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운슬링-행복한 가정] 연명치료 거부 의향서를 제출하고 온 80대
[카운슬링-행복한 가정] 연명치료 거부 의향서를 제출하고 온 80대
  • 시니어每日
  • 승인 2020.02.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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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세의 늙은이입니다. 집에 가지 않은지가 10여 년이 넘었습니다. 8남매의 맏이로 태어나 시골에서 먹을 것이 없어서 공부는 국민(초등)학교도 반 밖에 못 다녔습니다.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하던 시절이라 입에 풀칠을 위해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할 거라곤 그것 밖에 없었었으니까요.

돈이 된다면 무엇이나 했기 때문에 해보지 않은 장사가 없었습니다. 시골에서 나는 송이나 곶감을 도시로 내다 팔았고 도시에 있는 옷가지나 양말을 농촌에 팔았습니다.

혼자 돌아다니니 식사도 불규칙했고 불편해서 역시 가난했던 집의 동갑내기 둘째 딸과 18살 때 결혼을 했습니다. 고생 고생하다가 건축업(집장사)으로 경제 기반이 좀 튼튼해졌고, 자녀도 5남 1녀입니다만 사실 막내아들은 혼외 자식입니다.

돈도 소문이 날 정도로 많이 모아서 우리 군에서 요지인 땅을 몇 천 평을 샀고 요지마다 모텔 5채를 지어 세를 놓았습니다. 아들에게 하나씩 주려고 말입니다. 수금할 때마다 노다지라더니 양식장에서 고기를 낚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며느리도 고르고 골라 결혼시켰습니다. 아들도 딸도 기반을 잡아가고 여유가 좀 생기나 생각했을 때 친구로부터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더니 친구가 같이 레미콘사업을 하자고 했습니다. 큰 사업이고 돈도 더 많이 벌 것 같았습니다. 실패한 적이 없는 때라 넓은 터를 사 새 사업을 시작을 했는데 그것이 큰 실수였습니다. 사기를 당한 것입니다. 친구는 행방불명되고 돈도 사라졌습니다. 모텔을 다 팔아도 빚 청산이 어려웠습니다.

식구들 볼 면목도 없고, 빚을 갚다 갚다 안 되어 집을 나오고 말았습니다. 지금은 허름한 여인숙에서 한 달 20만 원 짜리 월세를 살고 있습니다. 여인숙의 청소며 모든 것을 돌봅니다. 건축 일을 했기 때문에 고장 난 수도며 전기도 다 고칩니다.

그렇게 사는데 자식 앞에 얼굴을 내 놓을 수가 없고 이런 모습을 보면 저들이 마음이 얼마나 불편하겠습니까? 혼자 산다는 소식을 어떻게 들었는지 사기쳤던 친구가 한 달에 50만 원씩을 보내옵니다. 지난 일인데 고맙지요. 오늘은 연명치료를 거부한다는 의향서를 작성하고 오니 마음이 허전하기도 하고 인생이 허무하다는 생각에 눈물도 납니다. 사실은 가족도 보고 싶고 외로운 생각도 많이 나는 하루였습니다.  

조언드림니다: 
앞날을 알 수만 있다면 누가 실패하겠습니까? 아침에 나간 사람이 저녁에 못 돌아올 수도 있고 방금 다녀오겠다던 사람이 행방불명될 수도 있듯, 한치 앞도 모르는 것이 우리 인생 아닙니까?

우린 늘 다 알 수 있다는 듯이 계산하고 살아가지만 실패도 하고 그 실패를 딛고 일어서면 많은 박수도 받고 하는 것이 삶 아니겠습니까? 가기 좋은 꽃길만 있다면 인간만사 세옹지마 (人間萬事 塞翁之馬)라는 말은 왜 나왔겠습니까?  

어린 나이에 결혼하여 아이들도 여럿이니 많이 힘들었겠습니다만, 한때는 실패를 몰랐던 재미있었던 시절을 보낸 적도 있지 않습니까? 환경이 사람을 키운다더니 열여덟 살에 결혼하여 장사를 계속하시고 험한 집장사까지 하셨으니 그 고생이 얼마였겠습니까? 보지 않아도 눈에 선합니다.

우리 인생길을 산길에 비유하지요? 오르막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입니다. 실패하고 싶어 하는 사람 없습니다. 좀 더 성장을 꿈꾸다가 실패를 하는 경우가 한둘이 아니지요. 가족에게 할 만큼 다하신 겁니다. 최선을 다했으니까요. 너무 자신을 학대하지 마세요. 불가항력(不可抗力)이었지요.

가족들도 가장이 보고 싶을 것입니다. 나와 있다고 해서 걱정하시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해가 지면 산에 있던 소도 집을 찾아오듯 나이가 들면 고향이 그립죠. 가족의 품만큼 넉넉한 곳은 없습니다. 잠깐 소풍 나왔다 생각하시고 이제 집으로 들어가시는 것이 어떨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연이 있는지는 말씀하지 않았지만 단순히 사업 실패라면 가족도 기다리지 않겠습니까? 오늘 연명치료 거부 의향서를 제출하고 오시니 마음이 허전하다고 하셨지요? 삶은 낯선 여인숙에서 하루 같다고 하지 않습니까? 삶의 마지막을 생각하면 쓸쓸하고 허전하고 공허뿐인데 온갖 사연이 많은 분은 더욱 그리하실 것입니다.

이제 시간이 길지 않습니다. 가족들 가슴에도 멍이 시퍼렇게 들었을 것인데 그 위에 또 못 하나 더 박자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동안 가족이 잘못한 여러 일에 대해서도 면죄부 드려야지요. 지금까지 실패하지 않고 성공했다면 가족들도 함께 수혜를 입었겠지요? 실패했으니 그것 또한 가족과 함께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가족도 모르지 않습니다. 외로운 섬처럼 혼자 떠다니지 마시고 내 가족이 있는 고향으로 가시면 어떨까요? 깊이 생각해 주시고 내내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유가형(시인·대구생명의전화 지도상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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