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불에 액운 날리고 보름달에 소원 빌고
쥐불에 액운 날리고 보름달에 소원 빌고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0.02.10 16: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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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귀신을 액땜한다고 어머니가 전날 저녁에 걸어둔 것이다.
일종의 추렴 형식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천연기념물 제301호인 청도 대전리 은행나무로 향한다.
쥐불놀이의 시작으로 청솔가리에 불이 붙고 있다. 이원선 기자
쥐불놀이의 시작으로 청솔가리에 불이 붙고 있다. 이원선 기자

조무래기들의 보름은 발등이 깨질 듯 커다란 눈곱을 떼기가 무섭게 방구석에 올망졸망 자리하고 있는 볶음 콩을 먹는 것으로 시작된다. 간혹 희끗희끗 소금알맹이도 더러 보이지만 오히려 고소함을 더하기에 한입에 털어 넣는다. 액막이를 위한 볶은 콩 먹기가 일종의 부럼 깨기인 것이다.

점차 어둠이 물러가는 벽에는 어김없이 체가 걸려 있다. 신발귀신을 액땜한다고 어머니가 전날 저녁에 걸어둔 것이다. 어리석은 신발귀신이 도둑질을 왔다가 체의 구멍을 세느라 아침을 맞는 데서 유래된 것이다. “아무개야 체”하는 말에 득달같이 어머니께 갖다 주면 곧장 아침이다. 사실 찰밥은 입에 맞질 않았다. 왜 찰밥을 먹어야 하는지 이유도 까닭도 모르고 찐득한 것을 입으로 가져간다. 다행인 것은 평소에 못 먹던 고사리가 있고 콩나물 등이 있어서 특별한 날인 줄을 아는 것이다.

햇빛을 소스란히 머금은 정월대보름의 둥근달이 앞산 위로 둥실 떠오르고 있다. 이원선 기자
햇빛을 소스란히 머금은 정월대보름의 둥근달이 앞산 위로 둥실 떠오르고 있다. 이원선 기자

‘신종코로나’란 질병으로 인해 정월대보름을 맞아 계획하고 홍보에 열을 올렸던 쥐불놀이 등등 거의 모든 행사가 취소되었다. 금년은 요행히도 토요일이라 잔뜩 기대를 했는데 풀이 죽은 것은 물론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 차에 청도의 작은 마을에서는 쥐불놀이 행사 등을 예정대로 진행한다기에 몇몇 지인과 함께 찾아 나섰다. 팔조령을 넘을 때까지도 기연가미연가 했지만 동네 어귀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대나무 장대를 휘휘 감아 펄펄 날리는 흰색과 어우러진 빨간 깃발이었다. 그간의 마음고생을 한순간에 날려버리는 징표이기도 했다.

현장에 도착하고 보니 작은 논 가장자리에 청솔가지로 쌓은 가리가 있고 새끼줄이 여러 겹으로 둘러쳐 있다. 이미 새끼줄 곳곳에는 많은 돈과 더불어 소원지가 빼곡히 꽂혀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이후로도 속속 도착한 마을사람들은 미리 준비된 돈을 꽂고 소원지에 각자가 뜻하는 바를 적었으며 대부분이 예시된 문장에서 합격 기원, 부귀 강령 기원, 국태민안 기원, 만사형통 기원 등등으로 한문이 어려운 동민들을 대신해서 대필도 가능했다.

새끼줄에는 돈과 소원 지로 빼곡하다. 이원선 기자
새끼줄에는 돈과 소원 지로 빼곡하다. 이원선 기자

돈은 마을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꽂았으며 차후 마을의 발전 기금으로 쓴다고 했으며 이장님은 “이 돈으로 마을의 길흉사. 오늘처럼 쥐불놀이, 지신밟기, 동제 그리고 오늘 저녁 마을회관에서 있을 동리사람들 전체를 위한 떡국잔치에 소용된다 아닙니까?”한다. 일종의 추렴 형식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일찌감치 어우러진 동리사람들이 안부를 묻는 등 분주한 한쪽 옆으로 커다란 양은솥에 김이 오르고 있다. 추운 날씨에는 뜨끈한 국물이 최고로 어묵탕을 끓이고 있는 중이었다. “조금 있다가 국물이 끓으면 한 그릇씩 하세요!” 인정이 넘쳐나 친절까지 베푼다.

