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과 정치 이야기
설 명절과 정치 이야기
  • 정재용 기자
  • 승인 2020.01.17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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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은 패망의 선봉이다. 토론의 기본은 경청이다. 조용히 들어보고 미처 깨닫지 못한 부분이 있으면 받아들일 자세가 돼 있어야 한다.
정재용 기자
정재용 기자

 

설 명절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올해 설 연휴는 하루 짧은데다 주위에 가족 단위로 조용히 지내거나 여행을 계획하는 가정도 많아 옛날 같은 민족대동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치권은 4월 15일 총선을 앞두고 설날 민심이 어떻게 작용할 것인가에 신경을 곤두세울 것이다.

정치 이야기는 세대 간, 계층 간, 지역 간의 갈등이 있기 마련이다. 모처럼 명절을 맞아 즐겁다가도 정치 이야기만 나오면 분위기가 어색해지고 때로는 말다툼으로까지 발전한다. 옛날에는 어른의 말에 절대 순종하는 분위기였지만 요즘은 아니다. 젊은이들은 어른들의 삶의 지혜를 너무나 쉽게 무시한다. 6.25, 보릿고개 등 가난과 고난의 숲을 헤치며 살아온 이야기가 한낱 '꼰대의 넋두리' 정도로 치부되는 듯해서 안타깝다.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국론은 해방이후처럼 분열되었다. 좌우 이념으로 갈라지고 지역으로, 종교로, 빈부로, 남녀로 갈라졌다. 여야가 서로 헐뜯고 손가락질한다. 박근혜 정부를 심판하면서 붙였던 농단', ‘적폐'라는 딱지를, 이어 받은 정부는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고쳐 부르며 눈 하나 까딱 않고 그대로 자행한다. 어리석은 국민들은 그것을 두고 내로남불개혁으로 나눠서 싸운다. 서로토착왜구빨갱이라고 부르며 싸운다. 실제로 왜구도 빨갱이를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책에서 읽었거나 다른 사람의 말만 듣고 직접 보고 겪은 것처럼 싸운다. 각자 휴대폰에서 자료를 찾아가며 닭싸움 판의 닭처럼 피 흘려 싸운다.

모두 생각이 같으면 모르거니와 아니라면 여럿 모였을 때는 종교이야기나 정치이야기는 안 꺼내는 게 좋겠다. 속된 말로 대가리가 깨져도' 생각을 바꾸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논쟁에서 이기면 이겨서 안 바꾸고 지면 기분 나빠서 안 바꿀 테니까 말이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당나귀처럼 절벽으로 떨어졌으면 떨어졌지 주인의 손에 이끌려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고집은 패망의 선봉이다. 토론의 기본은 경청이다. 조용히 들어보고 미처 깨닫지 못한 부분이 있으면 받아들일 자세가 돼 있어야 한다. 자신의 생각이 잘못된 것을 알고도 고집을 부린다면 패망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요즘 흔히 듣는 이야기가 있다. 독일 루터교회 목사이자 나치 반대 운동가인 마르틴 니묄러(1892~1984)가 나치의 만행에 눈을 감은 독일 국민들의 침묵에 대해 쓴 그들이 처음 왔을 때라는 시다. ‘처음에 그들은 공산주의자들을 잡으러 왔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므로이어서 같은 이유로 나치가 사회민주당원, 노동조합원, 유대인을 잡아들였을 때도 침묵했다. 이 시는 그들이 나를 잡으러 왔을 때, 나를 위해 저항해 줄 사람이 더 이상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로 끝난다.

이렇듯 불의에 눈 감으면 피차가 죽는다. 얄팍한 유혹과 감언이설에 속아서 넘어가면 안 된다.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침묵하는 것은 죄다. 만약 설 명절에 정치이야기가 나오면 절대로 화를 내거나 흥분할 필요는 없다. 그냥 자기주장을 조용히 펼치면 된다. 가족끼리 이기면 어떻고 지면 어떤가? 이런 주제는 대체로 결론이 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적당한 때 그치는 것이 좋다. 너무 길게 말하거나 열을 내서 떠드는 사람이 나오면 바로 토론을 중단하는 것이 좋다. 술로 치면 과음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불과 70년 전만해도 전쟁의 포화 속에 있었다. 오늘날 이처럼 자유민주주의를 누리며 풍요한 설 명절을 맞는 것은 기적이다. 그러나 북한 동포는 아직도 3대 세습 김씨왕조의 노예로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이들에 대한 침묵의 죄를 짓지 말아야할 것이다. 인권 없는 통일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홍콩이 그래서 싸우고 있다. 아무쪼록 화목하고 즐거운 설 명절 되기를 바라며 북한 땅에도 속히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