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두 번은 없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두 번은 없다'
  • 김채영 기자
  • 승인 2020.03.04 09:17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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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두 번은 없다'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실습 없이 죽는다.
 
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
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낙제란 없는 법.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
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어제, 누군가 내 곁에서
네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을 때,
내겐 마치 열린 창문으로
한 송이 장미꽃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함께 있을 때,
난 벽을 향해 얼굴을 돌려버렸다.
장미? 장미가 어떤 모양이었지?
꽃이었던가, 돌이었던가?
 
힘겨운 나날들, 무엇 때문에 너는
쓸데없는 불안으로 두려워하는가.
너는 존재한다 - 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너는 사라진다 - 그러므로 아름답다
 
미소 짓고, 어깨동무하며
우리 함께 일치점을 찾아보자.
비록 우리가 두 개의 투명한 물방울처럼
서로 다를지라도….
 
 
시집 『끝과 시작』 문학과지성사. 2007. 07. 02.
 
 
설렘 안고 새 달력을 건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3월이다. 한 해의 첫머리에서 먹었던 다짐이 슬며시 지워지고 있다. 남들은 느슨해진 마음을 다잡고 싶을 때 어떻게 할까. 특별히 취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나는 간택을 기다리는 규수처럼 다소곳이 꽂혀있는 책들 가운데서 지문이 낭자한 시집을 꺼낸다. 이유는 작고 얇아서 부담이 없다는 거다. 아무 페이지나 펼쳐들고 짧은 행간에 걸터앉아 길게 생각하는 것도 좋다. 그런데 ‘끝과 시작’은 무려 500페이지가 넘는다. 시집치고는 상당히 두껍고 묵직하다. 손아귀에 포옥 안기는 맛이 없다. 그렇다고 지레 겁먹을 일도 아니다. 지혜로운 서양 할머니가 넌지시 들려주는 인생철학서라 생각하면 보약처럼 귀하게 다가온다.
 

쉼보르스카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폴란드 시인이다. ‘끝과 시작’ 마치 시창작 지침서로 느껴진다. 공교롭게도 나는 두 번을 추천받았다. 물론 추천자가 다르고 시공간의 차이가 크지만 같은 책을 두 번씩 소개받은 것은 시가 있어야할 자리와 가야할 방향을 올바로 제시하기 때문이리라. 막막한 시인 지망생 곁에서 반려가 되고 등불이 된다는 의미겠다. ‘똑같은 밤도 없고,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 동일한 눈빛도 없다’ 순간의 소중함을 깨우쳐준다.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실습 없이 죽는다.’ 익히 아는 사실임에도 숙연해진다. 후회 없게 살아야한다는 교훈을 필설하지 않으면서 각인시키는 힘이 있다. 사람의 마음을 보듬고 위로하는 것이 시가 맡은 역할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