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슨 철모 (43)
녹슨 철모 (43)
  • 시니어每日
  • 승인 2020.01.20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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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관사'(군단장 관사)로 호출되어 갔다. 새벽에 ‘장님'(군단장 님의 속칭)이 뒷목이 아프다고 해서 부관이 급히 군의관을 부른 것이다. 혹시 혈압이 높아서 그런가 걱정이 되어 급히 불렀다고 했다. 막상 진찰을 해보니 혈압이나 기타 신체적 검사에는 이상이 없었다. 어제 관사에 온 사모님과 한바탕 싸운 모양이었다. 뒤통수 당길 만했다. 부관에게 신경성 같다고 귀엣말 해주고 크게 검사에서 이상이 없다고 하니 군단장은 ‘보병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출근하였다. 역시 장군의 노래는 곡목부터 다르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의무실에는 바쁜 일도 없고 모처럼의 기회여서 태원은 귀대하지 않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관사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다녔다. 작은 방을 들여다보니 사병 하나가 아침을 먹고 있었다. 반찬을 보니 병식이 아니라 일반 가정의 그것들이었다.

"야, 이 병장 넌 왜 그런 특식을 먹는 거냐?"

태원이 묻자 이 녀석은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이구, 실장님 이게 무슨 특식입니까? 방금 군단장님이 아침 드시고 남긴 것을 버리기가 아까워 제가 먹고 있는 거예요. 실장님도 저와 함께 드실래요?"

입 안에 아직도 무엇인가를 우적우적 씹으면서 녀석이 웃으며 말했다.

“넌 무슨 빽이 그리 좋아 이 관사에서 이렇게 놀며 호의호식하냐?"

태원이 다시 물었다.

"호의호식이라고요? 전 이런 생활보다 군인답게 총 메고 철책선에서 근무하는 게 좋아요.”

그 녀석은 엄살 떨듯 대답했다.

“그럼 왜 여기 있는 거냐? 내가 전방 보내줄까?"

태원이 심술을 부리며 물었다. 녀석이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제가 101 보충대 대기 중에 웬 장교가 와서 너희 중에 음식점에서 요리해본 사람 있으면 손 들라고 해서 제가 무심코 손을 들었지요. 손 든 사람은 저 말고도 서너 명이 더 있었어요. 손 든 이등병들은 따로 불러 자세하게 자신들의 경력을 말하라고 했습니다. 그 장교 말이 높은 사람 관사의 취사병을 뽑는다며 고급 요리를 할 수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저는 공부에 취미가 없어 일찍부터 학교를 그만두고 요리학원을 다녔고 음식점 ‘시다바리’ 로 시작해서 입대할 무렵에는 요정에서 요리사 생활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 장교는 우리 전부의 이야기를 다 들은 다음 저를 지명하였지요.”

녀석이 장황하게 자기 이력을 자랑삼아 말하는데 과장은 있어 보여도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그래 와보니 편했어?"

태원이 물었다.

“처음에는 고생을 많이 했어요.”

이건 무슨 소린가? 요정 요리사 출신이라면서 군인 입맛 하나 못 맞추었다는 건가? 태원은 황당하다고 생각했다.

"저는 잘 보이기 위해 여러 가지 고급 반찬을 마련해서 상을 올렸지요. 그런데 그 반찬들이 그냥 나오는 거예요. 부관들도 처음에는 저의 요리 솜씨를 의심하셨죠. 그렇지만 그분들이 맛을 봐도 음식 맛이 그렇지가 않았거든요.”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인마! 안 그래도 너 말하는 것이 처음부터 어쩐지 허풍처럼 느껴지더니만 결국 실력이 들통난 거구먼."

태원이 녀석에게 한 소리를 했다. 그런 소리를 해도 예상 외로 그는 화를 내지 않고 빙글빙글 웃었다.

“부관님들과 저는 한참 고민을 했어요.”

"무슨 반찬을 해 올릴까요 하고 물어보면 되잖아?"

"아이, 실장님두 잘 아시잖아요. 군단장님은 말씀을 잘 않으시잖아요. 또 남이 말을 해도 잘 대꾸도 않고요. 부관님들도 말씀을 못 드리는데 감히 제가 어떻게요?"

그 말엔 태원도 공감했다. 낮은 별들이 벌벌 떠는 카리스마에 감히 일개 사병 주제에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나중에는 화가 나더라고요. 그래서 속으로 생각했지요. 그래 당신의 입이 얼마나 고급인지 몰라도 내 요리가 맛이 없다면 당신은 촌놈에 지나지 않아. 그래 이제 촌놈들이 좋아하는 반찬을 해주지."

기술자들은 그들 나름대로 '곤조'라는 게 있다. 그들이 아무리 계급이 낮고 나이가 어리더라도 그들의 성의와 기술이 무시되는 느낌을 받으면 기술자들은 심술을 부리게 마련이다. 이렇게 취사병은 모진 결심을 하였단다.

