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을 극복한 시니어] 반찬 가게 억척 가장 "노래는 내 삶의 희망"
[고난을 극복한 시니어] 반찬 가게 억척 가장 "노래는 내 삶의 희망"
  • 박영자 기자
  • 승인 2020.01.13 09:0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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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매시장 가수 김연정 씨

22세에 대구로 시집와서 닥치는 대로 강사
배움 부족해 악보 모르지만 한번 듣고 습득
음반 발매하고 70세 맞아 작은 콘서트 뿌듯
신데렐라처럼 드레스를 입으면 분위기를 압도하는 멋진 가수로 변신하는 김연정 씨
신데렐라처럼 드레스를 입으면 분위기를 압도하는 멋진 가수로 변신하는 김연정 씨.   박영자 기자

 

가수 김연정(본명 김필녀·70)은 대구 염매시장(옛 덕산시장) 반찬가게 아줌마다. 22세 꽃다운 나이에 경남 진주에서 대구로 시집왔다. 맨주먹으로 시장 난전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59세에 가수가 되기까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왔다.

어린 나이에 결혼해서 새댁으로 살아가기가 쉽지 않았다. 친정에서 농사꾼으로 살며 동기간에 고생하다 편해지려나 싶어 시집이라고 와서도 역시 평생 일만 했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생활비를 받아 본 적이 없다.

생활력이 남달리 강했던 그녀는 신혼부터 가장 노릇을 하면서 안 해 본 일이 없다. 염매시장에서 큰 대야 하나 놓고 생선을 짚으로 엮어서 팔다가 채소도 팔다가, 돈이 되는 일이면 무엇이든지 닥치는 대로 모두 했다. 고생고생 하다가 형편이 조금 나아져 판매하는 물건을 해삼, 전복으로 바꿨다.

전복을 팔면서 장사도 잘되기 시작했다. 폐백, 제사, 이바지 전문음식으로 유명한 염매시장에서 결혼식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웬만하면 물건도 사고 이바지 음식도 함께 주문하기 때문이다. 겨울이면 손이 얼어 터졌다. 손가락에 아무런 감각도 없어 연탄불을 끌어안고 손을 녹여가며 조개껍데기를 수없이 까고 다듬었다.

10원짜리 하나도 벌면 쓸 줄 모르고 저축했다. 덕분에 지금은 끼니 걱정 않고 자리도 잡아 잘 살고 있다.

새벽에 자는 아이 깨워서 업고 시장에 나와 종일토록 장사하고 나면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쳐서 죽을 힘도 없을 지경이었다.

그녀의 가장 즐거운 시간은 저녁에 장사를 마무리한 뒤 이웃들과 함께 소주 한 잔 나누면서 노래를 부를 때다. 한 잔 술에 인생을 담아 젓가락을 두드렸다. 자신의 한을 풀어내듯이….

하루 이틀 세월이 흐르면서 ‘시장가수 이미자’라는 애칭도 생겼다.

손때 묻어 꼬질꼬질한 카세트플레이어가 유일한 친구이고 재산이었다. 가게에서는 쉬는 날 빼고 365일 진짜 트로트 가수 이미자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배우지 못해 악보는 잘 보지 못하지만 한번 들은 노래의 곡조와 가사를 정확히 알고 있다. 어떻게 그 많은 가사와 곡을 다 외우는지, 그녀는 두 번만 들으면 다 안다고 했다. 타고난 재능이다. 카세트테이프가 늘어져 윙윙거릴 때까지 계속 노래를 틀었다.

비록 젓가락을 두드리며 장단 맞추는 ‘니나노’로 시작했지만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드디어 꿈을 이루었다. 김치 만들다가도 “노래해 달라” 부르면 어디든지 달려갔다. 허겁지겁 화장하고 캐리어에 꿈을 담은 반짝이 옷을 넣어 신나게 달려갔다.

‘언젠가는 무대에 설거야’라는 소망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녀의 나이 59세에 대구시에서 주최한 트로트 가요제에서 금상을 탔다. 2014년에는 ‘출가외인’ ‘별나게 살지마’ ‘지난세월’ 등의 노래를 담은 음반도 냈다. 한 달에 2, 3번 정도 행사에 가고 봉사활동도 나간다. 염매시장에서 반찬과 김치를 파는 ‘열이 엄마’가 당당한 가수로 새로운 인생길을 활짝 열었다. 한 번도 자기를 위해 살아 보지 못하고 아내와 엄마의 자리를 꿋꿋이 지키며 억척같이 살아온 인생에 ‘가수’라는 첫 희망의 불씨를 선물로 받았다.

남편과 아이들도 모두가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라, 한시도 마음 편하게 살아보지 못했다. 남편을 의지할 수 없으니 남자들이 하는 일도 못하는 것이 없다. 가족들이 좀 부족한 면이 있지만 팔자로 알고 산다는 그녀는 “그래도 내 새끼 내 신랑이 옆에 있어줘서 감사하다”고 말한다. 지인들은 힘들게 살아온 ‘인생 70’에 시장 장사 40년의 열이·민아 엄마에게 박수를 보낸다. 가장 역할을 하면서 눈물을 참으며 살아온 날들 얼마나 힘들었을까 짐작하고도 남는다.

염매시장 안 손맛으로 소문난 '열이네 반찬가게' 사장님이기도 하다.
염매시장에서 손맛으로 소문난 '열이네 반찬가게' 사장님이기도 하다.   박영자 기자

 

이제부터 모든 것 생각하지 않고 자기만을 위한 오직 ‘김연정을 위한 삶을 사는 여자’이고 싶단다. “자식이 똑똑해서 나를 챙겨 주겠나 신랑이 챙겨 주겠나” 라고 하던 그녀는 작은 콘서트 한 번 하는 게 소원이었는데 70세를 맞아서 공연을 가졌다. “열심히 살고 고생만 한 자신에게 칭찬을 해 주고 상을 주고 싶었다”며 “당연히 있어야 할 가족이 올 수 없는 공연장에서 많은 친구들이 울었다. 격려도 해주어서 앞으로 더 열심히 살 것”을 다짐했다.

“어디 큰 일 한 번 한 일이 있나, 아직 자식들도 결혼을 안했고, 살아오면서 신세진 사람, 친지와 친구들에게 밥 한 그릇 나누고 싶어 마련한 콘서트는 내 인생의 최고의 날이었고 잘한 일이며 가장 행복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남은 인생은 거칠어진 손 보다, 잘 키운 자식보다 더 사랑해야할 나를 살아있게 만든 노래와 함께 할 것이란다.

40년간 한 자리에서 장사를 하다 보니 세 살던 가게도 사서 염매시장 안 터줏대감으로 산다. 단골이 많아서 멀리 미국까지 각종 반찬을 보낸다. 어린 시절 손맛을 못 잊어 다른 지역에 시집 가도 택배로 주문한다.

착한 일을 많이 해 각종 상도 많이 받았다. 특히 청소년 봉사활동을 다니며 알게 모르게 지역 사회에 많은 도움을 베풀고 있다. 염매시장 가수 김연정은 지역 가수로서 자리를 잡았고 나이 70세에 열심히 사는 모습이 아름답다. 힘이 닿는 날까지 맛있는 반찬을 만들고 김치를 버무리며 설움과 행복을 담아 5평 공간에서 곡조에 맞춰 노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