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속의 한국인 '의인' 도쿄 신오쿠보 역 故 이수현을 찾다
일본 속의 한국인 '의인' 도쿄 신오쿠보 역 故 이수현을 찾다
  • 정신교 기자
  • 승인 2019.03.05 14:0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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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취객 구하고 대신 목숨 잃은 한국인 청년
역 입구 통로에 추모 현판 새겨 고귀한 희생 기려
이수현 의인을 기리는 동판
이수현 의인을 기리는 동판

 

신주쿠는 거대한 야시장이었다. 여러 나라에서 온 관광객과 여행자들이 쉴 새 없이 오가고 어우러졌다. 가부키죠의 한구석에 있는 예약 숙소를 찾느라 여기저기 한동안 헤매었다.

 여행의 마지막 날은 늘 바쁘기 마련이다. 간단하게 된장국을 곁들여 아침 식사를 하고, 신오쿠보역으로 향했다.

가부키죠 뒷길로 나와서 JR 열차 선로를 따라 10 여 분 쯤 걸으니, 바로 신오쿠보역이 나왔다. 작은 역사가 비좁도록 사람들이 들락날락거리고 있었다.

 

신오쿠보역 통로와 추모 현판
신오쿠보역 통로와 추모 현판

 

승강장으로 올라가는 중앙 통로에 작은 동판이 붙어 있었다. 이수현 의사는 2001년(당시 26세) 여기 신오쿠보역 승강장에서 취객을 구하려고 선로에 뛰어들었다가 다른 한 명의 일본인과 함께, 마주 오는 열차에 목숨을 잃었다.

이수현 군의 의로운 행위는 일본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어서 한일 양국의 우호 관계를 새로이 정립하고 한류 문화가 일본 전역에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오쿠보 거리
오쿠보 거리

 

이후에 신오쿠보역을 중심으로 좌우 대로변에 한국 음식점과 상점, 한류백화점, 한국어학원 등이 즐비하게 들어서면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바로 5년 뒤, 신오쿠보 역에서 다시 한국인 신현구씨가 일본 여학생을 구조하는 일이 일어났다. 위급한 순간에 신씨는 이수현 의사를 떠올리고 용기를 내었다고 한다.

 

신오쿠보역 승강장
신오쿠보역 승강장

 

승강장에는 이제 안전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쉴 새 없이 기적을 울리며 열차들이 달리는 선로는 쳐다보기만 해도 겁이 났다.

신오쿠보 역사를 뒤로 하고 지하도를 지나 대로로 향했다. 예상 외로 거리는 한산했으며, 한국어로 된 간판들도 많이 사라졌다.

바로 5년 전, 동경국제식품박람회 출장 와서 방문했을 때는 이른 아침 시간에도 사람들이 북적대고, 줄을 서서 한국 상회와 식당의 개장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호텔로 돌아와서 이수현 의사의 사연과 사진들을 페이스북의 ‘Life in Japan’ 그룹에 올렸다. 신주쿠역에서 ‘나리타 익스프레스’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페이스북에는 벌써 많은 외국인들이 공감을 표시하고, 애도하는 댓글을 달고, 해당 기사를 링크해 놓았다.

탑승권을 받고 출국장을 나오니, 대기실에는 자유 여행을 온 한국의 대학생들과 가족들이 제각기 식사와 쇼핑을 하거나, 대화를 나누며 여행의 마지막을 즐기고 있었다.

이윽고 탑승 시간이 되어서 승무원의 안내를 받아 셔틀 버스에 올라 출입문 맞은 쪽 좌석에 앉았다. 한참 동안 차 안이 왁자지껄하더니 갑자기 자지러지는 아기 울음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렸다.

“여기 앉으세요!” 하고 벌떡 일어서는데, “아, 스미마센!” 하는 소프라노 소리에 찬물을 끼얹은 듯 버스 안이 조용해졌다. 겸연쩍어서 ‘글쎄, 내년이면 경로우대증을 받는데……’ 하고 돌아보니 젊은 부부가 서너 살 된 딸아이를 안고서 목례를 했다. 땅거미가 깔리는 활주로 저 편에서 누군가 빙그레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잠시 눈을 붙인 사이에 비행기는 대한해협을 건너서 대구 공항에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