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도시농업] 고추· 가지 주렁주렁, 지인에 따주는 재미
[시니어 도시농업] 고추· 가지 주렁주렁, 지인에 따주는 재미
  • 최해량 기자
  • 승인 2020.02.19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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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명퇴 후 남편과 귀농
무공해 채소 넣고 된장찌개
농막서 잘 때 별 구경 신기

 

◆전원생활을 꿈꾸던 도시 왕초보 여자 농부

도시에서 나고 자라 농사는 전혀 모르지만 새로운 인생을 즐기는 도시 여자 농부 박모(65) 여사를 만나 행복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작은 저수지가 있고 소나무가 삼면에 병풍처럼 둘러쳐진 야트막한 산자락의 컨테이너 농막에서 그녀와 인터뷰했다. 지난해 추수를 끝난 겨울 밭에는 고춧대가 뽑혀져 있었고 농막 위쪽 밭에는 아직 묘목에 불과한 사과나무, 자두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교사로 명예퇴직한 뒤 무언가 부족함과 무료함을 느끼던 중 텃밭을 가꿔보자는 남편의 제안이 계기가 됐다. 그 무렵 외사촌이 고향 땅을 정리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구순을 바라보는 친정어머니는 고향 논밭이 다 팔려간다는 소식에 몹시 서운함을 느끼고 있던 때에 남편이 바로 그 땅을 구입했다. 외가 땅이고 대구에서도 멀지 않아서 좋았다.

지난해 봄 농사 준비를 서둘렀다. 멧돼지와 고라니의 피해를 막기 위해 철망을 두르고 농사용 전기도 넣었다. 창고 겸 생활공간으로 쓸 15평 남짓한 하우스도 한 동 지었다. 수도는 비싸서 엄두도 못 내고 농사용 관정에서 물을 끌어 쓰기로 했다.

남편과 지인들이 가지, 고추를 심었다. 고추 꽃이 피는가 싶었는데 며칠 지나니 새끼손가락만큼 자라났다. 가지는 너무 많이 열려 지주를 세워 주었다. 고추와 가지가 주렁주렁 달릴 즈음 지인들을 초청했다. 밭에서 나는 채소를 뜯어 넣고 된장찌개를 끓여 점심을 함께 나누었다. 한바탕 웃음꽃을 피운 후에 한 보따리씩 따주었다. 일이 비록 힘들어도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일주일에 이틀 정도 농막에 왔지만 잡초가 무성해서 걱정이었다. 먼저 둥지를 튼 이웃은 “힘자라는 만큼만 농사짓고 자연을 존중해주자”고 했다. 제초제 쓰지 않고 힘닿는 데 까지만 풀을 뽑았다. 자연에서 얻은 수확물은 생각보다 넉넉했다. 지인들에게 조금씩 나누어 주는 기쁨도 만만치 않았다. 무공해 채소를 먹는다는 기쁨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가끔 농막에서 자는 날도 있는데 도시에서는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밤의 고요함과 평안함을 느끼며 영롱하게 반짝이는 별빛에 매료됐다.

그러나 가로등이 없어 깜깜한 밤에 농막을 찾는 것이 쉽지 않다. 농사철이 아닌 겨울에도 가끔 와서 관리도 하고 겨울 풍광을 즐기고 싶으나 물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농사는 불편함과의 동거가 아니겠느냐”며 밝게 웃음 짓는 여자 농부의 인생 2막이 평화롭고 행복하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