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성지’를 사진에 담아 영혼을 일깨우는 이성호 작가
‘가톨릭 성지’를 사진에 담아 영혼을 일깨우는 이성호 작가
  • 강효금 · 박영자 기자
  • 승인 2020.01.02 15:57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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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의 대비를 통해 전해지는 강한 아픔
영성을 일깨우는 작품 통해 순교의 의미와 고통을 되새기게 해
그의 사진을 통해 우리는 역사의 현장에 마주서는 체험을 한다
대구 성모당 안에 있는 김대건 신부님 상 앞에서 작품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성호 작가.                        사진 박영자 기자
대구 성모당 안에 있는 김대건 신부님 상 앞에서 작품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성호 작가.      사진 박영자 기자

 

페르시아에서 ‘십자가’는 죄인을 처형하기 위한 형틀이었다. 그들은 이 땅이 자신들이 믿는 올므즈 신에게 바쳐진 신성한 대지라 믿었다. 죄인을 처형하게 된다면 이 대지가 더럽혀진다는 생각으로, 페르시아인들은 십자가 처형방법을 고안했다. 시신이 땅에 닿지 않도록 땅에 말뚝을 박고 높이 매달아 처형하는 십자가형은 가장 잔인한 처형방법이자 악의 상징물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사람들을 처형하던 십자가가 ‘예수’라는 한 인물에 의해 선의 상징이자 종교의 상징으로 변화된다. 예수는 스스로 인류를 구원하는 희생제물이 되어 십자가에 못 박힌다. 그가 십자가 위에서흘린 피로 인해, 이제 치욕의 십자가는 사랑과 영광의 십자가로 바뀌며 '절대선'의 상징이 된다.

그 십자가에 이끌려 4년여에 가까운 시간, 지금 이 시간에도 가톨릭 성지를 찾아 렌즈에 담아내는 사진작가가 있다. 바로 이성호 작가다. 이성호(57) 작가는 지난해 명동 성당과 계산 성당에서 <가톨릭 성지>라는 제목으로 사진전을 열었다. 사진·미술을 전문으로 하는 눈빛출판사에서 예순한 번째 ‘눈빛사진가’로 선정되어 사진집이 출간되는 영예도 안았다. 평상시에는 대구광역시 공무원(대구광역시 남구청 도시창조국장)으로, 쉬는 날이면 聖地를 찾아 전국을 누빈다. 이성호 작가의 작품은 보는 이를 사진 안으로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영적인 언어에 이미지를 입혀, 그의 작품 앞에 서면 마치 생생한 역사의 한 장면으로 빨려 들어간 듯한 느낌이 든다.

 

- 처음에는 정미소같은 근대건축물을 촬영하는 작업을 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가톨릭 성지에 매료된 계기가 있는지요.

대구 성모당 안에 있는 성직자 묘지 이성호 작가 제공
대구 성모당 안에 있는 성직자 묘지. 날아오르는 새 한 마리가 마치 하늘을 향해 떠오르는 순결한 영혼을 상징하는 듯하다.
이성호 작가 제공

 

▶ ‘정미소’ 사진을 찍으며 우리나라의 근대건축물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어느 날 지인이 대구‘성모당’에 가면 근대건축물을 볼 수 있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눈이 내리던 날, 카메라를 메고 성모당을 찾았습니다. 걷다 보니, 묘지가 보였습니다. 성직자 묘지였습니다.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밀려왔습니다. 초대 교구장인 드망즈 주교와 6명의 주교님, 몬시뇰, 사제들이 잠들어 있는 묘지 입구에는 “오늘은 내가 내일은 네가”라는 글귀가 라틴어로 새져져 있었습니다. 먼 나라 프랑스에서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이곳으로 와, 여기 ‘한국인’으로 묻힌 드망즈(한국명 안세화) 주교님의 이야기도 제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돌아가시면서도 한국인임을 귀하고 소중하게 여겼던 그분의 생애가 참 아프도록 다가왔습니다. 세월의 흐름이 묻어나는 묘비의 갈라진 틈새도 신비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지금까지 4년 여 동안 가톨릭 성지를 순례하며 렌즈를 통해, 피를 흘려 신앙을 지킨 그분들의 흔적을 담았습니다.

