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슨 철모 (45)-밤낚시
녹슨 철모 (45)-밤낚시
  • 시니어每日
  • 승인 2020.02.03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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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주는 마침내 응달촌을 떠나게 되었다. 며칠 전부터 이삿짐을 꾸려 두라는 태원의 당부 말을 듣고 별 쌀 것도 없는 살림살이지만 준비해두고 있었다. 어느 날 낮에 급하게 위생병들이 구급차를 몰고 집에 와서는 이삿짐을 실었다. 드디어 병주가 그토록 가고 싶어 하던 군인아파트로 가는 것이다.

방은 두 칸으로 작은 집이었지만 둘이 살기엔 넉넉하였고 게다가 목욕탕과 부엌이 따로 있으니 천당처럼 느껴졌다. 아파트 이사 후 매일 7, 8명의 손님이 왔다. 이들은 전부 소위였는데 학군단(R.O.T.C) 출신 장교들이라 했다. 태원은 이들과 평소부터 부대에서 자주 어울려 온 눈치였다. 이 소위들은 옆 동의 독신 장교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는데 한 방에 두 사람씩 산다고 했다. 어떨 때는 군복 차림일 때도 있었다. 병주가 그들의 어깨에 있는 부대표시가 다들 달라 까닭을 물어보니 이들은 군단과 관계있는 부대에서 파견 나온 연락 장교들이라고 했다. 즉 서로 다른 부대라는 이야기다. 이들은 대학은 달라도 같은 해에 학교를 졸업하고 함께 훈련을 받은 동기라 서로 친했다.

외롭고 쓸쓸하던 태원네 집은 군인아파트로 이사를 오면서부터 주말을 제외한 매일 이들의 아지트가 되어 최소한 밤 12시까지는 웃고 떠드는 소리로 요란했다. 병주의 얼굴에서 검은 그림자도 약간 가신 듯했다. 그녀 특유의 밝은 웃음소리가 들리는 날도 있었다. 가끔 넉살 좋은 장교들은 형수님, 형수님 하며 반찬거리를 들고 오기도 해 자주 그들과 저녁도 먹게 되었다. 태원도 전방을 떠나와 잊을 수 없는 위생병들과 이름 모를 수많은 대대 보병들 그리고 유유히 흐르던 임진강이 생각나 군단에서 늘 느끼던 외롭고 불안하고 우울하던 그의 병적인 감정들이 약간씩 달라짐을 느꼈다.

 

태원이 우리 병원에는 자주 오는 눈치였지만 나에게는 들르지 않았다. 무척 바쁜가 보다 생각했지만 간호과장 이야기를 들으니 좀 해석이 달랐다.

“정신과장님, 군단 의무실장님은 결혼했습니까?"

어느 날 간호과장이 나에게 질문을 하였다.

"예, 그 사람은 결혼했어요. 그건 왜 물으세요? 누구 중매 서줄 사람 있어요?"

내가 대수롭지 않은 듯 물었다.

“혹시 응급실 유 소위 기억하세요.”

그건 왜 묻는 걸까?

“유 소위가 어리게 보여도 결혼한 사람이에요.”  

‘그래서요?’ 하는 눈으로 내가 그녀를 쳐다보자 당부하듯 말했다.

“뭐 심각한 거는 없으니까 그 정도로만 알아두세요.”

그녀는 이 말을 던지고 별일 아닌 듯한 표정을 지으며 제 갈 길을 갔다. 어느 날 모처럼 태원이 내 방에 들렀다.

"야, 너 정말 오랜만이다. 많이 바빠?"

내가 인사말을 던지며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너 혹시 응급실 유 소위와 사귀는 거야?"

나의 물음에 태원의 얼굴이 갑자기 붉어졌다.

"에이, 형도 그게 무슨 말이오? 사실 제가 유 소위를 좋아하긴 해요. 하지만 그 사람도 결혼한 사람인데요. 제가 유부녀와 뭘 어떻게 하겠어요?"

그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대답하였다.

"내가 듣기엔 그 친구 남편은 육사 나와 지금 G.P에서 근무한다고 하던데...... 하여간 나쁜 소문 안 나게 조심해.”

나도 내막을 모르면서 막연히 한마디를 던졌다. 그날은 그런 말을 하다 분위기가 어색해져 그냥 그렇게 헤어지고 말았다.

태원은 병원을 떠나 부대로 돌아오면서 기분이 몹시 상했다. 남의 사생활에 왜 그렇게들 관심이 많은지 화가 났다. 또 내가 무얼 어쨌기에 이런 소리들이 들린단 말인가? 하지만 냉정히 생각하면 그것은 태원의 생각일 뿐이지 다른 사람들은 그런 경우에 마땅히 비난을 하게 되어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 태원 자신도 병주에게 죄책감을 갖고 있는 것을 보면 스스로도 그의 행동이 썩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아니, 자신도 지금까지 잘 알고 있으면서도 짐짓 모른 체하고 있었을 뿐인지도 몰랐다. 이참에 아예 유 소위를 만나지 않는 것도 잠깐 생각해 보았지만 너무 끔찍해서 즉시 마음을 고쳐먹었다.

