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보다 더 무서운 ‘마녀 사냥꾼’
‘코로나19’보다 더 무서운 ‘마녀 사냥꾼’
  • 노정희 기자
  • 승인 2020.02.21 00:51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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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자들도 피해자이다
-‘보고 싶다’는 말은 허용, ‘만나자’는 말은 금기어
-유언비어에 동조하지 말고, 개인위생에 만전을

대구가 뚫렸다. ‘코로나19, 31번째 확진자가 대구에 있다’는 뉴스에 민심이 술렁거린다. ‘예방을 잘하고 의심증상 발생 시 문의하라’는 안전안내문자가 떴다. 하루가 지나자 감염자 숫자가 올라갔다. ‘감염확산 우려, 열 또는 기침 증세가 있으면 외부활동 자제하고 연락 바란다’는 문자로 격상되었다. 대구 시민의 일상은 초토화되었다.

문학단체 총회는 무기한 연기되었고, 공익단체 총회는 서면결의로 대체하겠다는 문자가 떴다. 소모임도 미뤄졌고, 친구와 밥 먹자는 약속도 미뤄졌다. 친지와 다른 지역 지인들의 전화와 문자가 쇄도한다. ‘건강 지키라’고 당부한다. 군인들만 총 들고 나라 지키는 줄 알았는데, 이제 내 건강을 스스로 지켜야 나라가 안정될 처지에 놓였다. 도서관, 문학관, 평생교육원, 공공기관도 줄줄이 문을 걸어 잠갔다. 신학기 개강도 미뤄졌고, 종합병원 응급실까지 문을 닫아걸었다. 아프면 어디로 가야 할지 난감하다.

예전에는 어떠했을까. ‘조선왕조실록’에는 79차례의 역병이 돌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질, 콜레라, 홍역 등의 역병이었다. 10만 명 이상 죽은 경우도 6번이나 있었고, 어떤 해는 인구의 7.8%가 죽었다고 한다. 전쟁으로 죽은 숫자보다 많았다. 18~19세기에 거의 전 세계에서 전염병이 발생하였는데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마마, 콜레라는 중국에서 들어왔다고 하니, 요즘 전염병 발생지와 다르지 않다. 특히 우리나라는 우물 가까이 뒷간이 있었고, 경조사에 동네 사람들이 모여 음식을 나누었다. 전염병 대량 확산의 조건이었다.

빠른 정보와 방역체계가 잘 갖춰진 현대에도 전염병은 창궐한다. 개인위생이 허술한 것도 아닌데 일파만파로 번져간다. 전염병도 발전하여 현대화되었나 보다. 코로나19, 31번 확진자가 검사 안 받으려고 간호사 멱살을 잡았다, 급격한 전염병 전파에 대구 지방을 봉쇄한다는 유언비어 문자가 급속도로 전파되었다. 어느 종교가 거론되고, 이어서 그 종교단체와 확진자에 대한 원망이 쏟아졌다. 예전처럼 종교인들이 한데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있으니 대량 확산될 수밖에 없었다. 감염자의 나이, 주소, 직장이 거론되었다.

‘다 지나가리라’는 안일하고 긍정적이던 마음이 어느 유행가 ‘홀로 된다는 것’을 원하게 되었다. 요즘은 슬프거나 외로워도 홀로되는 게 편하다. 연인들도 전화상으로 ‘보고 싶다’는 말은 허용할 수 있으나 ‘만나자’는 말은 금기어가 되었단다. 현대판 견우직녀가 따로 없다. "코로나가 무섭긴 무섭다. 우리 집 남자가 직장에서 땡~하니 집에 들어오고. 마트 가기 겁나고 완전 패닉이다. 가짜뉴스 만들지 말고, 손 잘 씻고 마스크 하는 것 말고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지인의 페이스북 글이 웃고 울게 만든다. 신문 칼럼에서 읽은 ‘누죽걸산(누우면 죽고 걸어 다니면 산다)’에서 ‘나죽집산(나가면 죽고 집에 있으면 산다)’이 이 시대의 사자성어로 등극 되었다.

여기저기서 날아오는 정보는 머리를 어지럽힌다. 잠시 밖에 나갔다가 와도 괜히 머리에 열이 나고 어지럽고, 감기 증세가 오는 것 같다. 착각인지 실제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마주치는 사람이 무섭고, 말을 나누기는 더 무섭다. 그러나 ‘코로나19’보다 더 무서운 것은 ‘마녀 사냥꾼’들의 거침없는 독설이다. 감염자들도 사실은 피해자가 아닌가. 내 이웃, 친지가 감염될 수도 있다. 그때도 손가락질 할 수 있겠는가. 누굴 탓하기 전에 그들을 이해하고 빨리 완쾌하기를 바라는 게 우선이다. 힘들고 어렵기는 다 마찬가지이다. 이럴 때일수록 유언비어에 동조하지 말고, 개인위생에 만전을 기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