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새해을 맞이하며
(42) 새해을 맞이하며
  • 조신호 기자
  • 승인 2020.01.06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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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을 막론하고, 일 년이라는 시간 마디(節)의 황금율(節度)은 중용이다. 이것이 성공의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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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새해가 시작되었다. 똑 같은 밤이 가고 똑 같은 아침이었으나, 자정을 넘어서면서 새해가 밝아온다고 온 지구촌이 종을 울리며 환호했다. 추위를 무릅쓰고 동해로 달려간 많은 사람들이 붉은 태양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기도 했다. 새해는 우리 삶의 중요한 그 무엇임이 분명하다.

태양의 궤도에 자전과 공전을 거듭하는 지구는 끝도 시작도 없는 무시간적인 우주의 일환(一環)이다. 이에 비해서 우리 인간은 출생과 죽음이라는 한계가 엄연한 유한(有限)의 존재이다. 시작과 끝이라는 한 마디(節) 시간에 불과한 것이 우리 삶이다.

우리 인간의 삶이 늘 ‘시작과 끝’이라는 마디로 반복되기 때문에, 무시간적인 우주의 흐름을 하루, 일주일, 한 달, 일 년이라는 단위로 나누어 인식하고 있다. 시간은 삶의 궤도이고, 이 시간의 궤도를 이탈하는 것이 바로 죽음이다. 그러니 이 시간의 마디(節)에 삶의 행적을 담아둔다. 어제 한 일, 내일 만날 약속, 지난 3년간의 학업, 10년간 이룩해 온 연구, 5개년 계획, 등은 모두 시간과 공간의 마디에 유한한 삶을 담아 둔 상자(箱子)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승의 삶이 보존되지 않는다. 이러한 시공의 궤적을 담은 기록한 것이 역사이다.

새해는 유한한 일생이 어디쯤 가고 있는가를 바라보는 삶의 이정표, 즉 새로운 시간의 궤도이기도 하다. 지구의 공전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태양력의 이치에서 보면, 사실상 동지(冬至) 다음 날이 새해이다. 밤이 가장 긴 시점이 끝나고, 다시 낮이 점점 길어지기 시작하는 날이 동지이니 그러하다. 필자의 어린 시절 1950년대에는 동지 때 나이 한 살 먹고, 양력설에 또 한 살 먹고, 음력설에 다시 한 살 먹으니 일 년에 나이 3살씩 먹는다고 어른들이 말하고 곤 했다. 지구의 공전 현상에서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옛날에는 동지를 새해로 삼았던 민족들도 있었으나, 전 세계가 고레고리력을 표준으로 삼으면서, 동지 후 10여 일이 지나서 새해를 맞이한다. 1582년 10월 4일 교황 그레고리 13세는 해마다 춘분이 달라지는 율리우스력(Julian calendar)의 오차(誤差)를 바로 잡아 새로운 달력을 만들었다. 밤낮의 길이가 같은 날과 춘분이 일치하도록 새로운 계산법을 적용한 것이 바로 그레고리력이었다. 그 배후에는 기독교의 부활절 날짜의 확정에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여 지키는 부활주일(Easter)은 튜턴족(Teutones; 독일 드레스텐의 엘베강 지역에 살았던 게르만족)의 ‘봄과 새벽의 여신’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 여신의 축제는 해마다 춘분에 열렸으므로, 오늘날의 부활절이 춘분 다음 첫 보름날 다음의 일요일로 정해졌다. 부활절의 원래 명칭은 유월절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파스카(Pascha)였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이 유대인의 절기인 유월절과 같은 시기에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올해 2020년의 부활절은, 3월 20일 춘분 다음에 오는 보름달이 4월 7일 화요일이므로 그 주간의 일요일, 4월 12일이 ‘부활주일’이 된다.

우리 인간 삶의 행적을 담아두는 ‘시공(時空)의 궤적 상자(用器)’는 늘 시작과 끝이 있다. 시작과 끝이 있는 운동 경기처럼 일상의 삶에도 늘 성공과 실패가 있다. 새해라는 시작은 늘 실패를 반성하며 새로운 꿈과 희망을 설정하는 중요한 출발점이다. 2020년 새해, 지난 과오를 뒤로 하고 모두 새롭게 출발하는 날이다. 작심삼일하여 가다가 멈추면 아니 감만 못하다! 우리 모두가 쉬지 않고 힘차게 달려가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일 년이라는 시간 마디(節)의 황금율(節度)은 중용이다. 이것이 성공의 비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