, 도호부사, 판관 등을 기리기 위해 세운비석이다.  안영선 기자

1만6천600㎡의 터에 1997년 도시 미관을 위해 담장을 허물고 전체를 공원으로 재조성하였다. 대구의 역사와 관련된 문화유산을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이를 널리 알리고 보존하기 위해 경상감영공원으로 명칭을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하마비는 공원입구에 있는데 비석에는 ‘節度使以下皆下馬’라고 새겨져 있다. ‘절도사 보다 지위가 낮은 사람은 말에서 내려 들어오라’ 라는 뜻이다.  안영선 기자

대구의 중심부에 위치한 도심 속의 공원으로 복잡한 도시생활 속에서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를 말끔히 해소할 수 있도록 푸른 숲과 아름다운 꽃밭, 잔디광장이 잘 조성되어 있다. 무더위를 잊게 해주는 시원한 분수, 분위기 있는 음악, 그리고 아늑한 산책로와 벤치 등이 마련되어, 대구를 찾는 외지인들이 휴식공간으로 꼭 한번 방문하면 좋을 명소다.관찰사의 집무실인 선화당(대구시유형문화재 제1호)은 과거 경상감영이 달성에서 대구로 이전될 때 건립되었다. 화재로 3차례 소실된 것을 계속 증개축해왔다. 정면 6칸, 측면 4칸의 단층 팔작기와집으로 주심포 양식과 익공식의 절충형 공포로 건축되었다. 선화당은 현재 남아있는 관아 건물이 별로 없다는 점을 생각할 때 큰 가치를 지닌다.

측우대는 선화당앞에 있다. 받침대인 측우대만 있고 측우기는 없는데 이마저도 진짜는 서울 기상청에 전시되어 있고(보물 제842호) 이것은 모조품이다.  안영선 기자

처소로 사용한 징청각(대구시유형문화재 제2호)은 관찰사의 안채, 즉 내아 관사이다. 같은 시기에 지어져 역시 3차례의 화재를 당하면서 명맥을 유지해오다가 초창기 공원을 조성할 때 보수되었다.그밖에도 조국통일을 기원하는 통일의 종, 관찰사의 치적이 담긴 선정비를 모은 비림(29기), 하마비, 측우대, 도로원표 등이 있으나, 옥이나 객사의 모습은 볼 수 없어 안타깝다.

도로 원표는 도로의 출발점이나 종점, 또는 경과지를 표시하는 것으로 도시 간 도로의 기준이 되는 지점이다. 원래 지하철 중앙로역 북쪽출입구 앞 네거리가 도로 중심인데 도로에 설치할 수가 없어 1999년 서쪽으로 215m 떨어진 감영공원에 세웠다.  안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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