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의 '축복'
도종환의 '축복'
  • 김채영 기자
  • 승인 2019.03.05 14:08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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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1일 팔공산 가산산성 부근에서 찍은 복수초
2019년 3월 1일 팔공산 가산산성 부근에서 찍은 복수초

 

도종환의 '축복'

 

이른 봄에 내 곁에 와 피는

봄꽃만 축복이 아니다.

내게 오는 건 다 축복이었다.

고통도 아픔도 축복이었다.

뼈저리게 외롭고 가난하던 어린날도

내 발을 붙들고 떨어지지 않던

스무 살 무렵의 진흙덩이 같던 절망도

생각해보니 축복이었다.

그 절망 아니었으면

내 뼈가 튼튼하지 않았으리라.

세상이 내 멱살을 잡고 다리를 걸어

길바닥에 팽개치고 어둔 굴속에 가둔 것도

생각해보니 영혼의 담금질이었다.

한 시대가 다 참혹하였거늘

거인 같은, 바위 같은

편견과 어리석음과 탐욕의 방파제에 맞서다

목숨을 잃은 이가 헤아릴 수 없거늘.

이렇게 작게라도 물결치며 살아 있는 게

복 아니고 무엇이랴.

육신에 병이 조금 들었다고

어이 불행이라 말하랴.

내게 오는 건 통증조차도 축복이다.

죽음도 통곡도 축복으로 바꾸며

오지 않았는가.

이 봄 어이 매화꽃만 축복이랴.

내게 오는 건

시련도 비명도 다 축복이다.

 

'해인으로 가는 길'  문학동네 2014.6.23.

 

사람이 사람에게 스미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게다. 시는 그 중의 한 통로가 아닌가 싶다. 시인과 독자의 시선이 완벽하게 일치할 수는 없다. 하지만 비슷한 호흡으로 공감대를 형성하며 서로 따뜻이 보듬는 것이 문학적 효용인 카타르시스라 생각한다. 가난, 절망, 탐욕, 아픔, 통곡, 죽음 등의 키워드들은 모두 가슴을 짓눌리는 무거운 낱말이다. 하지만 이른 봄에 피는 꽃이 눈보라를 잘 견뎌낸 성취이기에 축복이 아닐 수 없듯이 인간사도 마찬가지다. 문학 작품을 읽노라면 인생에 슬픔만한 거름이 없음을 깨닫곤 한다. 살면서 겪는 고통마저도 영혼의 담금질로 빚어서 상처를 승화시켜놓기 때문이다.

도종환 시인은 현재 정치인으로 활동 중이다. 하지만 내겐 1980년대, 큰 반향을 일으킨「접시꽃 당신」이 더 깊이 각인되어있다. 젊은 나이에 상처한 남편이 죽은 아내를 그리는 내용으로 시적 화자가 곧 본인이다. 한 사나이의 절절한 목소리가 詩라는 장치를 통하여 세상에 나왔을 때 독자들의 관심과 사랑이란 가히 폭발적이었다. 감수성 풍부한 이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기 충분하였다. 영화로 상영되면서 재조명되고 더 널리 알려졌다. 인간의 삶과 죽음, 아픔과 고통 같은 보편적인 문제를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드러내는 작법作法은 그의 미덕으로 볼 수 있다.

위에 소개한 시도 함축된 이미지 속에서 인지상정의 정서를 건드린다. 난해한 은유 없이 읽히는 서정적 시어들에 진솔한 삶을 담았다. 흔히들 지나간 일은 모두 아름다웠다고 미화하는 경향이 있듯이 독자로 하여금 공감을 유발시킨다. 뼈저리게 외롭고 가난하던 어린 날도, 스무 살 무렵의 진흙덩이 같던 절망도 생각해보니 축복이었노라 담담히 고백한다. 회고 형식을 취한 결과론적 관점의 진술들이다. 시련과 비명도 축복이라며 모순어법으로 끝맺는다. 예전에 없던 용기와 배짱, 여유가 생긴 것일 테다. 그것은 아마 시간이 선물한 것이겠다. 이런 각도에서 바라보면 내가 만드는 나이테도 맥을 같이하지 않을까 싶어 위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