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슨 철모 (39)
녹슨 철모 (39)
  • 시니어每日
  • 승인 2019.12.23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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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부대에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최전방과는 부대 부근의 지형지물부터 부대시설이나 편성이 많이 달라 낯설었다. 그에게는 전방의 '알 보병'이 체질에 꼭 맞았다. 그들과 야전에서 같이 뛰고 함께 굶주림과 고통을 참고 싸우는 단순한 삶, 그것이 진정한 군인의 길이라고 생각하였고 또 남자들의 삶이라고 생각하였다. 모순과 권모술수의 바깥세상, 타락하고 강자는 약자를 착취하고 약자는 강자에게 억지부리는 세상, 그 통에 중간치들만 죽어났다. 

태원은 입대 때 수행자로 출가하는 기분으로 들어왔고 전방 생활은 그래서 그의 적성에 꼭 맞는 것이었다. 군단은 물론 군대였지만 사회생활과 닮은 곳이 많았다. 군단은 전투 부대의 가장 높은 자리에 있다. 보통의 군단에는 세 개의 사단이 속해 있는데 11군단은 수도를 방위하는 부대라 전방의 세 개 사단과 서울의 한 개 사단을 합해 네 개의 전투사단을 지휘한다. 군단은 3성 장군이 지휘를 하고 2성 장군이 부군단장 그리고 참모장이 준장이다. 예하 부대로 헌병대, 통신대대와 포병사령부 그리고 공병여단, 기갑여단을 거느린 거대한 집단이다. 대령이 대장인 보안부대도 옆에 같이 주둔한다. 이런 고급스런 분위기 탓에 먼지 속에서 뒹구는 보병은 보지 못한다. 군대와 사회가 묘하게 섞여 있는 그런 곳이다. 그래서 태원은 적응하기 힘든 것 같았다.

 

처음 태원은 무심코 내가 있는 군단 야전병원으로 환자 후송을 왔다가 내 이름이 걸린 방을 보고 깜짝 놀라서 들어왔다.

"난 동명인가도 생각했어요. 형이 설마 여기 있을 줄은 몰랐네.” 

그는 굉장히 반가워했다.

그와 나는 중·고등학교와 대학까지 동문으로 긴 인연을 가진 사이다. 그러나 내가 그와 긴밀해진 것은 대학 들어와서부터였다. 지방 도시에서 서울로 올라와 같이 촌놈 노릇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던 것 같다. 그도 나와 같이 정신과를 하고 싶어했다. 내가 보기에도 훌륭한 자질을 갖추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인간관계나 철학이 유별나서 늘 걱정이었다. 반항적이고 빈정대고 남을 깔보고 이죽대는 태도는 대학병원에서는 자살행위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갖고 있는 그런 성향 탓에 정신과 입국은 허락되지 않았다. 그는 이상을 실현해보려고 애를 썼지만 내가 볼 때는 비현실적인 것들이 많았다. 그런 경우 그는 자신을 적응시키려는 것이 아니고 환경을 고치려 든다. 이런 탓에 그는 세상을 엄청나게 힘들게 사는 것 같았다. 그의 가슴 속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은 그를 좋아하게 된다. 하지만 그가 증오의 대상으로 삼는 사람들에게는 그 역시 증오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 전방 생활은 어땠어?" 

인사치레로 그에게 물었다.

그는 지난 1년 사이 전혀 다른 모습이 되어 있었다. 그의 눈은 맑게 빛나고 외모는 순수한 인간의 싱싱한 모습이었다. 보기가 좋았다.

"태원이, 너 많이 변했네?" 

나는 진심을 털어놓았다.

“맨날 점퍼 걸치고 도끼눈 하고 다니던 게 어제 같은데 정말 딴사람이 되었어.” 

좀 더 그의 마음을 내찌르며 말했다.

“형, 이것이 어쩌면 나의 본모습일지도 몰라. 아니 또 다른 나의 한 면이겠지.” 

심드렁하게 태원은 대답했다.

"학교 다닐 때는 누구였는데?" 

나는 흥미를 느끼며 다시 물었다.

"그것도 나의 한 모습일지 모르지요.” 

마치 진단받는 환자처럼 말을 받았다.

"왜 두 모습을 갖고 사니?" 

나도 모르게 환자를 상담하는 것처럼 질문을 계속하게 되었다.

"형은 나를 완전히 미친 놈 취급하네. 모두가 그렇게 사는 거 아니오? 형, 하긴 나 자신도 상대방에 따라 어느 모습으로 달라질까 궁금할 때가 많아요. 상대에 따라 확 돌변하는 내 모습이 특이하다고 할까 아니면 미친 놈이라고 해도 될 것 같아요."

그는 씩 웃으며 남의 이야기하듯 했다. 그의 말이 이해되긴 했지만, 여기 와서 또다시 옛날 말썽꾸러기 학생, 아니 군인으로 환원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잠깐 나의 머리를 스쳐 갔다.

"형, 제가 학교 다닐 때 무교동 술집에서 형에게 물어봤잖아요?" 

그게 무슨 소리인지 기억이 나지를 않았다.

"저의 ‘불안’에 관해 물었을 때 형이 그건 ‘분리불안’이라고 했잖아요?"

