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
추억의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
  • 김병두 기자
  • 승인 2020.01.31 07:26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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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유부남과 처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그린 영화

1968년 7월 이성재 각본 정소영 감독 신영균 문희 주연의 “미워도 다시 한번”이 국도극장에서 개봉되었다. 당시 유부남과 처녀의 사랑을 그린 영화로 고무신 관객인 주부들의 큰 인기를 얻어 흥행에 성공하였으며 신파 멜로영화의 전형이 되었다.

"미워도 다시 한번" 영화 포스터  "영화 포스터로 보는 한국영화 100년" 전시회에서 김병두 기자
"미워도 다시 한번" 영화 포스터 "영화 포스터로 보는 한국영화 100년" 전시회에서. 김병두 기자

영화의 줄거리는 유치원 교사인 혜영은 유부남인줄 모르고 옆집 하숙생인 사업가 신호를 사랑한다. 하지만 시골에서 신호의 부인이 아이들을 데리고 상경하면서 혜영은 신호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혜영은 심한 배신감을 느끼고 임신한 몸으로 사라진다.

8년의 세월이 흐른 후 사업가로 성공하여 행복한 가정생활 하는 신호 앞에 혜영이 아들 영신을 데리고 나타난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아들의 장래를 위해 아버지에게 데려다 주려고 온 것이다. 영신은 아버지 집에서 생활을 시작하지만 이복 형제들과의 갈등으로 적응하지 못하고 엄마를 그리워하면서 지낸다. 어느 비오는 날 엄마를 찾아 집을 나간 영신은 화가 난 아버지에게 매를 맞는다. 멀리서 이 광경을 바라보던 혜영은 자기가 낳은 자식은 자기가 키워야 한다고 영신을 데리고 떠나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이 영화는 연약한 여성이지만 강인한 혜영의 모성애가 당시 주부들의 눈물샘을 자극하여 국도 극장에서 37만명의 관객을 동원하여 그해 최고의 흥행 영화가 되었다. 또한 일본과 대만으로 수출되어 큰 인기를 얻었다.

이 영화의 성공으로 여주인공을 맡은 문희는 당대 최고의 여배우가 되었다. 문희는 본명이 이순임으로 1965년 이만희 감독의 ‘흑맥’으로 데뷔하여 초우, 원점에 출연하고 “미워도 다시 한번"으로 비련의 여주인공역 단골이 되었으며 윤정희, 남정임과 트로이카 여배우로 활동하였다. 대종상 신인상과 여우주연상, 백상예술대상 신인상과 최우수 연기상 등 많은 영화제에서 수상하였다. 그 후 1971년 한국일보 장강재 사장과 결혼하여 1남 1녀를 낳고 살다가 1993년 장강재 사장이 간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현재 백상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아들 역의 김정훈은 이 영화로 최고의 인기를 얻고 “꼬마신랑"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 등 많은 영화에서 최고의 인기 아역 스타가 되었으며, 1970년대 중반 하이틴 영화의 주연으로 활동하였다.

남진이 부른 주제곡 “미워도 다시 한번"도 슬픈 가사와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크게 히트하였다.

오늘날 유부남과의 불륜을 다룬 이런 신파 영화는 관객들에게 비난을 받겠지만 당시에는 가부장적인 시대 환경에 처한 여성들의 아픔을 그려 여성들의 공감을 얻었다.

“미워도 다시 한번"이 큰 성공을 거두자 시나리오 작가 이성재와 정소영 감독이 속편 제작 권리를 두고 서로 다툼이 있었으나 속편 권리는 정소영 감독에게 돌아갔다. 이성재는 비슷한 내용으로 1969년 안현철 감독과 손잡고 김진규, 문희, 김정훈 주연의 “떠나도 마음만은"을 만들고 주제곡은 이미자가 불렀다.

정소영 감독은 1967년 “내 몫까지 살아줘”로 데뷔하여 “미워도 다시 한번"으로 최고의 인기 영화감독이 되었다. 그후 1969년 “미워도 다시 한번 속편", 1970년 “미워도 다시 한번 3편”, 1971년 “미워도 다시 한번 대완결편” 모두 흥행에 성공하였다. 30년 세월이 흘러 정소영 감독은 2002년 이승연, 이경영 주연의 “미워도 다시한번 2002"를 감독하였으나 흥행에는 실패하였다. 1980년 정소영 감독이 제작하고 변장호 감독 윤일봉, 김영란 주연의 “미워도 다시 한번 80”은 명보극장에서 관객 36만명을 동원 흥행에 성공하여 그해 한국영화 흥행순위 1위를 차지하고, 1981년 윤일봉, 김영애 주연의 “미워도 다시 한번 80 제2부"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