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효각(三孝閣)의 유래
삼효각(三孝閣)의 유래
  • 김영익 기자
  • 승인 2020.02.10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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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효자비(三孝子碑)
경주시 탑동 숭덕전 동문 대로변의 삼효각. 경주시 제공
경주시 탑동 숭덕전 동문 대로변의 삼효각. 경주시 제공

삼효각(三孝閣)은 경주김씨(慶州金氏) 영분공파(永分公派) 후인(後人) 병조판서 휘 남보(南寶)의 9대손 김응벽(金應璧), 김응규(金應奎), 김응정(金應井) 삼형제공이 효행으로 조선 명종16년(1561년, 신유) 윤 5월 21일에 효자 정려를 받은 사실을 현창(顯彰)하기 위해 경주부의 남쪽 금광제(金光堤) 위에 건립한 정려각(旌閭閣)이다. 이 비각은 오랜 세월 비바람에 낡고 무너져 기둥이 썩고 대들보가 꺾이고 편액만 홀로 있었기에 행인이 탄식하고 고을 사람들이 개탄하였으나 자손들이 가난하여 중건(重建)을 하지 못하였다.

순조 4년(1804년) 갑자년 겨울에 비로소 중건하기로 함께 의논하여 옛 여각을 옮겨짓기로 결의하고, 평탄하고 광활한 곳에다 좋은 때 좋은 날에 넓고도 반듯하게 세웠던 것이다.

이대의 비명(碑銘)병서는 당시 통정대부 경주부윤 진병마절도사인 박종경(朴宗京)이 찬하였고, 삼효각 현판은 칠원현감 최심건(崔心健)이 썼으며, 옮겨 지을 당시 축문은 치암(癡庵) 남경희(南景羲)가 찬(撰)하였다. 그 후 15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가는 동안 이 여각의 건물이 기울고 담장이 일부 무너져서 수리와 이건(移建)이 불가피하게 되어 1942년에 탑동 귀호(鬼虎) 들녘으로 이건(移建)하였다.

이곳 또한 경지가 정리되고 주변 환경이 변화하여 숭덕전(崇德殿) 동문 도로변에 부지를 마련하여 재차 이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 후 관리동을 건립하고 위토를 매입하여 관리인으로 하여금 삼효각의 관리와 벌초 및 묘사제수를 마련하고 성손접대 등의 편의를 제공할 수 있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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