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슨 철모 (38)
녹슨 철모 (38)
  • 시니어每日
  • 승인 2019.12.16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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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부대 스피커에서 사이렌이 울렸다. 비상의 신호다. 의무대 회식은 중단되고 태원은 대대 C.P로 뛰어갔다. 방송에 전 부대원은 단독 군장으로 대기하라고 하였으니 본부에 모인 장교들은 전부 철모 차림이었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참모와 중대장들 앞에서 대대장이 비장한 목소리로 연설하듯 말을 시작하였다.

"내일 우리는 북괴와 전쟁 상태로 돌입할지도 모른다. 만약 전투가 벌어지면 바로 이 자리가 우리의 무덤이 된다.” 

태원은 그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싸워서 이기면 되지 죽자는 말인가 하고 속으로 되뇌고 있었다. 전방 G.O.P 부대는 전쟁이 발발하면 후방에서 교체 부대가 올 동안 무조건 24시간 제자리를 사수해야 한다. 죽든 살든 그건 그들의 운명이다.

"북괴는 항상 서해 5도가 놈들의 섬이라고 주장해왔던 것을 제군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놈들이 드디어 내일 행동으로 옮긴다는 거야. 내일 백령도 가는 우리 여객선을 그들의 영해 침범이라며 군함으로 막겠다는 거지. 우리 해군이 내일 그 여객선을 호위해서 백령도로 간다. 만약 놈들이 우리 여객선의 진로를 막거나 발포하면 해군은 놈들의 군함에 포격을 시작한다. 이와 동시에 우리 육군도 즉시 전쟁을 개시하도록 명령을 받았다. 전 휴전선의 우리 포병은 모든 포의 문을 열어 놓고 명령만 기다리고 있다.”

태원은 이것이 박정희의 ’반공 쇼‘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언뜻 스쳐 갔지만 더 이상 학생 때처럼 오래 의심은 않기로 하였다. 북쪽에서 행하는 이런 협박성 언론 보도를 여러 번 접했기 때문에 사실일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 육군이 철조망을 넘어 북진하게 될지 아니면 놈들이 우리 땅으로 내려올지 솔직히 알 수 없다. 우리 편제가 미군과 협동해서 전쟁하도록 되어 있다. 즉 우리 단독으로 전쟁을 벌였을 때는 솔직히 승패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장교들은 모두가 자원해서 군인이 된 사람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죽음은 우리가 선택한 것이다. 우리는 후방의 예비 부대가 올 때까지 24시간 이 지역을 사수해야 한다. 설사 우리가 승리를 하더라도 많은 병력의 손실이 예상된다.” 

회의 도중 눈치 없는 태원이 군의관은 자원입대가 아니고 징집당한 장교라고 한마디 거들었는데 모두 심각한 상황에 이상한 놈이라는 듯 태원을 바라보았다.

“이제 각 중대로 돌아간다. 공용화기 및 개인 무기를 철저히 점검하고 언제든지 철책선으로 돌진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 단, 사병들은 사생관이 아직 확립되어 있지 않으므로 귀관들은 그들이 겁을 먹지 않도록 조심해서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도록!"

대대장의 출사표는 비장하였고 많은 감흥을 주었다. 밤새 모든 대대 장병이 출전 준비를 하고 기다렸다. 그러나 아침이 되어도 출전 명령이 내려지지 않았고, 밝은 대낮이 되었는데도 무소식이다. 너무 오래 긴장한 탓인지 모두 졸리고 하품이 나왔고, 죽든지 살든지 가부간 결단이 빨리 내려지기를 기다렸다.

태원은 지난 겨울에 있었던 대대시험 때 생각이 났다. 준비를 그만치 하고도 무전기가 통하지 않았다. 차가 언덕에 올라가지 못하였다. 밥을 굶었다. 만약 준비가 없는 전투라면 어떻게 될까? 육군 규정에 부대 후퇴 시 위생병은 부상병을 두고 가서는 안 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어젯밤 의무대 회의 때 누가 남겠는가 물으니 아무도 스스로 남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만약 그런 경우가 된다면 태원은 자신이 남겠다고 내심 작정하고 공식기록에는 이용웅 병장이 남는 걸로 하였다. 이 병장은 아무도 지원자가 없자 마지 못해 자기가 남겠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부대에는 정적이 감돌았고 상부에서는 여전히 아무 지시가 없었다. 정오 라디오를 틀었다.