“그래서 전 다음부터 반찬을 깻잎무침, 호박잎 삶은 것, 된장찌개, 쑥국, 된장 장떡, 묵무침 등 순전히 시골식 반찬을 올렸지요. 이제 나도 쫓겨나 전방 가서 진짜 군인다운 생활이나 한번 해보자는 배짱으로 말입니다.”

그는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당시의 상황을 연상하니 태원의 입이 말랐다.

"그래서, 그래 어떻게 되었어?"

태원이 급하게 다그쳤다.

“성공했어요. 장님이 무척 잘 잡수시더군요. 그걸 보고 제가 처음에는 속으로 ‘당신도 역시 나와 같은 촌놈에 지나지 않는군’ 하고 코웃음 쳤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별 세 개나 단 분이 아직도 그런 시골 음식을 잊지 않고 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분의 진정한 속마음은 역시 아직도 이토록 소박하고 깨끗하구나 하고 존경심이 들었어요."

그 녀석은 조기 대가리에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살을 빨면서 이야기를 마쳤다.

 

금촌의 ‘강 다방’은 그리 뚜렷한 매력을 갖춘 곳은 아니다. 태원이 유 소위와 이곳에서 자주 만나는 이유는 그 장소가 역전이라 처음에 눈에 쉽게 띄었고 다음 약속 때도 딱히 이름이 떠오르는 다방이 없었기 때문이다.

태원은 습관대로 약속 시간 10분 전에 다방에 도착하였다. 유 소위도 시간을 넘기는 성격은 아니어서 거의 정각에 도착했다.

"잘 지내셨어요?"

인사를 하며 유 소위가 앉았다. 사복 차림이었다. 그녀는 체형이 말라서인지 간호장교 유니폼이 잘 어울렸다. 그런데 아무렇게나 입은 듯한 사복도 잘 맞아 보였다. 태원은 그녀가 잘 지냈냐고 물을 때 항상 느낌이 그저 평범한 인사로만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로 잘 지냈는지 알고 싶어 묻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따라서 잘 지냈는지 못 지냈는지를 건성으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동안 있었던 일을 모두 말했다. 마치 유치원 갔다 온 애들이 엄마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과 흡사했다. 이렇게 말을 하다 보면 어떤 때는 힘들었다고 하소연을 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뭔가 잘했다고 자랑하고 있는 자신을 느꼈다.

태원은 이런 자신의 태도를 스스로 느끼면서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그는 국민학교 다닐 때도 그의 엄마에게 이런 식으로 학교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더구나 그가 살아오면서 힘들었던 이야기는 누구에게도 해본 일이 없었다. 남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또 말해 봐야 상대가 어떻게 거들어줄 수 있는 일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가 본과 3학년 때 심한 고열과 기침으로 한 달가량 고생한 적이 있다. 그를 치료하고 있던 내과 교수는 그가 죽겠다는 소리를 하지 않아선지 입원하라는 이야기는 않고 외래로만 치료를 하였다. 태원은 입원이라는 것은 죽어가는 사람이나 수술이 필요한 사람만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 괴로운 한 달을 버텼다. 열이 심하게 나는 날은 자고 나면 요가 흥건히 젖었다. 그런 날은 40도 가까이 열이 오른 밤이었다. 기침도 밤새 그치지 않았다. 하지만 치료가 끝날 때까지 외래 치료만 하였다. 그는 평생을 아파서 학교에 지각하거나 결석한 적은 없었다.

고열이 계속될 때 태원은 죽음을 떠올렸다. 별로 무서운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그는 그다지 용감하거나 강단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왠지 죽음이 별로 두렵지 않았다. 죽음뿐만이 아니었다. 두려운 게 없었다. 당시 태원은 나름대로 엉터리 철학에 빠져 노상 그런 이상한 생각만 하고 있었으니 죽음을 실감하지 못해서 그런 것 같았다.

죽음보다는 외롭거나 우울한 것은 견디기 힘들었다. 이럴 때는 죽고 싶었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이런 감정을 드러내 본 일은 없다. 그러던 자신이 유 소위를 만나면서는 온갖 이야기를 다했다. 분창장의 횡포와 군단 참모들의 공갈과 비리, 장군들의 위세에 눌려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부대 분위기, 심지어는 장교식당의 맛없는 반찬 투정도 그녀에게는 했다. 어리광을 부리는 것이다.

이런 행동을 하면서도 태원 자신은 왜 이렇게 자신이 달라진 것인지 대답을 찾지 못했다. 이런 분위기는 태원이 스스로 말을 하기도 하지만 선영이 말을 유도하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태원은 선영을 만나면서 최근의 자신의 감정 변화에 당황해 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옳은 것인지 잘못된 것인지 하는 의미에서 그는 번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