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명품 빈티지를 좋아한다
나는 명품 빈티지를 좋아한다
  • 배소일 기자
  • 승인 2019.03.04 1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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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시장에는 까만 비닐봉투 뿐이더라

우울하거나 잡연하면 재래식 시장으로 간다. 오늘은 관문시장.

지하철역 계단 올라서니 시끌벅적 좌판 행상이 즐비하다.

깐마늘 더덕 깻잎 시금치하며 꼬막 꽁치 칼치 고등어가 비릿하다.

가물치 붕어가 뛰고, 미꾸라지는 미끌거리고 다슬기는 젤 조용하다.

성서공단 쪽이라 오가는 행인 절반은 동남아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이들이 오뎅 떡볶기 리어카로 모였다. 나도 모여 세 개나 꿀꺽했다.

시장은 남향 언덕으로 오른다. 중턱부터는 빈티지 구제품 패션가다.

말이 좋아 ‘빈티지’지 한마디로 죽은 사람 산 사람이 입던 헌 옷가게.

주 고객은 외국인 노동자지만 나도 그들과 일원이 된 이유는 분명 있다.

잘만 고르면 보석 같은 명품 빈티지를 탕수육도 아닌 짬뽕 값에 충분하다.

시중 10만원대 ‘콜럼비아’티셔츠를 5천원, ‘빈폴’바지도 1만원에 건졌다.

까만 비닐봉투 하나에 담았다. 끝장에는 마수걸이도 못했다는 할머니의

깻잎 세 단을 까만 비닐봉투 둘에 담았다.

역시 재래시장에는 골치 아픈 정치도, 악다구니 사회도 없었고 착하고

바지런하게 힘차게 살아가는 삶의 현장뿐이다. 나는 또 명품 대박치고

용기도 얻었다.

그러나 귀가가 걱정이다. 마누라는 까만 비닐봉투를 유난히 싫어한다.

까만 봉투 들고 다니는 노인을 보면 ‘궁상스러워 측은하고 칙칙해서 추해

보인다‘고. 특히 헌 옷가지를 보는 순간 ‘귀신 데리고 왔다’면서 교양머리

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살쾡이 소리가 분명하다. 마침 외출한 모양이다.

얼른 골방으로 숨겼다. “휴~ 내일, 몰래 세탁소 맡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