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방조제와 심포갯벌
새만금 방조제와 심포갯벌
  • 이상유 기자
  • 승인 2019.12.29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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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 방조제와 심포갯벌터를 찾아서
새만금 방조제의 모습.
새만금 방조제의 모습.

 

"중국에 만리장성이 있다면, 한국에는 바다의 만리장성이 있다.” 어느 외국인이 새만금 방조제의 모습을 보고 놀라서 한 말이다.

인간이 만든 세상에서 가장 긴 둑, 끈질긴 집념과 토목공사에 뛰어난 우리 민족의 저력은 19년에 걸쳐 무려 33.9km라는 방조제를 완성해 기네스북에 올려놓았다.

한 몸으로 출렁거리며 뛰어놀던 바다를 인간의 힘으로 생이별시킨 이 공사에는 셀 수도 없이 많은 흙모래와 돌망태와 장비와 무자비하고 놀라운 토목공법이 동원되었다. 바다는 그냥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바다와 바다가 다시는 손잡을 수도, 사랑할 수도 없게 만들어 버린 비정의 둑 위로 관광버스와 승용차의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가끔 자전거를 타고 휘파람을 불며 지나가는 젊은이들의 모습도 보인다. 휴게소마다 멋지게 단장해 놓은 조형물 앞에는 폼을 잡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이제는 물색마저 변해 버린 방조제 안쪽의 바다를 사람들은 손차양을 하고 바라보면서 거대한 국제적 신도시가 들어설 날을 상상하고 있다. 단군 이래 최대의 간척사업이라는 새만금 공사는 여의도 면적의 140배나 되는 새로운 땅덩어리를 만들어 대한민국의 지도를 다시 그린다고 한다.

잃어버린 버린 바다와 갯벌, 누구 하나 바다의 아픔을 달래 주는 사람은 없다. 지난날의 추억을 잊지 못하는 파도만이 밀려와 방조제의 가슴을 두드리며 잔잔하게 부서지고 있다.

방조제에 가로막혀 부서지고 있는 파도. 이상유 기자
방조제에 가로막혀 부서지고 있는 파도. 이상유 기자

2000년대 초반, 나는 여름철이 되면 멀리 서해안의 새만금 심포갯벌로 갯벌체험을 다녔다. 가까운 동해안은 파도가 너무 세어 갯벌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행정구역상으로 전북 김제시 진봉면에 속해 있는 심포 갯벌은 옛날부터 백합, 모시조개, 동죽 등 조개가 많이 나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또한, 게, 고둥, 갯지렁이를 비롯한 수많은 갯벌 생물들과 도요새, 물떼새, 갈매기 등 바닷새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생태계의 보고였다.

썰물 때가 되어 아득하게 펼쳐진 갯벌에 들어서면 수많은 칠게가 작은 구멍에서 기어 나와 먼 길 달려온 우리에게 거수경례라도 하듯이 앞발을 치켜들고 인사를 했다. 물이 빠진 긴 갯벌을 따라 들어가 아이들은 진흙탕 속에서 뒹굴며 갖가지 갯벌 생물들을 관찰하며 뛰어놀고 어른들은 넓은 갯벌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자연산 조개를 캐면서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호미나 갈고리로 갯벌을 파헤치면 쭉 쭉 물을 내뿜으며 모습을 드러내던 싱싱한 조개들의 몸짓은 얼마나 건강하고 활기에 넘쳤던가?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던 작은 게들의 행렬은 얼마나 귀여웠던가?

갯벌 주변의 동네 어민들은 갯벌을 바다의 현금지급기라 불렀다. 언제든지 돈을 만들 수 있는 넉넉한 곳간이었다. 캐내어도 캐내어도 조개의 생산량을 금방 원점으로 되돌려 놓는 갯벌의 생태 복원력은 어민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고 갯벌을 찾은 우리를 행복하게 했다. 바다의 선물은 넘치도록 풍성했다.

