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을 지키는 사람들] 하회별신굿 산주 김종흥 씨
[전통을 지키는 사람들] 하회별신굿 산주 김종흥 씨
  • 강효금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0.02.01 12:09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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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무형문화재 제69호 하회별신굿 탈놀이 이수자
중요무형문화재 제108호 목조각 이수자
관객과 광대 재담 주고받으며 26년간 덩실덩실
그가 사는 세상, 그의 꿈 이야기
중요무형문화재 제69호인 안동 하회별신굿 탈놀이 이수자인 김종흥 씨가 파계승 탈을 들고 있다.   이원선 기자
중요무형문화재 제69호인 안동 하회별신굿 탈놀이 이수자인 김종흥 씨가 파계승 탈을 들고 있다.     이원선 기자

 

안동하회마을 입구 목석원의 주인인 김종흥(66) 씨에게는 여러 가지 수식어가 붙는다. 하회별신굿 탈놀이의 파계승이자 산주, 장승을 만드는 목조각가, 사진작가들에게 함께 작업하고 싶어 하는 모델 등등. 안동을 대표하는 김종흥 씨는 1999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하회마을을 방문했을 때 ‘생일 축하 건배자’로 나서 전 세계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겨울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목석원을 찾았다.

 

▶ 하회별신굿의 산주(山主)

“하회별신굿에서 제사를 주관하는 제사장입니다. 산주는 하회 류씨가 아닌 타성(他姓)인 사람이 맡게 되어 있습니다.”

정월대보름 동제가 가까워오면 산주는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한다. 산주가 되는 조건도 까다롭다. 덕이 있고 집안이 탈 없이 깨끗해야 하며, 종신직이다. 김종흥 씨는 26년 전부터 산주를 맡았다. 하회별신굿은 옛날에는 5년이나 10년에 한번씩, 마을에 큰일이 있을 때 행해졌다. 신에게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했다.

하회별신굿은 모두 열 마당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강신(降神)과 오신(娛神), 송신(送神)으로 나뉜다. 먼저 산주는 제를 올리며 신이 내려오기를 청한다. 이에 화답하여 각시가 현신하고, 신은 땅을 밟을 수 없어 무동을 타고 등장한다. 각시가 걸립하면 사람들은 집안에 액이 있거나 소망이 있으면, 각시에게 재물을 건네며 액을 막아주기를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청한다. 하회별신굿은 원래 열 마당이지만 상설 공연에는 제의 부분을 뺀 여섯 마당, 놀이마당만 한다.

“원래 우리 문화는 ‘달 문화’입니다.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정월대보름에는 대동놀이와 윷놀이로, 가을에는 감사를 드리는 팔월 한가위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해돋이 문화는 아직 낯설게 느껴진다고 덧붙인다.

 

▶ 하회별신굿 탈놀이

“우리 놀이는 마당놀이입니다. 무대가 있는 서양의 놀이와는 다릅니다.”

마당놀이는 탁 트인 공간에서 관객과 같이 덕담을 주고받는 공동체 놀이문화다. 우리는 이 놀이문화를 통해 한데 어울리고 단결한다. 하회별신굿 탈놀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재담’이다. 관객과 광대는 재담을 주고받고 덩실덩실 어울려 춤을 추며 분위기가 무르익는다. 때로 관객들이 반응하지 않을 때도 있는데, 그럴 때는 몹시 당황한다고 한다. 그런데 왕왕 별신굿에서 하는 말이나 행동을 요즘 시각에서 바라보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마당놀이는 그 시대, 그 당시 문화로 이해하고 봐주면 좋겠다고 그는 얘기한다.

그가 맡은 ‘파계승’역시 고려시대 불교가 지닌 허구성과 승려의 타락을 해학적으로 풀어낸 것이다. 중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 부네에게 이끌리는 연약한 모습이 우리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지나치게 현대적인 잣대로 탈놀이를 바라보지 않았으면 한다는 그의 걱정 섞인 당부다.

 

▶ 가장 한국적 아름다움을 지닌 마을

하회마을은 보기 드물게 ‘마을’과 ‘병산서원’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2022년에는 ‘하회별신굿 탈놀이’가 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라고 한다.

“평민들의 놀이가 하회별신굿 탈놀이라면 양반들의 놀이는 ‘선유줄불놀이‘입니다. 이 아름다운 곳에 이 좋은 문화유산을 정작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그는 마을 청년들이 이 전통문화를 이어가야 하는데 그 가치를 알지 못하고, 행사가 일회성으로 그치는 것이 안타깝다고 힘주어 얘기한다. 특히 하회마을에 전동차가 다니면서 관광객들의 민원이 쏟아지고 있다고 한다. 고즈넉한 마을에서 천천히 걸어 다니며 하회마을이 지닌 고풍스러운 선비문화를 감상해야 하는데, 법으로 규제할 방법도 없어 속만 태우고 있다고 한다.

 

김종흥 씨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08호 목조각 이수자로 장승을 만드는 목조각도 겸한다.      이원선 기자
김종흥 씨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08호 목조각 이수자로 장승을 만드는 목조각도 겸한다.    이원선 기자

 

▶ 장승 깎는 사람

“하회별신굿 탈놀이보다 먼저 시작한 것이 장승입니다.”

그는 지금의 목석원 자리인 계단 논 1천 평을 구입해서 장승공원을 만들었다. 전통적인 장승은 사모관대를 쓰고 족두리에 연지곤지를 찍은 모습이다. 익살스럽고 우스꽝스러운 표정은 보는 이를 미소 짓게 한다. 그는 장승 퍼포먼스를 하는 행위예술가이기도 하다. 그 모습을 여러 시진작가들이 카메라에 담아 공모전에서 입상하는 통에 모델로도 잘 알려져 있다.

예전에 장승은 신목(神木)으로 만들었다. 개나 닭소리가 들리지 않는 깊은 숲, 고요하게 자란 나무만이 마을을 지키는 장승이 될 수 있었다. 특히 소나무와 밤나무는 장승의 주재료였다. 이제 세월이 흘러 목공소에서 장승에 쓸 나무를 구해 온다고 한다.

 

▶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작년 모 방송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여순 감옥을 비롯한 윤봉길, 안중근 의사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는 시간을 가졌다.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자신을 다시 돌아보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100년 전 우리 민족의 강인함과 우수성을 마음에 새기며, 백범 김구 선생님의 말씀이 계속 맴돌았습니다. 문화의 강국이 되라는 말씀이.”

그는 독일, 캐나다, 미국 등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장승을 깎고 탈춤도 추는 공연을 했다. 다시 태어나도 여전히 춤추고 노래하고, 나무를 깎고 다듬으며 나무에 우리 혼을 새기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한다.

멀지 않은 시간에 장승 박물관을 지어 우리 문화를 계승시키고 발전시킬 기틀을 닦는 것이 그가 가진 소망이다.

 

카메라를 갖다 대자마자 자연스레 포즈를 취한다. 타고난 끼에 더해진 노력이 오늘날 그를 이 자리에 있게 했다. 하회마을과 함께 그의 하회별신굿 탈놀이가, 장승이 우리 전통문화의 지킴이로 당당히 자리 잡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