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을 극복한 시니어] ‘하회탈 명인’ 김동표 관장
[고난을 극복한 시니어] ‘하회탈 명인’ 김동표 관장
  • 이동백 기자
  • 승인 2020.01.13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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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잃고 탈 납품권 뺏긴 실패, 오히려 오기로 작용”
전시된 탈 앞에 선, 하회 세계탈박물관장 김동표 씨                                       이동백 기자
자신이 만든 탈 앞에 포즈를 취한 하회 세계탈박물관장 김동표 씨      이동백 기자

 

평생 하회탈을 깎으면서 김동표(68) 세계탈박물관장이 추구한 것은 탈의 원형을 정확하게 재현하는 일이었다. 탈 만드는 장인으로 외길 인생을 살아온 그의 철학이자, 가치관이다. 한 치의 오차도 스스로 용납하지 못하는 완벽주의를 추구해왔기 때문에 한때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지만 불굴의 집념으로 고난을 이겨냈다. 김 관장을 직접 만나 역경을 이겨낸 사연을 들어봤다.

“서울 천호동에 공예 작업장을 열고 고무신, 꽃송이, 불상 등을 깎았다. 하루는 이웃 사람이 양반탈 우표를 보여주면서 깎을 수 있겠냐고 물었다. 우표 속의 하회탈 모양대로 깎으려 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실패가 오히려 원형을 재현하리란 오기로 작용했다”며 탈 만드는 일에 입문하게 된 동기를 설명했다.

한때 조각가 김창범을 1년 사사했지만, 스승의 발뒤꿈치도 따라가지 못한다는 절망감에 빠져 이란 건설 현장으로 도피했다. 귀국 후에 원형을 재현하리라는 각오로 다시 탈을 깎았다. 백화점에 납품하게 돼 성공하나 싶었다. 정확하게 재현하려다 보니, 제작 시간이 길어져 미처 공급하지 못했다. 결국 납품권을 빼앗기고 이란에서 번 돈까지 몽땅 잃었다.

하지만 하회탈 제작에 대한 신념을 버릴 수 없어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안동 하회마을 근처에 있는 고향 구담리로 내려와 공방을 열었다. 이미 제작 기술을 인정받은 터라서 문화재보호재단에 탈을 납품할 수 있는 길을 뚫었다. 또 빚만 떠안는 상황이었다. 좌절감과 절망감에 사로잡혀 한동안 어려움을 겪었다.

“하회탈 제작이 어렵다. 탈마다 나름의 특성이 있는 데다가 사람의 마음을 탈의 표정 안으로 미묘하면서도 디테일하게 끌어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깎기 쉬운 게 하나도 없지만, 가장 어려운 것은 표정의 변화가 다양한 양반탈”이라고 김 관장은 말했다.

거듭된 사업 실패에도 다행히 1981년 주변의 도움과 주선으로 구담리에서 하회마을로 옮겨 부용탈방을 열었다. 안정적으로 주문이 들어오면서 형편이 나아졌다. 그러나 전과 같이 생산량이 주문을 따라가지 못해, 탈 제작만으로는 생계가 어려웠다. 기념품 목걸이용 탈을 곁들여 제작했다. 뜻밖에 잘 팔려나가 형편도 나아졌고, 탈 깎는 일에 전념할 수 있었다.

김 관장은 탈 제작뿐만 아니라 직접 하회탈춤을 추기도 했다. 각시탈을 쓰고 10년을 췄다. 국내 무대는 물론 미국, 중국, 몽골 등 세계무대에도 섰다. 2017년에는 프랑스 ‘옹플뢰르 워크숍’에 초대 작가로 참여했다.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이 하회마을을 찾았을 때도 그 앞에서 각시 역을 맡았는데 공연을 마치고 탈을 벗으니, 여왕이 “어! 여잔 줄 알았는데 남자”라며 놀랐다고 한다. 여왕의 안동 방문을 기념해서 하회탈을 여왕에게 증정했더니 노동부에서 명장 자격을 준다 했지만 거절했다. “혼을 넣어 제작하는 탈인데, 단순한 노동으로 보고 주는 것이어서 그랬다”고 회상했다.

탈을 만드는 감동표 관장         김동표 관장 제공
탈을 만드는 감동표 관장                         김동표 씨 제공

 

1995년에 개관한 안동 하회마을의 세계탈박물관에는 50여 개국의 탈 650점과 한국 탈 150점을 전시하고 있다. 수장고에 소장한 것까지 합치면 3천 점에 이를 만큼 방대하다. 서울 남대문 공예품 도매 상가에 기념품을 납품하면서 수익이 많아지자 기념품 판매와 박물관에서 나오는 수입 거의를 탈 수집에 들였다. 박물관 규모도 키울 수 있었다.

그는 발품을 팔아 귀하게 모은 소장품 모두를 소중하게 여긴다. 그 중에서 우리나라 장례 때 귀신을 쫓는 데 쓰던 ‘기’와 코에서 두 개의 뿔이 뻗어나간 외국 ‘머드맨 탈(가면)’을 첫손에 꼽는다.

소장한 탈을 국내외서 전시해왔다. 미국의 하몬드박물관, 영국의 킹스턴박물관, 카자흐스탄의 국립박물관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대만의 묘율 국제가면예술제에 참가했으며, 프랑스, 일본 등의 한국탈전에도 참여했다. 국내에서도 한국탈대전, 세계가면문화대전 등의 행사에 동참했다. 다음 달에는 아르헨티나 한국문화원에서 탈 전시회를 열 예정이다.

김 관장은 앞으로 “탈춤축제 사업운영 분과위원장을 끝으로 대외 활동을 삼가고 박물관 일에 전념하겠다”며 “당장 소장한 좋은 탈을 바꾸어 가며 전시하는 일이고, 앞으로 한국 탈을 탈 인형으로 만들어 전시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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