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목소리로 어르신들을 섬기는 시니어 가수 최문교 씨
뜨거운 목소리로 어르신들을 섬기는 시니어 가수 최문교 씨
  • 류영길 기자
  • 승인 2020.01.02 13:53
  •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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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자격증 가진 노래장이 아파트 경비원
"정성을 담아야지요" 틈만 나면 연습 또 연습
경산 효자손 요양원에서 정기적으로 노래 봉사하는 최문교 씨
요양시설에서 정기적으로 노래 봉사하는 최문교 씨

보슬비가 소리도 없이 이별 슬픈 부산정거장 / 잘 가세요 잘 있어요 눈물의 기적이 운다...

대구 방촌동의 한 요양시설에 울려 퍼진 추억의 노래. 둘러선 사회복지사와 봉사자들의 박수소리에 맞춰 어르신들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6.25 피난민의 애환이 담긴 이 노래는 메마른 어르신들의 가슴을 적시기에 충분했다. 노래를 부르는 이도 전쟁을 겪은 사람이라 그 목소리에 간절함이 배어났다.

올해 일흔 둘의 시니어 가수 최문교(대구 동구 율하동) 씨. 그는 자신의 재능을 십분 발휘하여 이웃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홀로 공연에 나서기도 하고, 색소폰 연주단이나 풍물패가 노인복지시설을 방문할 때 합류할 때가 많다. 그는 동네에서만 알아주는 무명가수지만 정성을 다하여 온몸으로 노래 부른다. 무아지경에서 노래하는 그의 모습은 보는 이들을 감동시킨다. 특히 외로운 요양원 어르신들은 그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경북 청도 매전이 고향인 그는 타고난 노래장이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소풍가면 단연 인기스타가 되었다. 초등학교 졸업식 때는 졸업생 대표로 ‘유정천리’를 불렀다.

“군대생활 할 때도 월남에 파병되었을 때도 노래 덕 많이 봤지요. 노래를 잘했다기 보다는 용기가 있었던 거지요. 훈련소 가서도 노래할 사람 할 때 뛰어 나가니 조교들과 친해져 얻어맞을 때도 남이 두 대 맞을 때 저는 한 대 맞고 그랬죠.”

최 어르신은 30대에 MBC 노래자랑에 나가 상도 탔고 한국연예협회로부터 가수 자격증도 취득했다. 처음엔 악보를 끌어안고 밤무대를 다녔다. ‘어부의 노래’를 부른 박양숙과 함께 나이트클럽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가수생활 하려면 돈이 많이 들어 이내 노래 부르는 직업을 포기하고 생계현장에 뛰어들었다. 쌍용양회, 유공(현SK) 등에서 33년간 일하다가 10여 년 전부터 직장생활을 모두 끝내고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진명실버홈, 효자손요양원, 참사랑요양원 등 대구 동구와 경북 경산 쪽으로 주로 다닌다. 해마다 반야월 연꽃사랑음악회 초청가수로도 불려가고 있다.

평생을 긍정적인 사고로 살아온 최문교 씨는 "노래 봉사가 건강 유지의 비결"이라고 말한다.
평생을 긍정적인 사고로 살아온 최문교 씨는 "노래 봉사가 건강 유지의 비결"이라고 말한다.

 

"내 건강을 위해서도 좋고 남을 위해서도 좋고 그래서 열심히 노래 부르는 거죠.” 그는 ‘불효자는 웁니다’, ‘이별의 부산정거장’, ‘신라의 달밤’ 등을 자주 부른다. 모두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노래들이다. 이미자의 ‘여자의 일생’ 주현미의 ‘정말 좋았네’도 즐겨 부른다.

그는 인생을 허비하지 않는 액티브시니어다. 고희를 넘겼지만 아직 일을 손에 놓을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여 다시 일터로 나가고 있다. 그는 집 근처 아파트의 경비원이다. 하는 일이 힘들지 않으냐고 묻자 “건강을 위해 일합니다. 집에 있으면 심심하고, 움직여야 소화가 되잖아요. 물론 용돈도 벌지만 건강이 우선이지요”라고 말했다.

그에게서 일은 노동이 아니라 삶의 원동력이다. 그래서 쉬는 날은 휴식하는 날이 아니라 노래로 재능기부를 하는 날이다.

“노래했을 때 의외로 반응이 좋고 노래가 생각만큼 잘 되면 제 기분이 좋아요. 그 맛으로 가는 거지, 돈을 생각하면 못해요.” 24시간 근무하고 그 이튿날 봉사의 길에 나서지만 피곤한 기색이 전혀 없다. 즐거운 마음으로 하니 그렇단다.

“움직이면 치매예방도 되고 본인한테 좋잖아요. 건강관리도 되고 여러 사람과 어울리면 고독감도 사라지지요.“

슬하의 2남1녀 모두 반듯한 직장을 잡았고 며느리는 교편을 잡고 있다. 집도 다 마련했다. 자식 걱정이 없으니 부인 챙기기에 전념할 수 있어 좋다고 한다. “제가 건강해야 마누라를 잘 부양할 수 있잖아요. 건강을 위해 즐겁게 살려고 애쓰는 편입니다.”

연습실에서 색소폰 동호인들과 함께 리허설을 하고 있는 모습
연습실에서 색소폰 동호인들과 함께 리허설을 하고 있는 최문교 어르신.

'효사랑 색소폰 뮤직동호회' 김해옥(66) 총무는 “최 어르신은 항상 모든 걸 긍정적으로 말씀하시고 항상 낙천적으로 사시는 것 같아요. 지금도 부인과 함께 영화나 공연 보러 가신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죠.”라며 존경의 마음을 표시했다.

“봉사활동도 성의 없이 하면 안 되죠.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관객들이 봤을 때 최선을 다한다는 걸 느끼게 해줘야죠.” 최 어르신은 틈만 나면 유튜브를 보며 노래 연습을 한다. 노래의 달인이지만 결코 자만하지 않고 연습실에 가서 가창연습을 하고 있다. “이미자도 신곡 하나 나오면 500번 이상 연습했다고 하듯이 저도 계속 연습해야 합니다.”

개인 노래방에서 연습에 몰두하고 있는 최 어르신
개인 노래방에서 연습에 몰두하고 있는 최 어르신

대구 반야월 시민공원 옆 광민색소폰교실에는 시니어들이 색소폰 연습에 여념이 없다. 그들 틈에 최 어르신도 있다. 거기에 개인 노래방을 설치하여 거의 매일 출근(?)하고 있다.

“노래 잘하고 인간성 좋고 가정적이고...” 연습실에서 만난 채창기(71) 씨는 최 어르신에 대한 칭찬이 자자하다. 이성길(65) 원장도 “최 선생님은 항상 즐겁게 사시고 봉사활동을 많이 해요. 진짜 자랑할 만합니다.”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