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래불사춘"의 유래와 정치인들③
"춘래불사춘"의 유래와 정치인들③
  • 이원선 기자
  • 승인 2019.12.09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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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소군의 초상   출처: 위키백과

누군가에게는 평범하고 다들 가지는 소소한 행복들이 왜 나에게만은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릴까? 가을철 돌쇠가 따다주던 홍시가 입안에서 달달하여 고향 길을 부추긴다. 꿈결처럼 감미로운 길을 달려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 어머니는 맨발로 달려 나오고 곤방대로 엽연초를 피던 아버지가 뒷짐을 지고선 멋쩍은 듯 헛기침이다. 소매 끝에 절은 땀 냄새가 그리워 얼굴을 앙가슴에 묻어 눈물바람인데 으슬으슬 추위가 밀려온다.

가마꾼의 거친 숨소리가 연신 힘에 겹고 끝도 없는 길에서 야속한 가마는 쉼도 없이 건들거린다.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몸은 자꾸만 남쪽으로 기우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창졸지간 고국산천을 떠나고 보니 제대로 된 작별의 인사 없이 떠나는 몸이라 그런지 연신 부모님이 그립고 고향집이 눈에 밟혀 또 눈물바다다. 그 와중에 돌쇠에게 예쁘게 웃어주지 못해 미안하고 모연수란 궁중화가에게 사례를 못한 아쉬움이 얽인 실타래가 되어 가슴 가득히 펼쳐진다.

이제는 마음대로 죽지도 못하는 신세다. 처음에는 무명의 처녀가 까닭 없이 죽어 불효로 끝나는 줄로만 알았다. 그 하찮은 죽음이 어쩌다보니 삼족을 멸하는 죄가 되어 돌아오는 왕비의 신분이다. 괜한 트집리라도 잡히면 곧장 전쟁인 것이다. 수많은 목숨이 자신의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달린 것이다. 그렇다고 외로움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일점 피붙이라도 있었으면, 그도 아니면 말동무라도 한명 있었으며...! “에이 이것도 인형이라고!”땅바닥에 내동이 쳤던 목각인형, 돌쇠가 서툰 솜씨나마 정성으로 깎아준 목각인형이라도 가지고 올걸! 그마저도 행복에 겹다면 파리똥이 덕지덕지 붙고 쇠똥 냄새가 찐득한 고향집 쇠말뚝이라도 뽑아 옆에다 둘걸...!

가녀린 한 여인이 정치인들의 농간에 놀아나 사고무친의 타관 땅에서 쓸쓸한 인생길을 다독이자니 예나 지금이나 자발없이 풀어지는 것이 눈물보따리다.

“마마 왜 우세요!”

“응 눈에 티가 들어 갔나봐!”

시립한 시녀들 중 한명이 나서서 ‘호호’불어 주겠다는 것을 손사래로 만류할 적에 눈길은 자연 남쪽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너희들은 여기서 잠시 기다려라!”

사뿐사뿐 물찬 제비걸음으로 가파른 언덕을 오른다. 시립한 시녀들의 눈에 그 모양새가 수호지의 대종다리를 빌은 듯 펄펄 날아 보인다. “얼마나 고국산천이 그리웠으면 저러실까?” 시녀들조차 안타가운 마음에 눈물을 훔치느라 고개를 들지 못한다.

왕소군이 오랑캐 땅으로 시집 온지도 벌써 몇 년, 그 몇 년 만 처음으로 봄 마중을 나오다보니 생각나는 것은 고향땅에 두고 온 일가친척들이다. 부모님은 무고하신지? 돌쇠도 이제는 어엿한 아버지가 되었겠지? 여우도 죽을 때면 머리를 고향땅으로 둔다는데...! 여우보단 못한 신세란 생각에 밤이면 밤마다 얼마나 그렸던 고향인가? 어젯밤 꿈에는 미루나무꼭대기에 가오리연이 걸렸었는데...!

중천으로 포물선을 그리는 햇살을 다잡이 높은 언덕에 오른 왕소군이 까치발로 한껏 발돋움하여 남녘을 넘어다보지만 몇 점 흰 구름만 둥실거린다. 기린이고 학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가오리연의 꼬리라도 보았으면...!”하늘을 꽤 뚫을 듯 아득한 미루나무꼭대기에 걸린 가오리연이기에 어쩌면 보일 법도 했다. 아쉬운 마음에 왕비란 체면에도 불구 폴짝 뛰어보지만 여전히 산등성이만 아스라이 눈에 가물가물하다. 쏴한 마음에 털모자를 깊숙하게 눌러 써보지만 가래톳이 불거진 목덜미만 한층 시리다.

잔망스런 시녀들의 호들갑에 못이기는 척 따라나섰지만 여전히 오랑캐 땅의 봄은 멀어 보여 바람결은 왜 이다지도 차가운지...! 말라비틀어진 풀 뭉치가 바람에 떠밀려 지평선을 향해가는 모습이 흡사 자신을 보는 듯하고 가슴 아래론 얼음이 얼어 오는 듯 차갑다. 이내 처량한 신세를 한탄하며 시조 한수를 읊는다.

胡地無花草 호지무화초 : 오랑캐 땅에는 꽃과 풀이 없어

春來不似春 춘래불사춘 : 봄은 왔지만 봄 같지가 않다.

‘춘래불사춘’이란 정치인들이 자주 쓰는 단어로 대대적인 개편이라고 호들갑을 떨 때면 개뼈다귀처럼 하찮은 문장이 되어 등장한다. 철면피를 한 듯 부끄러움을 모르는 인간들의 집단이다. 새로운 피를 수혈하고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호언장담이지만 그 끝은 언제나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 태산이 큰 소리를 내며 흔들리고 뒤를 이어 쥐 한 마리가 태어남)로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