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立春) 풍속
입춘(立春) 풍속
  • 장명희 기자
  • 승인 2020.01.3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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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만물이 제자리를 지킬 때
인류는 편안한 삶을 누릴 것이다.

올해는 유난히 겨울이 따뜻하여 봄인가 싶기도 하다. 털옷 장사가 옷이 팔리지 않는다고 울상을 짓는 걸 보면서, 역시 겨울은 겨울다워야 겨울 장사가 먹고살기에는 좋은 것 같다. 제철에는 그 계절에 맞게끔 계절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 경제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차츰 사라져가는 사계절을 보면서 환경오염에 대한 경각심을 우리 인류에게 제시해 주는 것 같다. 역시 그래도 계절상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공원에 잿빛으로 봉우리를 맺은 목련을 보면서 봄을 기다려 보기도 한다.

설날과 입춘이 들어있는 1월말과 2월초는 한창 추울 때다. 겨울 중에서도 한겨울이다. “입춘 추위에 김칫독 얼어터진다”는 옛 속담이 있고 반드시 한 번은 춥기 때문에 “입춘 추위는 꾸어서라도 한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입춘 무렵이면 추워 죽을 지경인데 뜬금없이 왜 봄이 시작된다고 한 것일까? 입춘은 음력 24절기 중에서 첫 절기이고, 새해가 시작되면서 처음으로 들어서는 절기다. 입(立)이라는 한자에는 ‘세우다’라는 뜻과 함께 ‘시작하다’라는 뜻이 있으니 입춘은 문자 그대로 봄이 시작되는 날이다.

보통의 경우 설날인 음력 정월 초하루 직후가 되니까 대개는 양력 2월 4일 무렵이다. 입춘 무렵이 되면 산속에는 눈이 남아 있지만, 들판의 풍경은 변화가 시작해 날씨도 따뜻해져 입춘이 봄의 시작이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다. 겨울이 지나고 새봄이 오면 신선한 채소가 입맛을 유혹한다. 입춘에는 전통적으로 새로 싹이 난 봄채소를 먹으며 봄이 온 것을 축하했다.

다섯 가지 매운 맛이 나는 채소를 오신채(五辛菜)라고 했고, 상큼한 채소를 쟁반에 담아 내와서 오신반(五辛盤)이라고도 했다. 입춘에 먹는 채소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파, 마늘, 달래, 부추, 미나리를 먹는다. 이들 채소가 보통 식물이 아니라 불경에서 수행자들은 먹지 말라고 하는 채소다. 『능엄경』에서는 오신채를 날로 먹으면 분노하기 쉽고, 익혀 먹으면 욕망이 일어나니 수행하는 불자는 피해야 할 음식이라고 했다. 거꾸로 말하면 일반인들이 먹으면 힘을 솟구치게 만드는 정력의 채소라는 뜻이다.

입춘에 매운 맛이 나는 다섯 가지 채소를 먹는 이유는 다양하다. 겨울에 부족한 신선한 채소를 먹는다는 의미도 있고, 새싹이 돋아난 채소를 먹으면 겨울을 무사히 보내고 봄이 온 것을 환영한다는 의미도 있다. 사실 오신채에는 의학적, 상징적, 종교적 의미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겨울 내내 움츠린 우리 몸과 마음을 오신채를 먹음으로써, 건강한 몸으로 새롭게 출발하는 것으로 여름의 무더위를 준비하기도 한다.

벌써 봄이 들어선다는 입춘을 맞이한다. 들판에는 파릇한 풀잎이 돋아나고 개울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신비로운 우주의 자연을 맞이한다. 우리 모두가 보호하고 보존해야 할 책임이 있다. 자연은 내 것이 아니다. 후세들에게 물려줘야 할 소중한 유산이기에 우리 모두가 가꾸고 함께 지켜나가야 할 의무가 있다. 겨울은 겨울답게 춥고 계절의 맞게 옷을 갈아입을 때 자연의 혜택을 인류가 누릴 것이다. 자연스럽게 만물의 이치가 제자리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스스로 아름다운 자연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할 때 심신은 저절로 건강한 삶을 누리는 자연인이 된다. 또한 입춘을 맞이하면서 계절의 변화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