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이 그린 추상화는......
신동이 그린 추상화는......
  • 배소일 기자
  • 승인 2020.02.10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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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 까맣다, 그리고 하얀 김도 있었다

신동이던 李군의 유치원 시절은 내가 가르쳤다. 특히 그림 솜씨는스케치에서부터 채색에 이르기까지 100여 명 원생 중에서도 탁월했다. 정물이면 정물, 풍경이면 풍경, 인물화 등등.. 아이가 그려낸 작품은 그해, 출품하기만 하면 대상을 휩쓸었다.

내가 그 아이를 다시 만난 것은 10년 뒤였다. 미술 교사로 부임 후 첫 미술수업시간이었고 아이는 고교 2년생이었다.

그날은 추상화에 대한 설명을 해줬고 반 학생 40명에게 대상을 정하지 않고 추상화를 그려 보라고 했다. 10분 후 그 아이 좌석 앞에서 크레파스로 화선지를 그리는 손길을 주시했는데, 흰 종이의 반쯤을 새카맣게 그리고 있었다.

내심 '역시 뭐가 다르긴 달라'라고 감탄하며 이 자리 저 자리로 오가며 학생들 하나하나의 솜씨를 체크 했다. 20분 후 다시 아이 앞으로 왔는데 흰색 종이 전체가 온통 시커멓게 칠해져 있었다. 그러더니 화선지를 뒤집고는 다시 까만 크레파스를 집어 들고 있었다.

30분이 지난 후, 뒤집은 화선지의 절반을 역시 까맣게 칠했고 50분 후 아니나 다를까 종이 양면을 완전 새까맣게 만들어 교탁 위로 제출했다. ‘천재의 속을 내가 어찌?’ 싶어 물어보았다.

“어이 이 군! 이 그림은 무엇을 상상하며 그린 건가?”

“김이요!”

 

* 까만 김과 하얀 김이 통성명 했다.

까만 김: "첨 뵙습니다. 저는 자연산 김 입니다"

하얀 김: "네 반갑습니다. 저는 앙드레 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