 

- 그 많은 성지 가운데 이성호 작가의 마음이 가장 강하게 끌리는 곳이 있나요?

 

추자도 '눈물의 십자가'

▶저는 가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곳곳에서 신유박해, 병인·병오·기해박해의 흔적을 만났습니다. 저에게 가장 아프게 와 닿은 사람은 ‘황사영 백서’의 주인공인 황사영이었습니다. 아직도 역적이다 아니다, 그 당시로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다 의견이 갈리고 있지요. 그 황사영의 아내가 정명련(일명 난주)마리아였습니다. 남편은 능지처사라는 끔찍한 형을 당하고 자신은 제주도 관노로 끌려가는 유배 길에, 정난주 마리아는 뱃사공을 매수해 배가 추자도에 멈춰섭니다. 그녀는 두 살 난 어린 아들이 노비가 아닌 자유로운 양민의 신분으로 살아가기를 기도하며, 아기를 추자도 바위틈에 내려놓았습니다. 배냇저고리에는 아이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적은 종이를 넣어두었지요. 아이를 떼어놓고 돌아서야 했던 정난주 마리아의 가슴을 타고 흐른 피눈물은 땅을 적시고, 하늘로 올랐다고 합니다. 그곳에 세워진 십자가가 바로 ‘눈물의 십자가’입니다. 저는 황사영에 대해 한국교회에서 적극적인 연구가 행해졌으면 합니다. 물론 보는 방향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지금이라도 그가 남긴 백서의 의미를 깊이 되새겨 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만난 순교자의 넋, 보령  갈매못 성지    이성호 작가 제공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만난 순교자의 넋, 보령 갈매못 성지                                이성호 작가 제공

 

“형장으로 택한 곳은 바닷가 모래사장이었다”-보령 갈매못 성지

▶병인박해 때 붙잡힌 조선 5대 교구장이었던 다블뤼 주교와 사제, 회장들이 순교한 ‘갈매못 성지’도 기억에 남습니다. 성당에 들렀다 바닷가로 갔는데 많은 사람들이 모래사장에서 절을 하고 기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침 옆에 계신 한 할머니에게 물었더니, 그 모래사장이 바로 형장이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격한 감정에 금방 카메라를 갖다 댈 수 없었습니다. 두 시간 가까이 흘렀을까, 그 후에 순교의 현장인 십자가로 표시된 모래사장을 향해 감정을 추스르며 셔터를 누를 수 있었습니다.

 

청양 다락골 줄무덤 성지. 이름 없는 많은 이들의 죽음, 그 앞에서 한국교회에 밀알이 된 그들의 희생을 되새긴다.     
이성호 작가 제공

 

'청양 다락골 줄무덤 성지'

▶청양은 우리나라 두 번째 신부인 최양업 신부가 태어난 곳입니다. 최양업 신부는 전국 방방곳곳을 다니며 선교한 ‘백색 순교자’로 잘 알려져 있지요. 그 청양에 가면 신자들이 함께 모여 생활하던 교우촌이 있습니다. 병인박해 때 그곳에 살던 수많은 사람들이 흥주 감옥에서 처형당했고, 가족들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몰래 한밤중에 시신을 수습하여 매장했습니다. 서둘러 매장해야했기에 한 무덤에 여러 사람을 묻을 수밖에 없었지요.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줄무덤 성지입니다. 이름 없는 순교자들의 피흘림이 있었기에 지금의 한국교회가 있다는 생각에 숙연해졌습니다.