군단 생활은 군대의 큰 틀은 벗어나지 않지만 같은 보병부대이면서도 말단 보병부대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처음에 태원은 이곳이 무슨 군대란 말인가, 모순과 혼탁의 현실이 일반 사회와 무엇이 다른가 하는 분노와 배신감에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이러다가 또다시 대학 시절의 자신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현실에 적응되기도 하였지만 그동안 자신의 좁은 눈으로 보고 판단한 탓에 사물을 잘못 평가하기도 한다는 모순을 발견하였다.

 

군단장에게 주사 놓으러 가면 어떤 때는 안에서 손님이 미처 나오지를 않아 기다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참모들끼리 하는 이야기를 듣고 그가 매우 분노한 일이 몇 가지 있었다.

"어이, 작전참모 그 밤낚시 계획은 잘 돌아가는 거야?"

인사참모가 물었다.

"아니, 열심히는 하는데 통 낚이는 게 없어.”

즉시 대답이 툭 떨어졌다. 이 무슨 개수작들이란 말인가? 남들은 전방에서 공사하랴 간첩 잡으랴 죽을 고생을 하는데, 이 작자들은 물고기 잡을 궁리를 하고 앉았다니 말이다. 어떤 날은 이런 소리도 들렸다.

 "그래 그 골프장은 어땠어?"

한 참모가 묻자,

"아주 좋던데 잘 해놨더라고, 잔디도 좋고, 시설도 거의 완벽한 편이야.”

딴 참모가 대답했다.

정말 정신 나간 놈들이다. 대낮에 민간 골프장에 육군 대령들이 출입한다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이렇게 군의관이 듣고 있는데도 버젓이 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니 뻔뻔스럽기 짝이 없는 놈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일개 육군 대위가 어떻게 감히 대령들에게 따지고 덤벼들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태원 성격에 이런 것들을 보고 그냥 참고 지낼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태원은 어느 날 군단장 부관에게 넌지시 물어봤다.

"김 소령님, 군단장님이 낚시를 좋아하세요?"

“거 무슨 소리요. 안 그래도 바쁜 분이 낚시할 시간이 어디 있다고?"

"그럼 골프 치실 시간도 없겠네요."

“오브 코스”

“그런데 참모님들은 낚시나 골프를 칠 시간이 있나요?"

"아니, 왜 그래 실장, 군단장님보다 그분들이 더 바쁘게 돌아가는데 무슨 그런 시간이 난단 말이오?"

부관이 오히려 되물었다. 이 부대 정말 야단났다. 대낮에 골프장 갔다는 이야기를 두 귀로 똑똑히 들었는데 이렇게 지휘부에서 모르고 있다니. 자체 감찰부도 있고 파견 나온 중앙정보부, 보안대 요원도 많이 있으면서 이들 장교의 동태는 전혀 파악도 못하고 있단 말이 아닌가? 정말 한심한 군대가 아닐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원은 노골적으로 물었다.

"며칠 전에 작전참모님은 밤낚시 계획하시고, 감찰 참모님은 골프장에 가셨다고 하던데요?"

태원은 따지듯이 물었다.

“에이, 군의관 당신 뭘 몰라서 그러는군. 이건 비밀사항인데...... 북괴 놈들이 땅굴 판 이야기는 당신도 알잖아? 신문에도 났으니까. 그리고 우리 '승공관‘에 그놈들에게서 수거한 장비가 전시되어 있잖소. 놈들이 그 구멍을 하나만 판 게 아닐 거라고 우리는 판단하고 있거든. 그래서 매일 병력을 동원해서 우리 섹터에 추가 땅굴을 발견하기 위해 수색작업을 하고 있어요.”

어렴풋이 태원은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땅굴 수색작업은 중대 사항이 되어 매일 군단장님께 보고를 올리고 있는 거요. 그 작전명이 바로 ’밤낚시 계획‘ 인 거야."

"그럼 골프장도 그런 식의.......”

“슈어. 그것은 작전명이 아니고 실제로 참모들이 서울 주변 민간 골프장에 나가요. 북괴들이 현재 전면전을 할 의사가 없고 게릴라들을 활용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거든. 우린 놈들이 해안 침투나 철책선 침투도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어, 그러나 앞으로 놈들은 글라이더로 침투할 계획도 갖고 있는 것 같단 말이야. '보리수' 말씀으로는 그런 경우에 놈들이 착륙할 수 있는 곳은 바로 골프장이라는 거야. 그래서 골프장에는 그런 경우에 대비해 신속한 신고 요령, 경고신호 발사, 병력 동원 시 배치 지점 등을 다 준비해둔 거야. 그곳을 일주일에 한 번씩 참모들이 번갈아 점검하러 가는 거야.”

