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레라와 미국 공중보건의 근대화
콜레라와 미국 공중보건의 근대화
  • 정신교 기자
  • 승인 2020.02.27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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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중보건의 근대화

18세기 프랑스 대혁명, 영국의 산업혁명과 더불어 미국의 독립은 인류 근대사의 빛나는 성과이다. 19세기 미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변모하는 산업과 경제의 중심지가 되었다. 동부 지역에서는 수많은 공장이 들어서고, 대운하와 서부 철도 건설이 시작되고 대서양을 건너서 몰려오는 이민자들로 보스턴과 뉴욕, 필라델피아와 같은 대도시들은 몸살을 했다.

 

콜레라는 물과 음식물로 인하여 콜레라균(Vibrio cholerae)이 감염되어 발생하는 급성 설사 질환으로서 인도 벵갈 지역의 풍토병이다. 대부분 가벼운 증세 끝에 완쾌되지만, 심하면 탈수와 쇼크로 사망에 이르는 유행성 감염병의 일종이다. 호열자(虎㤠刺)라고도 하여 우리나라에서는 하절기의 집중관리 대상 제1군감염병으로 관리되었으나, 2003년 이후에는 발생한 사례가 없었다. 2020년도부터 감염병의 관리 체계가 질병의 심각한 정도와 전파력에 의해 바뀌어서 콜레라는 제2급 감염병으로 지정되었다.

 

 

1826년에 유행한 콜레라는 유럽에서 수만 명의 사망자를 내고, 이민자들을 따라 미국까지 전파되었다. 당시에는 전염병의 발생 원인을 명확하게 규명하지 못하였으며, 아편 처방과 사혈 등의 전통적인 치료법에 의존하였으나 효과가 없었다. 뉴욕 주에서는 육로나 해상으로 들어오는 모든 물자와 사람들을 검역하는 공중보건법을 제정하였다. 이 법률에 따라 뉴욕시에서는 환자들을 학교나 은행 같은 임시 병원에 격리하고 음식을 날 것으로 먹지 말 것을 시민들에게 조언하였다.

한편 콜레라와 같은 전염병의 발생을 당시의 물질만능주의 풍조에 대한 징벌로 여겨, 금주와 도덕적인 생활을 강조하는 대각성 운동(Great Awakening)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또한 가톨릭 신자들이 대부분인 아일랜드 이민자들에 의하여 콜레라가 전파된다는 낭설이 퍼지면서, 잉글랜드계가 주류인 미국 사회에 반이민주의 이념이 생겨나기도 하였다.

당시 아일랜드에서는 감자 역병으로 인한 대기근이 발생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빈털터리로 이주한 아일랜드인들은 가사 도우미와 같은 하급 노동자로 일하면서 천대를 받았으나, 신앙심과 성실 근면한 생활로 미국 사회에 적응하여 나갔다.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만 주연의 파 앤드 어웨이 (Far and Away)’는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난관을 극복하고 정착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이며,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잉글랜드계와 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의 갈등과 투쟁을 소재로 하여 영화 갱스 오브 뉴욕(Gangs of New York)’을 제작하였다.

 

1848년의 콜레라는 프랑스에서 뉴욕으로 오는 배 안에서 발생하여 뉴욕시에서만 5천명 이상이 사망하였다. 콜레라가 다시 발생하자, 미국은 영국의 공중보건법을 본받아서 공중보건국을 설립하고, 위생 개혁을 시작하였다.

당시 각 가정에서는 배설물들을 수채통에 모아서 방치하였다가 거리와 강에 버렸으며, 시가지에는 수십만 마리의 말들이 마차를 끌고 다니며 배설한 오물들로 넘쳐났다. 콜레라 발생에 따라서 뉴욕 공중보건국에서는 각 가정과 옥외 화장실의 위생 상태를 점검하고 개선하였으며, 정화조를 설치하고 상수와 하수, 오수를 위생적으로 관리하였다. 매사추세츠주에서는 공중보건과 주민 환경 위생에 대한 정부의 책임과 역할 및 실질적인 방안을 제시하는 위생 보고서(Report of the Sanitary Commision of Massachusettes, Shattuck Report)를 발간하였다.

미국 사회의 이러한 각성과 개혁에도 불구하고, 1866년도에 세 번째의 콜레라가 발생하여, 1천 명 이상이 뉴욕에서 사망하였다. 뉴욕 보건국에서는 이민자들이 주로 거주하는 공동 임대주택의 보건 위생을 개선하기 위한 공동주택법(Tenement Law)을 제정하였다. 주택의 침실마다 창문을 설치하고, 비상대피로와 화장실을 구비하도록 하였다. 또한 공중보건 향상과 위생 개선을 위하여 보건의료 인력을 양성하여 보건국에 배치하였다

 

코흐(Robert H. H. Koch, 18431910)1883년 인도 캘거타에서 콜레라균을 최초로 발견하여 순수 배양하였으며, 콜레라균의 감염 경로와 퇴치 방법을 규명하였다. 또한 특정세균에 의해서 특정 질병이 발생된다는 세균설(細菌說)을 확립하였다.

세 차례에 걸친 콜레라를 겪으면서 19세기 미국 사회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질병을 인식하여 역학조사(疫學調査)를 실시하였으며, 관련 법규를 제정하여 검역과 격리를 실시하고, 주거 환경 개선과 상수와 하수, 오수를 분리 및 정화하였으며, 보건의료 인력을 양성하고 공중보건 조직을 체계화하였다.

 

말등에 앉아 오던 역병과 증기선을 타고 오는 전염병에 이어 초음속으로 신출귀몰하는 신종 감염병을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러야 할까?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옛것을 살펴서 새것을 대하면 모범이 될 수 있다’, 공자님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