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을 극복한 시니어] 소아마비 다리 때문에 골프 시작, 차별도 날렸다
[고난을 극복한 시니어] 소아마비 다리 때문에 골프 시작, 차별도 날렸다
  • 황환수 기자
  • 승인 2020.01.13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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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골퍼 여상관 대표

열악한 형편 치료 시기 놓쳐
식당 일 위해 다리 튼튼해야
사람들 노골적 시선 못 잊어
장애 시니어 별도로 배려를

 

여상관 씨가 2017년 제2회 하모니 장애인 전국골프대회에서 우승한 뒤 트로피와 부상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여상관 씨가 2017년 제2회 하모니 장애인 전국골프대회에서 우승한 뒤 트로피와 부상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대구 수성구 욱수골 두꺼비 산란지로 유명한 길 초입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여상관(57) 대표는 신체적 불편에 굴하지 않고 골프를 배워 장애를 극복한 선수로 우뚝 서 있다. 전국 각종 대회서 우승하는 실력을 과시하고 있다. 하마터면 해저드에 빠질 뻔한 삶이 골퍼로서 페어웨이에 안착한 셈이다. 경북 청도군 유천면 시골에서 자라 어린 시절 열악한 형편 탓에 한쪽 다리의 소아마비를 앓는 불행을 겪어야 했다. 5살에 온몸의 열이 40도를 오르내렸다. 제대로 치료만 받았으면 신체장애를 평생 달고 살지 않을 수 있었다.

옛 시골은 응급의료체계가 전무한 형편이어서 구호를 받지 못하기 일쑤였다. 특히 현재 시니어 세대들이 나고 자란 시골 마을의 경우 장애우 서너 명은 있었다. 심지어 다리를 다치거나 팔을 다친 응급상황에도 병원을 찾지 못하고 통증만 가라앉기를 기다린 경우도 허다했다. 후유증이 심해 평생 불편한 몸으로 지내야만 했다. 대부분 빈곤한 살림살이 때문이다.

여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신체적 불편함을 크게 탓하지 않고 고향에서 성장했다. 마을마다 비슷한 처지의 이웃들이 많았으며 또 시골 인심이 장애인을 눈에 띄게 차별하지 않은 영향이었다.

청년기를 거쳐 최은숙(54) 씨를 만나 결혼에 골인했다. 부부는 정상인들도 꾸려가기 어렵다고 여기는 식당을 운영했다. 한식을 비롯해 일식 등 다양한 업종을 드나들며 저축해 20년 만에 자신들의 이름으로 마침내 식당을 내는 데 성공했다. 여 대표의 불편한 다리는 언제나 성공을 이뤄내는 밑거름 역할을 했다.

하지만 밤낮을 가리지 않은 식당일에는 튼튼한 다리가 필요했다. 이 같은 고민을 해결할 요량으로 그는 골프를 배우기로 결심했다.

“13년 전 많은 골퍼들이 드나드는 연습장에 처음 찾아갔을 때 골프장 관계자와 연습하던 골퍼들의 시선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그는 장애인으로 삶을 영위한 육체적 고단함보다 정신적인 어려움을 일일이 나열했다. 식당에서 일하기 위해 다리 근력을 높이려고 선택한 운동이 바로 골프였다. 이런 저런 차별의 눈초리를 애써 무시하며 연습장에서 늦은 밤까지 비지땀을 흘렸다. 드디어 가까운 동료들과 필드에 처음 나서던 날 또 다시 여 대표는 마음을 할퀴고 지나가는 시선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골프장 라커에서 걸어 나오는 그를 대하는 눈길 속에 ‘왜 하필 장애인이 골프를 치냐’는 투의 못마땅한 표정과 시선이 아직도 선명하게 떠오른다고 회상했다. “18홀 게임을 마치고 불편한 다리를 뜨거운 온기에 풀려고 목욕탕에 들어설 때 사람들이 한꺼번에 신체 모습을 쳐다보며 일그러진 표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을 때를 잊을 수 없었다”며 장애인에 대한 현실적 인식이 얼마나 불편한지 꼬집었다. ‘용문신이라도 새겨볼까’ 하고 고민한 적이 있었다며 담담하게 말했다.

10여 년의 골프 구력은 노력한 대가를 되돌려주었고 다리의 힘도 크게 길러주었다. 지난해 전국체전 경북대표로 참가한 골프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지난 2017년 제2회 하모니 장애인 전국골프대회에서 우승의 영예를 안았다. 또 제6회 용인시장배 전국장애인골프대회 스탠딩부 통합 경기에서 1등을 차지하기도 했다.

체력 단련을 위해 시작한 골프가 이제 유일하게 집중할 수 있는 취미이자 실력을 인정받는 경지에 도달했다. 여 대표는 “골프를 즐기면서 허리를 비롯해 발목 등에 잦은 부상 때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돌봐준 동료 골퍼 김기철 한의원장에게 감사를 전한다”며 “따가운 시선의 현실에서 따뜻한 온기로 배려해준 골프 동호인들과 장애우 골퍼들을 위해 시니어의 파워를 건재하게 보여줄 것”이라며 양손을 굳게 쥐었다.

 

여상관 대표가 주방에서 손님들이 주문한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
여상관 대표가 주방에서 손님들이 주문한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장애를 가진 시니어들을 위한 여러 가지 나름의 의견도 제시했다. “먼저 시니어가 된 사실만으로도 사회 뒤안길로 떠밀려 나는 느낌이 절로 드는데 하물며 장애 시니어들의 경우에는 어떤 심정일까 상상해 볼 것”을 주문했다. “우리나라 일천한 사회복지 정책의 기계적 적용은 오히려 용기보다 상대적 패배감을 안겨주기도 했다”며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부심을 지닐 수 있게 장애 시니어에 대한 공감능력 배양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거시적 안목에서 시니어에 대한 배려나 지원을 장애 시니어들에게도 일괄적으로 적용해 심리적 차별성을 느끼게 하는 역효과가 크다”고 지적하고 “이들이 당당하게 어려움을 극복한 긍지를 가질 수 있는 별도의 정책적 배려가 우선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사회적 시선을 바꿀 수 있는 전향적인 홍보도 반드시 병행해 인격적 대우가 앞서야 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