비서실장은 미국에서 보병학교를 나온 사람이라 그런지 신사적이었다. 전략전투에선 영점인 태원에게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해주었다. 만약 군사기밀 운운하고 이런 사실을 숨겼다면 태원에게는 영영 오해만 남을 뻔한 사건들이었다.

"실장이 군대를 너무 모르는군. 하긴 당신도 사회에선 똑똑했겠지. 사회와 비교하면 여기 사람들이 무식하고 단순하게만 보일 수도 있어. 하지만 당신이 봐서 알겠지만 군인들 집에 가구가 없잖아? 늘 이사를 다녀야 하고 또 돈도 넉넉지 않으니 가구를 들여놓을 수도 없잖아. 그리고 아이들 학교 때문에 생이별을 하고 살지. 난 그렇게 생각해요. 이런 삶이 또한 애국이요, 군 엘리트의 갈 길이라고. 당신네들처럼 사회의 엘리트와 같은 상한에서 비교할 수 없다는 이야기야.”

태원은 잘 알아들었다는 표시로 화제를 바꾸었다.

“제가 사회 엘리트와 군대 엘리트가 다르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저는 단순하게 학문이나 지식만 갖고 군인들을 비교했던 것 같아요. 저는 군에서는 거의 문맹자나 마찬가지라는 느낌이 드는군요. 말씀 나온 김에 한 가지 더 묻겠습니다. '장님'이라는 말과 '보리수' '부 보리수'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이 질문을 아까 자신이 한 말에 적극적으로 동의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인 비서실장은 매우 기쁜 얼굴이 되어 대답을 했다.

"그러게 내 뭐랬소? 그런 용어도 모르면서 군단에서 장교 노릇을 하다니, 우리가 당신의 분야에 대해 모르면 무식하다고 하겠지? 그러니까 남 말을 함부로 해선 안 되는 거요. 우리 부대에 세 분의 장군이 계시잖아요. 군단장, 부군단장, 참모장, 그리고 예하 부대에 공병여단장, 포 사령관 이렇게 두 분의 장군이 계시잖아요. 이분들은 다 ’장‘들이니까 이분들을 부를 때 ‘장님’이라고 부르는 거야.”

그는 약간 으스대는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우리가 매주 수요일은 음어로만 통화를 하잖아? 그때 우리가 몇 가지 용어는 음어 조립을 하면서도 또 암호를 써요. 우리 군단장님은 그때 '보리수' 라고 부르는 거요.”

  "그럼 부 보리수는 부 군장님?"

태원이 맞장구치자 실장은 고개를 크게 끄덕거려 주었다.

"그렇지. 이제야 좀 알아듣는군. 어때? 군대가 무식하게 보여도 나름대로 질서와 철학이 있는 거요. 하지만 군에 가보지도 않은 사람들, 정치가, 학생들은 제멋대로 우리를 깔보고 또 일부 정치군인들을 보고 마치 우리 전부를 본 양 도매금으로 ‘군사파쇼의 주구’라고 욕을 하는 거지, 의무실장 당신도 학교 다닐 때 반체제 활동하며 우리 욕 많이 하고 다녔다던데?"

비서실장이 웃으며 태원을 쳐다봤다. 태원은 저 사람이 뭘 알고 저러는가, 아니면 그냥 해보는 소린가 속으로 어림해보며 대답을 만들 궁리를 했다. 부군단장이 태원을 만날 때마다 데모하는 학생들을 욕하는 것을 보면 이 사람들은 이미 나의 과거를 다 알고 있다는 의심도 들고 또 그냥 하는 소리인 것도 같아 한참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군단은 상급에 있지만 같은 부대인데도 전방부대와는 전혀 다르군요.”

“예를 들면?”

그가 말을 이으려고 했다.

"전방에서는 사병들이 장교들에 대한 복종심이 대단한데 여기서는 경례조차 잘 하지 않더군요. 저는 인사를 안 하는 것이 못마땅한 것이 아니라 전방의 병들은 국졸, 중졸이 대부분이며 가끔은 무학자도 있어요. 여기는 최소한 고졸이며 대개가 대학 재학 중의 학력이더라고요. 그런데 더 배운 사람들이 편하게 사는 것도 보기에 좋지 않고, 또 그러면서도 하는 행동은 못 배운 병들보다 못한 걸 보면 짜증이 나지요. 이런 말씀을 드려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사실 전방에 근무하는 병들은 자신들의 사회 경제적 이념으로 보면 북괴 애들이 쳐들어오더라도 목숨 걸고 싸워야 할 이유가 별로 없는 계층이지 않습니까?"