 

여산 숲정이 성지에서 만난 예수님의 발.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도 예수님의 못 박히심에서 위안을 얻었을까. 
    이성호 작가 제공

 

'여산 숲정이 성지에서 만난 십자가'

▶익산 나바위 성지와 숲정이 성지에서 만난 십자가는 더 처절하게 다가왔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의 발’과 십자가 아래에서 가슴이 못에 박히는 고통을 느끼며 깊은 슬픔에 잠긴 ‘성모 마리아’의 모습. 그 모습을 렌즈에 담으며 숲정이 마을에서 피를 뿌리며 신앙을 지킨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겹쳐졌습니다. 아들이 십자가 위에서 서서히 질식하며 생명의 불이 꺼져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슬픔이 ‘눈물 한 방울’로 표현된 것이, 더욱더 슬픔을 극대화해 줍니다.

한티 성지에서 만난 작은 무덤. 이성호 작가에게 성지 순례의 길을 걷게 한 곳이기도 하다.          이성호 작가 제공

 

'한티순교성지에서 만난 작은 무덤'

▶한티성지는 병인박해 때 신자들이 숨어들어 신앙공동체를 이루며 살던 곳입니다. 저에게 ‘가톨릭 성지’라는 숙명적 숙제를 안겨준 곳이기도 합니다. 숯을 굽고 옹기를 만들고, 화전을 일구며 살아가던 평화로운 공동체에 피바람이 몰아칩니다. ‘선참후계’라는 명목 아래 들이닥친 군사들은 마을을 불태우고 불을 피해 나온 사람들을 무참하게 베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무더기로 처형을 당한 것입니다. 한티성지에서 만난 나란히 앉은 네 기의 작은 무덤은 저에게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이름도 기록되지 않은 어린아이의 무덤. 그 작은 무덤을 사진으로 옮기며 마치 그 역사적 현장으로 들어간 듯 통증을 느꼈습니다. 무엇이 그토록 그들을 하나로 뭉치게 했을까? 그들이 그토록 지키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기도 했습니다.

 

- ‘가톨릭 성지’ 작품은 모두 흑백입니다. 흑백을 선택한 이유가?

▶제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이 제가 담고자 한 종교적 느낌을 그대로 체험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온전히 흑과 백으로만 담아냈습니다. 모든 것을 지우고 사진 속에서 영적인 체험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면 하는 게 저의 바람입니다. 영성은 종교인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심성이라 생각합니다. 그 영성이 저의 이런 작품을 통해 깨워지고 발현된다면 좋겠습니다. 저는 제 작품 하나하나에 이런 영성을, 사람을 향한 애정을 담고자 노력합니다. 때로는 대상과 떨어져 셔터를 누르며 생각의 공간을 비워두기도 하고, 때로는 근접해서 단순하고도 강렬하게 그 아픔을 전달하고자 하기도 합니다.

저는 성지를 순례하며 교회사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공부했습니다. 앞으로도 저의 가톨릭 성지를 향한 순례는 계속될 겁니다. 어쩌면 이것이 제 자신을 찾아가는 여행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숲정이 성지에서 만난 성모님.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을 지켜보며 가슴에 못이 박히는 그 격렬한 고통이 그대로 전해온다.   
 이성호 작가 제공

 

예수는 말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우리는 지금 영성의 의미가 점점 희미해지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하기에 이성호 작가의 작품은 우리 영혼 깊은 곳에 닿아 더 뜨겁고 진하게 다가오는지도 모른다. 새해에는 그가 건져 올린 빛나는 ‘가톨릭 성지’ 작품들이 전국 각 교구의 많은 성당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강렬한 영성을 일깨우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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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림 2020-01-04 15:16:40
흑백사진이 더 무개가 있고 묵상하는 고뇌가 많습니다.
작가의 마음을 잘 표현한 기자님 보고싶습니다.

이옥선 2020-01-04 15:10:01
추자도 눈물의 십자가를 읽어며 한동안 가슴이 저렸습니다
기사를 통해 가톨릭 순교자의 숭고한 희생의 의미를 다시금 새겨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taetae 2020-01-02 22:21:32
다방면으로 능력을 발휘하시는 자신감 넘치는 모습 보기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