"어젯밤 인천을 출발한 우리 여객선 ‘비룡호’가 해군의 호위 속에 방금 백령도에 무사히 도착하였다고 합니다."

아나운서의 흥분된 목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전 부대에 함성이 울려 퍼졌다. 박수 소리와 만세 소리가 뒤엉켜 들려왔다. 병사들의 함성은 적에게 승리했다는 통쾌함과 그들이 죽을 사연이 없어졌다는 안도감으로 크고 길게 기지촌으로 울려 퍼져 나갔다. 잇달아 비상은 해제되었다. 자연 태원의 잔류 결심도 필요없게 된 것이다.

 

어느새 보리가 다 자랐다. 5월이 된 것이다. 군의관들의 정규 이동이 시작되었다. 태원이 새 근무지로 가기 위해 부대를 나섰다. 의무실 위생병은 물론이고 많은 보병들의 얼굴도 보였다. 그들은 태원에게 잘 가라고 차창 밖에서 손을 흔들거나 거수경례했다. 어떤 병사들은 “안녕히 가세요”라고 하며 풀쩍 풀쩍 뛰면서 큰소리를 지르기도 하였다. 다 정든 얼굴이다. 추억이 서린 얼굴들이다. 그러나 이제 이곳을 떠나간다. 

태원은 11군단 사령부로 발령이 났다. 그곳에 가서 다시 예하 부대로 발령이 날 것이다. 버스는 느릿느릿 시골길을 달렸다. 태원이 이 부대에 올 때는 사단 사령부에서 왔기 때문에 지금 가는 길은 그 반대편 길이다. 군단으로 가는 길은 서울 쪽이다. 황톳길을 얼마간 달리자 드디어 아스팔트 길이 나타났다. 처음 군대 생활을 시작한 곳. 그리고 병주와 사랑의 결실을 맺은 곳. 태원은 이 기지촌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남쪽으로 갈수록 기분이 좋아졌다. 

부대를 출발할 때 대충 군단 위치에 대해 설명 들었지만 무슨 소린지는 다 잊어버렸다. 단, 서울로 가다 통일로가 나오면 왼쪽으로 꺾어가다 두 번째 헌병 초소가 나오면 거기서 내려 안내를 다시 받으라는 이야기만 생각이 났다. 버스가 통일로로 들어섰다. 그리고 왼쪽으로 돌았다. 얼마 가지 않아 첫 번째 검문소가 보였다. 그렇다면 다음 검문소에 내리면 된다. 이윽고 통일로에서 의정부 쪽으로 난 삼거리에 두 번째 헌병 초소가 있었다. 차에서 내려 헌병 초소로 가다 보니 그 삼거리 한 켠에는 벽제 화장터의 흰 건물이 보였다. 사람이 죽으면 땅에 묻히기도 하고 혹은 태워 없어지기도 한다. 지금 화장터 굴뚝에서 피워 오르는 저 연기는 하늘로 승천하는 영혼의 모습일까.

 

나는 정신과 전문의를 마치는 그 해에 입대하였다. 즉 태원의 학교 선배이지만 군대는 그가 1년 선배가 된다. 나는 전문의여서 군 병원으로 바로 발령을 받게 되었다. 태원은 모교의 대학병원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자 바로 입대하였기 때문에 군대가 나보다 빨라진 것이다. 물론 다른 수련병원에 원서를 내볼 만도 한데 그는 굳이 전역 후에 다시 모교 대학병원에 도전하겠다며 전방으로 가 버렸다. 나는 그가 전방으로 떠날 때 염려가 되었다. 그는 대학병원 시험은커녕 지원도 못하고 갔다. 걸핏하면 자유를 외치는 그인지라 그가 미워하는 군부독재의 본거지인 군에 들어가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하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는 대학 때 지각이나 결석을 너무 많이 하여 그의 아버지가 학교로 호출된 적도 있다. 교수들도 그를 항상 반항아, 말썽꾸러기에 요주의 인물로 보고 있었다. 당시 나는 그의 아버지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태원은 국민학교에서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결석은 물론 지각도 한 번 한 적 없었고 아주 고분고분 말을 잘 듣는 학생이었다고 했다. 애가 서울에 올라와서 왜 이렇게 변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며 아버지는 고개를 숙였다.

