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 산책]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장서 산책]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김대영 기자
  • 승인 2020.03.02 17:03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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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과학기술이 인간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스토리텔링의 형태로 상상하는 문학, 즉 SF소설이다. 책을 읽기 전에 우리나라의 SF소설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한국 최초의 SF소설은 김동인이 1929년 잡지 <신소설>에 발표한 ‘K박사의 연구’이고, 아동이나 청소년 대상의 SF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성인 대상 작품을 선보인 것은 1965년 제1회 <주간한국> 추리소설 공모전에서 입상한 문윤성의 ‘완전사회’이다.

2019년은 한국 SF 역사에서 가장 의미 있는 한 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중심에 있는 작가가 김초엽이다. 1993년생으로 포스텍 화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생화학 석사학위를 받은 작가는 2017년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공모에서 ‘관내분실’로 대상,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가작을 수상하였다.

김초엽이 펴낸 첫 번째 단편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2019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였고, 2019 조선일보·동아일보·문화일보·한겨레·경향신문 선정 올해의 책, 2019 교보문고·알라딘·예스24 선정 올해의 책, 2019 대한출판문화협회 올해의 청소년 교양도서로 선정되었다.

이 소설집에는 각각 주제가 다른 7편의 SF소설이 실려 있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에 관한 이야기이다. 유토피아 ‘마을’에서 디스토피아에 해당되는 지구로 순례를 떠난 후 돌아오지 않는 이유가 디스토피아에서 사랑을 찾았기 때문이며, 사랑 없는 유토피아에 사는 것보다 사랑이 있는 디스토피아에 사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스펙트럼’은 우주 탐사를 떠났다가 40여년 동안 실종된 여성 생물학자 희진이 태양계 바깥의 행성에서 외계 지성 생명체 루이와 조우하여 동굴에서 함께 지낸 이야기이다.

‘공생 가설’은 인간과 외계생명체의 공생관계를 그리고 있다. 신생아의 뇌 속에서 류드밀라 행성에서 왔다고 추정되는 외계생명체들이 물리적인 형태로 공생하고 있었으며, 이 외계생명체들은 수만년 전부터 신생아의 몸속에 깃들어 사랑, 윤리, 이타심과 같은 가치를 가르쳤다고 한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우주 행성 간 이동이 가능해진 시대에 슬렌포니아 제3행성에 가기 위해 100년 넘게 우주정류장에서 혼자 우주선을 기다리고 있는 170세 노인 안나의 이야기다.

‘감정의 물성’은 행복, 침착, 공포, 우울과 같은 감정을 조형화한 제품에 관한 이야기이다. 침착의 비누를 만지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설렘 초콜릿을 한 조각 먹으면 마음이 두근거리는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관내분실’은 죽은 사람들의 생애 정보를 데이터로 이식하여 보관하는 ‘마인드 도서관’에 관한 이야기이다. 지민은 엄마의 영혼이 담긴 마인드의 인덱스가 도서관 내에서 분실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엄마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는 우주비행사로 선발된 최재정이 우주 너머보다는 인간 몸의 한계를 뛰어넘는 일에 관심을 갖고, 18개월의 신체개조 장기프로젝트로 다져진 사이보그의 몸으로 우주 대신 깊은 바다로 홀연히 떠난다는 이야기이다.

기자가 초등학교 교사였을 때, 해마다 ‘과학의 달’인 4월이 되면 학교에서 다양한 과학행사를 했다. 과학행사 중에는 ‘과학도서 독후감 쓰기’와 함께 ‘미래과학 글짓기’도 있었다. 과학의 발달로 미래 생활이 어떻게 변할지 상상해서 쓰는 글쓰기였다. 학생들에게 글쓰기에 대한 동기 부여를 위해 기자가 읽었거나 상상한 미래생활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주로 로봇, 말하는 시계, 움직이는 도로, 우주여행, 해저개발, 지하생활 등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려줄 때마다 기자의 상상력이 형편없다는 사실을 실감하였다. 그 당시 기자는 과학에 관심이 없었고, SF 소설을 읽은 적도 없었다. ‘블레이드 러너’를 보고도 원작자가 필립 K. 딕이라는 사실을 몰랐으며, 영어권 SF 문학의 거장으로 꼽히는 빅3(Big Three/ 아서 클라크, 아이작 아시모프, 로버트 하인라인)도 알지 못했다. 다시 학생들을 가르친다면 위의 작가들이 쓴 소설에 나타난 미래세계와 김초엽이 소설로 그려낸 미래세계를 예로 들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상상력이 고갈되고 있음을 느낀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현실에 적응하여 살기 바쁘다. 코로나19에 감염될까 봐 방콕생활을 하는 현실을 벗어나 김초엽이 그린 미래세계에 살고 있는 나 자신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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