그렇게 활기 넘치고 평화롭던 심포 갯벌에 어느 날부터인가 바닷물이 밀려오지 않았다. 하루에도 두 번씩 수 만 년 동안 어김없이 밀려왔다 밀려가며 갯벌 생물들을 키워내던 바닷물이 새만금 방조제라는 거대한 인공 둑에 막혀 활동을 멈추어 버린 것이었다. 갯벌 생물들은 머리를 갸웃거리며 기다리고 또 기다렸지만 결국 바닷물은 밀려오지 않았고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은 숨을 헐떡이며 죽어가기 시작했다. 어민들은 허탈해하며 한숨을 쉬었고 우리의 갯벌 체험도 추억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2019년 늦가을, 십 수 년의 세월을 더듬어 심포 갯벌이 있던 곳을 찾았다. 심포항 입구에 들어서자 ‘새만금 바람길’이라는 낯선 안내판이 나를 맞이했다. 누군가 갯벌이 사라진 새만금 일대에 둘레길을 만들어 새로운 관광지로 만들어 보겠다고 아이디어를 낸 것 같았다. 그러나 공원 벤치 주변에는 잡풀들만 우거져 있었고 주차장은 텅 비어 한산했다.

갯벌에 기대어 살던 사람들은 얼마간의 보상을 받고 어깨를 늘어뜨린 채 떠나버린 지 오래였다. 동네 앞 항구에는 갈 곳을 잃어버린 낡은 고깃배 몇 척이 선창에 코를 꿴 채 정박해 있었고 주차장 위의 공터에는 생명을 다한 폐선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다시는 바닷물이 밀려오지 않는 갯벌 터는 거대한 담수호(淡水湖)로 변해 있었다.

갯벌 주위에 군락을 이루어 살던 칠면초, 퉁퉁마디 따위의 염생식물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고 이름 모를 잡풀들과 갈대들만 무더기로 우거져 있었다.

거대한 담수호(淡水湖)로 변해 버린 심포갯벌터. 이상유 기자
거대한 담수호(淡水湖)로 변해 버린 심포갯벌터. 이상유 기자
낡은 어선들의 모습이 쓸쓸해 보인다. 이상유 기자
낡은 어선들의 모습이 쓸쓸해 보인다. 이상유 기자
수명을 다한 폐선들이 공터에 널브러져 있다. 이상유 기자
갈곳을 잃어버린 어선들이 공터에 널브러져 있다. 이상유 기자

바다의 손길이 멈추어 버린 곳. 5천 년이라는 장구한 세월 동안 자연의 정성으로 다듬어 놓았던 생태계의 보고인 심포 갯벌은 불과 십 수 년의 짧은 기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있는 것을 없게 만들고 없는 것을 있게 만들겠다는 인간의 탐욕은 수많은 생명들을 빼앗아갔다.  

호수가 되어버린 갯벌 터의 허공에는 죽은 백합과 동죽과 칠게와 갯지렁이의 영혼들이 징징거리는 울음으로 떠돌며 나에게로 다가왔다. 생명의 끝이 있는 존재는 영혼으로 남아 모든 것을 기억한다.

바다가 사랑하던 많은 것들이 떠나버린 갯벌 터를 돌아 나오며 멀리 새만금 방조제와 그 너머에서 침묵하고 있는 바다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리고 차오르는 감정을 누르며 바다에게 물었다. 당신의 그 큰 힘으로 '쓰나미'라도 몇 개 몰고 와 저 비정의 둑을 무너뜨려 버리면 안 되겠느냐고. 그러나 큰 바다는 고개를 젓는다. 오랜 세월이 지나고 난 어느 날이 되면, 온갖 생명이 어울려 살아가던 이 땅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모두가 알게 될 것이라고. 자연의 순리를 거스른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도 깨닫게 될 것이라고...

생명에 끝이 없는 바다가 하는 말이 내 가슴속으로 들어왔다.

한 노인이 담수호로 변해 버린 심포 갯벌터에서 민물고기인 붕어를 낚고 있다. 이상유 기자
한 노인이 담수호로 변해 버린 심포 갯벌터에서 민물고기인 붕어를 낚고 있다. 이상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