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 성암산의 사계 詩碑
경산 성암산의 사계 詩碑
  • 여관구 기자
  • 승인 2020.01.13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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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현들이 남긴 문화유산
- 나라를 지킨 성현들
- 경산을 빛낸 성현들
빗돌에 새겨진 성암산 사시(四詩) 詩碑 - 여관구 기자

경산시에 위치한 성암산은 임진왜란 때 경산향교 머슴이 왜군이 쳐들어오자 대성전에 모신 공자, 맹자 등 성현들의 위패를 바위굴(범굴)에 숨겨 화를 면할 수 있었던 일화에서 경산향교의 오성위패를 숨겨준 바위굴이 있는 산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 성암산(聖巖山)이다. 산세(山勢)가 수려(秀麗)하여 지금은 수많은 시민이 건강을 위한 등산코스로 이용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성암산에 대한 시(詩)나 글을 남긴 것을 찾아볼 때 탁와(琢窩)先生외에는 거의 없다. 여기 빗돌에 새겨진 두편의 시(詩)는 성암산 사시(四詩)라는 제목으로 사철로 변하는 성암산의 산색(山色)을 여실히 나타내었고 또 하나의 성암산의 덕성을 표현하였다.

聖巖山 四詩 - 여관구 기자
성암산 德嶝絶句(덕등절구) -여관구 기자

위 두 시(詩)는 탁와(琢窩)정기연(鄭璣淵)이 1920年 頃에 경산(慶山)의 진산(鎭山)인 성암산(聖巖山)을 두고 읊은 것이다. 탁와(琢窩)[1877~1952]는 정동민(鄭東珉)의 차자(次子)로 연제(淵齊) 송병선(宋秉璿)先生의 고제(高第)이며 1910년 왜적(倭賊)에게 나라를 잃게 되자 옥곡동(玉谷洞) 우경제(㝢敬齊)에 은거(隱居)하면서 탁와집(琢窩集)11책(冊)의 대작(大作)을 남긴 유학자(儒學者)이다. 탁와(琢窩)는 이외(以外)에도 성암산기(聖巖山記), 성암칠절(聖巖七絶) 등 성암산에 대한 여러 가지 시문(詩文)을 지어 읊조리면서 안식의도(安食儀道)하였던 것이다.

德嶝絶句 詩碑 - 여관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