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하느님과 하나님
(41) 하느님과 하나님
  • 조신호 기자
  • 승인 2019.12.30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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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듯, 죽은 자의 정신은 산자의 기억 속에 남는다.
영화 '미션'의 포스터
영화 '미션'의 포스터

한국에는 가톨릭의 ‘하느님’과 개신교의 ‘하나님’이라는 두 가지 명사가 있다. 이러한 언어적 임의성에는 큰 문제가 없으나, 이것이 신에 대한 인식의 차이로 연결된다면 그렇지 않다. 종교를 삶의 선한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전락하는 모순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모순의 단면을 명확하게 보여 준 영화가 ‘미션’(The Mission,1986)이었다. 이 영화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남미 식민지 경계를 위해 체결되었던 마드리드 조약(1750년) 이후, 1758년 남미 이구아수 폭포 위쪽에 살고 있었던 과라니(Guarani)족에게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것이다. 영화의 포스터는 과라니 말로 ‘큰 물’ 혹은 ‘위대한 물’이라는 뜻의 ‘이구아수 폭포’ 사진이었고, 그 하단에 영문으로 된 다음과 같은 글이 있었다. “남아메리카 깊은 정글에 한 원주민 부족에게 서양의 문명을 가져온 두 사람. 몇 년 동안의 다툼(struggle) 끝에 이들은 원주민의 해방을 위해 전쟁을 벌이게 된다. 한 쪽은 기도의 힘을 믿었고, 다른 한 쪽은 무력의 위력을 믿었다.” 이것이 영화의 프롤로그(序言)이었다.

영화 ‘미션’의 첫 장면은 양국의 영토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현지에 파견된 알타미라노 주교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교황님의 (식민지) 영토 끝에서 발생한 문제는 해결됐습니다. 인디오들은 다시 방임 상태가 되어 스페인인과 포르투갈인의 노예가 될 것입니다. ... 교황님, 1758년, 지금 저는 아메리카 남쪽 라플라타의 아순시온이라는 마을, 커다란 ‘산미겔’ 선교회에서 도보로 2주 걸리는 곳에서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이 선교회는 (유럽의 제국주의) 정착민들로부터 인디오를 보호해 왔으나, 그 때문에 (제국주의 침략자들의) 공분을 사고 있습니다. 이곳 인디오들은 음악적 재능이 풍부하여 로마에서 연주되는 바이올린도 그들이 만든 것이 많습니다. ......” 영화를 보면, 주교의 중재는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엄청난 비극의 시작이었다.

영화의 마지막에 알타미라노 주교의 목소리가 이렇게 들려온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군주들은 이곳 가난한 자들의 천국을 원하지 않습니다. 이곳의 백인 정착민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가 남미에서 했던 일은 포르투갈 영역 확장 욕구를 만족 시키고 스페인에게는 해가 없다는 것을 주지시키며, 양국으로부터 교회의 권위를 보호받고, 교황을 안심시키며, 이 모든 사항이 만족하도록 예수회(Jesuit)와 협상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이 교회의 권위에 도전하고 있었기에 이곳의 예수회 선교사들에게 권위를 보여줌으로써, 유럽에서도 그 권위를 회복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나, 우리 중 누구도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원주민 인디언 입장에서는 더 좋았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마지막 문장에 영화 미션의 핵심을 읽을 수 있다.

원주민들이 보는 앞에서, 그들은 ‘반 인간 반 동물(짐승)’이지 인간이 아니라고 말했던 알타미라노 주교의 중재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양국의 군대가 다른 원주민까지 동원하여 과라니족과 그들을 보호 하던 예수회(Jesuit) 선교사들(missions)까지 처참하게 학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우리 인간이 하느님의 이름으로 행동하는 방식이다. 남미 침략자들은 기독교를 삶의 선한 목적이 아니라, 제국주의 탐욕의 도구로 삼았다. 영국을 중심으로 한 포악한 노예무역과 노예제도와 같이, 백인 침략자들의 하느님은 무자비한 폭력이었고, 그들에게 개종된 원주민들의 하느님은 속수무책으로 짓밟히며 학살되는 비참한 하느님에 불과했다. 주교의 중재는 수단화된 폭력적 하느님을 합리화 하는 연극에 불과했고, 그 결과는 원주민 학살이었다.

알타미라노 주교는 “우리가 세상을 이렇게 만들었다. 내가 이렇게 만들었다.”라고 고백했다. 그리고 “실제로 죽은 것은 나 자신이고, 산 자는 그들이다. 왜냐하면, 언제나 그렇듯, 죽은 자의 정신은 산자의 기억 속에 남기 때문이다”이라는 명대사를 남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