이 말을 하면서는 아무리 이해심이 넓은 비서실장이라도 눈치가 보였다. 그러나 비서실장은 일부러 그러는지 굳이 말을 중단시킬 의사는 없어 보였다.

“제가 전방에서 근무할 때 미군들을 보면서 느낀 건데요. 그쪽 사병들은 저를 만나면 반드시 경례를 하더군요. 어떨 때는 사복을 하고 다녀도 인사를 하고요. 심지어는 양손에 짐을 들고 사복을 한 미군 사병이 저를 보고는 거수 경례를 못하니까 고개를 꾸벅하며 인사를 하더라고요. 저는 전방 근무 전에는 미군이란 군기가 완전히 빠진 약한 군대라고 생각했지요. 영화에 보면 대포를 쏘다가도 커피를 마시고 하모니카도 불고 하길래 ‘저게 무슨 군인인가?’도 생각했습니다. 독일군들의 질서정연하고 용감한 모습이 정말 군인의 표상처럼 생각되었지요. 하지만 미군은 월남전 말고는 져 본 적이 없는 군대가 아닙니까? 제가 전방에서 그 이유를 나름대로 알게 되었지요. 미군은 전쟁을 여유 있게 즐기며 하더라고요."

비서실장은 ‘육군사관학교를 나온 엘리트 군인’인 자기에게 감히 군의관이...라고 생각을 하는 눈치였다가 이제는 흥미가 생겼는지 태원이 잠깐 멈춘 사이에 계속하라는 추임새를 넣어주었다.

"고온, 계속하시오.”

“짧은 전투는 정신력과 군기로서 승리할 수 있지만 세계대전처럼 긴 전쟁은 결국 싸움을 즐기며 하는 쪽에서 반드시 승리한다는 겁니다. 제가 임진강 공사장에서나 비상이 걸려 대간첩작전에 따라 가보았더니 우리는 나중에 결국 부대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당장은 자리를 대충 치우고 숙영 생활을 하더라고요. 하지만 미군은 단 며칠을 있더라도 마치 영원히 주둔할 것처럼 주변 정리를 하고 또 칠하고 예쁘게 꾸미더군요. 이런 걸 보고 저는 저들이 전쟁을 즐기며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래, 그건 당신 말도 일리가 있어. 나도 미국에서 보병학교를 다녔는데 걔네는 그렇더군. 공과 사가 엄격해, 장교와 사병의 구별이 엄격하고 모든 게 원칙적으로 움직이더군, 군대라는 사회는 일반 사회의 수준과 나란히 가는 거야. 우리 사회의 질이 높아질 때 군대의 질도 높아질 거야. 밖에서 힘 있고 가진 것이 많은 정치인, 경제인은 저희끼리 유착되어 다 해 먹고 힘없는 놈들 등을 치고 있지. 또 돈 없는 놈들은 가난이 무슨 명예라도 되는 듯 악을 쓰고 다니니 다수의 선량한 국민만 양쪽에 끼어 죽을 고생을 하고 있지 않나 말이야.”

그는 항상 온화한 사람이었는데 이날은 평소와 달리 흥분도 하고 말이 많아졌다.

“우리 사회가 미개국인데 우리 군인이 이 정도만이라도 되어 있는 게 오히려 기적이야. 지금 민주투사라고 학생들을 선동하고 있는 김대중과 김영삼이 군대에 갔다 왔어? 6·25 때 참전하여 전사한 고관대작의 아들이 있냐 말이야. 미국은 주한 미군사령관인 벤 프리트 장군의 아들이 우리나라에서 전사했잖아? 중공도 마찬가지로 모택동의 아들이 한국전에서 전사했잖아. 우리는 돈 없고 빽 없는 놈들만 전장에 와서 죽는 거야. 가진 자가 앞장서는 세상이 정상적이며 수준 높은 나라인 거야. 저희는 군대에 오지도 않으면서 일부 정치군인을 전체 군인들인 양 일반화하여 우리 군을 모독하고 있으니 정말 나쁜 놈들이야. 지금 민주를 외치는 정치인과 학생들 중에 군대 갔다 온 놈이 몇이나 되는지 조사해봐. 다 병역 기피자들이야. 와보지도 않고 욕하는 거지.”

태원은 자신에게 들으라고 하는 소린지, 아니면 가난한 시골 농촌에서 돈이 없어 육사를 간 자신의 울분을 말하는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지만 그의 말 중 일부는 태원도 공감이 가는 말들이었다. 군단 C.P를 나와 의무실로 오면서 태원은 사람이란 그가 어디에 서 있느냐 어디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이렇게 정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리 조국 근대화를 위한 경제개발이라지만 인간을 때리고 죽이고 무섭게 하고 윽박질러가며 자신의 철학을 강요하는 군부독재는 악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