그제야 기억이 떠올랐다. 그에게 왜 서울로 학교를 왔느냐고 물었을 때 자신의 집을 떠나고 싶어서라고 했다. 그때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다 그가 국민학교에 입학했을 때 그의 어머니가 학교에 그를 데려다주고 집에 가면 울곤 했다고 말한 기억이 났다.

“그건 분리불안 때문이야. 겉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학교 공포증이지만 역동적인 해석을 하자면 엄마와 떨어지기를 두려워하는 분리불안이 근본적 병리라고 볼 수 있지.” 

그렇게 대답해준 것이 희미하게 기억났다.

"나중에 고학년이 되어서는 학년이 바뀌면 한 달쯤 애를 먹었어요. 지난 학년 동무들 생각 때문에 새로운 반 애들과 어울리기가 힘들었어요. 괜스레 고독하고 외로웠어요.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그 감정을 추스렸지요. 다행히 내가 공부를 잘하니까 친구들이 나를 보듬어 주어 그런 위기를 잘 넘길 수 있었어요.”

그가 다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형! 그런 현상도 결국 저의 무의식에 남아 있는 분리불안의 또 다른 형태라고 볼 수 있을까요?"

그가 질문했을 때 나 역시 그가 많은 독서를 한 덕에 심리학적 소질을 갖고 있는가 보다 생각하였다.

"그렇지. 어릴 때 입은 마음의 상처는 무의식 속에 들어앉아 일평생 인간의 감정과 사고에 영향을 끼치게 되는 거야. 우리는 의식밖에 느끼지 못하니까 자신의 사고나 행동을 무의식의 영향인 줄 모르고 의식적으로 설명하게 되지. 그러나 그것은 발상 자체가 잘못된 것이어서 결과적으로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이지. 너의 환경 변화에 따른 고독감이나 외로움은 해결되지 못한 분리불안의 영향일 가능성이 커.”

어쨌건 태원은 많이 바뀐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느라 애를 먹고 있는 눈치였다.

 

태원이 살고 있는 ‘응달 촌’은 큰길에서도 조금 더 걸어 들어가는 곳이었다. 큰길 너머 국민학교를 지나면 군인아파트가 있었다. 부대의 아침 통근버스는 그곳까지만 와서 장교들과 하사관들을 태우고는 떠났다. 물론 아침에 그리로 가서 통근차로 출근을 해도 되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려웠다. 군단에서 참모는 대령들이다. 그런 계급구조 탓에 군단의 장교들은 주된 계급이 중령, 소령들이고 위관장교는 몇 명 되지 않았다. 위관장교 중에서도 대위가 대부분이고 중위는 군의관과 군검찰관 둘, 군종에서 한두 명 그게 전부다. 다른 예하 부대에서 파견 나온 연락장교나 경비 중대 소대장을 제외하면 소위는 딱 하나 있었다. 그는 공병여단에서 파견 온 급수책임 장교인데 모두 그를 ‘막내’라고 불렀다. 그도 크게는 군단 소속이지만 실제는 예하 부대 소속이었다.

이런 구조 탓에 군단 위관급 장교들은 어려움이 많았다. 전방에서는 중위나 소위만 되어도 어른 대접을 받았는데 여기서는 아주 애 취급을 당하고 있었다. 지휘부 사무실에 근무하는 사병들조차 그들에겐 경례도 잘 하지 않았다. 부대 내 행사 때도 영관급 장교들은 모두 개인 화기로 권총을 지참하고 집합하는데 위관급들은 ‘칼빈 총’을 메고 참석했다. 뒤에서 보면 긴 총을 멘 장교들이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절도와 질서가 군인의 기본이라면 짧은 총 찬 장교들 사이에 긴 총 멘 장교가 서 있으니 이건 나락 논에 피 모양으로 남의 눈에 크게 거슬렸다. 또 본인들 스스로도 매우 자존심이 상했다. 같은 위관급이라도 병원이나 학교에 근무하면 개인 화기로 권총이 지급됐다. 그런 식으로 규정이 융통성 있게 운영되어야 하는데 군단에서는 유독 규정 운운하며 긴 총을 메게 했다. 하긴 위관이라도 법무관들에게는 권총을 주기도 하면서 유독 군의관에게는 일부러 규정 운운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침 통근버스를 타고 계급이 높은 사람들은 앞자리에 앉는 모양인데, 태원이 멋모르고 앞에 앉았다가 혼이 나곤 하였다. 또 보병 장교들은 일찍 출근했다. 군단장이 8시에 출근하니까 그들은 7시 30분까지 갔다. 자연히 버스도 그 시간에 맞춰 출발하기 때문에 태원은 일찍 가서 괜히 할 일도 없고 위생병들의 눈총만 받게 되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그는 시외버스 시간에 맞춰 출근하거나 아예 일찌감치 걸어서 가기도 하였다. 걸으면 참 좋았다. 주변의 산과 들도 아름다웠다. 그러나 더 좋은 것은 걷는다는 것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실타래 같은 생각들이 한동안 머릿속에 가득하였다가도 걷노라면 이윽고 그것들이 정화되어 바닥으로 가라앉기도 했다. 그리고 다음은 맑고 깨끗한 감정만이 마음 표면에 떠올랐다. 하지만 매일 바쁜 출근길에 그렇게 걸을 수만도 없고 높은 사람들의 출근 지프를 맞닥뜨리는 것이 별로 유쾌한 일이 되지 못하였다. 이래서 가장 좋은 것은 총은 권총으로 바꾸고 집도 아파트로 이사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