내가 배치받아 간 후송병원이 나중에 알고 보니 11군단의 지원병원이었다. 따라서 11군단 중환자들은 우리 병원으로 후송 오게 되어 있었고 그런 관계로 나는 우연찮게 태원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그는 군단 의무실장으로 나는 군단 후송병원 정신과장으로 우리는 재회했다.

태원은 군단 의무실로 배정이 되면서 즉시 병주에게 빨리 이사 오라고 연락하였다. 그가 이렇게 서두른 까닭은 병주에 대한 그리움이 우선이었지만 한시라도 빨리 그 메마른 집에서 그녀를 구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 병주는 이사를 해왔다. 태원의 고향 집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공장 트럭에 이삿짐을 싣고 왔다. 미리 부대 인근 동네 민가에 방 한 칸을 구해두었다.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시골집은 마당만 휑하니 넓은데 이삿짐을 내리고 있으니 태원의 가슴에는 앞으로의 새 생활에 대한 희망이나 기쁨보다는 이상하게 설명할 수 없는 설움과 서글픔이 슬슬 차지하고 있었다. 이삿짐을 싣고 온 공장 직원들도 다 내려가고 의무실 위생병들도 부대로 돌아갔다. 둘은 방 안에 그냥 멍하니 앉아 있었다. 피곤해서 그런지 난생 처음 시작해보는 신혼살림이건만 예상보다 전혀 달콤하지도 가슴이 설레지도 않았다. 오랜만에 보는 병주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사라지고 그림자가 드리운 듯 어둡게 보였다. 너무 오래 집에 홀로 두었다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자신이 그토록 싫어했던 집안 분위기, 웃음이 없는 집안, 병주의 얼굴은 영락없는 태원의 집안 얼굴이 되어 나타난 것이다. 게다가 임신 탓에 부기까지 생겨서인지 분홍빛 뺨에 그 잘 웃던 그녀가 이제는 남처럼 낯설었다. 그녀의 아랫배도 꽤나 부풀어 있었다. 비가 더욱 세차게 쏟아지고 있었다. 황토로 된 마당에 튀어 오르는 빗방울들을 둘은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태원이 시골집에서 살림살이를 편 것은 처음이었다. 수도도 없고 우물 밖에 없다. 물론 목욕탕도 없고 집에 딸린 화장실도 없다. 마당에는 원시적 뒷간밖에 없다. 모기는 극성을 부렸다. 태원은 어린 시절 예쁜 각시를 만나 시골에서 평생을 단둘이 행복하게 사는 공상도 해본 적이 있지만 막상 살아보니 현실은 너무나 가혹하였다.

병주 역시 매우 힘들어하는 듯했다. 몸이 무거운 병주를 위해 태원은 출근 전에 우물물을 부엌 항아리에 하나 가득 채워 놓고 갔다. 생전 처음 우물물을 두레박으로 퍼 보니 생각보다 어려웠다. 두레박을 떨어뜨려 물을 가득 채우기도 힘든 일이지만 물은 퍼서 올리다 보면 흔들흔들하여 밖으로 반이나 쏟아져 나갔다. 태원은 자신의 그런 모습이 창피하였다. 물을 긷는 것도 남자로서 부끄러웠지만 물이 생각대로 잘 퍼지지 않는 것도 창피한 일이었다. 사랑의 결실이 이런 건가 하는 회의적인 생각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