누군가 “달이 뜬다. 보름달이 뜬다"하기에 돌아보니 서산으로 빠져들던 해가 여운인 듯 앞산 자락에 반쯤 걸린 상태에서 둥실 대보름의 둥근 달이 솟구치고 있었다. 이 순간을 기다렸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달을 향해 손을 모으고 머리를 조아린다. 소원지에 적은 뜻이 모두 이루어지길 간절히 기원하는 것이다.

쥐불놀이 한편으로 양파가 파랗게 자라 있다. 이원선 기자
쥐불놀이 한편으로 양파가 파랗게 자라 있다. 이원선 기자

마을 어른신들 중 한 분이 강신의 례로 잔을 올리고 곧장 쥐불놀이가 시작되었다. 소방서에서 꼼꼼히 점검한 뒤라 불이 날 염려는 없었다. 불길이 하늘 높이 치솟자 꽹과리가 울리고 북이 울리고 징이 울었다. 뒤를 이어 비를 부르는 장구가 후~두둑 후~두둑 춤을 춘다. 사물놀이는 비, 바람, 구름, 번개를 상징하는 것이다. 사물놀이의 신명처럼 자연의 조화가 잘 이루어지면 풍년이 들고 풍년이 들면 사람들의 삶은 자연 윤택해 지는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어깨가 절로 들썩거리는데 모든 액을 태워 없애고 추위마저 날려버리는 듯 쥐불이 훨훨 타오른다. 때를 같이하여 달마저 중천에 이르자 동리사람들은 불 주위를 빙빙 돌아 시간을 잊은 듯 만복을 기원한다.

쥐불놀이의 분위기가 어느 정도 사위자 마을사람들은 양파가 파릇파릇한 들녘을 지나고 고샅을 돌아들어 천연기념물 제301호인 청도 대전리 은행나무로 향한다. 마을수호신으로 여기고 있는 은행나무를 돌고 돌아 지신밟기를 하기 위함이다. 샤머니즘과 토템 사상이 적당히 어우러진 모습으로 태고의 신명과 바람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잔은 올리고 사물놀이패가 나무주위를 빙글빙글 돌고 만장은 펄럭펄럭 바람결을 몸을 맡겨 춤을 춘다. 사람들도 가만히 있을쏜가 덩달아 어깨를 들썩들썩 흥을 돋우어 춤사위를 펼친다.

설날이 폐쇄적인 명절이라면 대보름은 개방적인 명절이다. 추운 겨울을 맞아 집 안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밖으로 나와 대동단결하여 어울리는 것이다. 그 시작이 정월대보름인 것이다. 은행나무에서의 지신밟기가 끝나자 당산나무에서의 동제로 이어진다.

어느덧 보름달은 중천으로 향한다. 이제 마지막 남은 행사는 온 동리사람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떡국을 먹는 순서다. “오이소 한 그릇하고 가이소!” 청했지만 떡국이 끓기까지는 한 시간여 남짓하여 아쉬움을 뒤로 한다.

천연기념물 제 301호인 대전리 은행나무 앞에서 지신을 밟고 있다. 이원선 기자
천연기념물 제 301호인 대전리 은행나무 앞에서 지신을 밟고 있다. 이원선 기자

손님 대접이 변변찮아 못내 아쉬운 듯 “내년에도 꼭 오이소! 우리 마을은요! 청도에서 큰 행사가 있어도 일찍 와서 이렇게 우리 마을 방식으로 안 합니까?” 청한다. 이웃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여기고 숟가락 숫자까지 꿰고 사는 동네! 굳이 설명이 필요 없었다. 말만 들어도 마을의 분위기가 얼마나 화기애애한지 알 것 같다. 초가집만 몇 채 보였다면 과거 속의 시골마을에 녹아든 듯 정겨운 마을이다.

문득 이른 저녁을 끝내고 뒷동산에 올라 보름달을 기다리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10살 남짓한 조무래기들에게 무슨 큰 소원이 있었을까마는 달이 뜰 때면 늘 손을 모으고 달을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그때마다 내려다보는 마을은 환하게 쏟아지는 달빛을 고스란히 품었고 들녘은 가을의 풍요를 보는 듯 누런빛으로 가득했다. 작금의 동리주민들의 가슴 속도 이와 같은 기쁨으로 넘쳐날 것이다.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정겹고 아기울음이 점차로 잦아드는 동리가 축복을 듬뿍 담은 은은한 달빛이 아래 고즈넉하고 마을회관 쪽에서는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