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길과 노자의 길
공자의 길과 노자의 길
  • 강효금 기자
  • 승인 2019.02.27 18:0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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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가 말한 자연의 의미

노자는 춘추시대의 사상가로 5,000자로 된 <도덕경>이라는 책 한 권만을 남겨두고 홀연히 사라진 인물이다. 노자는 이 책에서 자연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자연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풀과 나무 같은 그런 자연이 아니다. 그러면 노자가 말한 자연은 무엇일까? 그는 인간을 비롯한 만물의 ‘자발적 본성’이 잘 실현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무위(無爲)를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보았다. 모성적이며 부드럽고, 순응적이며 수동적인 삶이다.

노자가 말한 물처럼, 어린아이처럼, 통나무로 비유되는 삶은 어떤 것일까? 대지(大地)를 생각해 보자. 땅은 스스로 무엇을 싹 틔우려 하지 않는다. 단지 내어주기만 할 뿐이다. 그 ‘비움’ 위에서 나무는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씨앗은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만물은 고유한 바탕을 지니고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로 무엇을 인위적으로 더하거나 가르치려 하지 않고, 스스로 가진 본성을 꽃피우도록 지켜보고 기다려주는 것이 노자가 말하는 삶의 방식이다. ‘놔둠’으로 인해 오히려 성장하게 하고, ‘비움’으로 인해 생명을 꽃피우게 하는 것이다. 노자는 오늘 우리에게 말한다.

“제발 내버려 두시오.”

‘놔둠’이야말로 스스로를 찾아가는 가장 빠른 지름길인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속도와 결과로만 얘기되어지는 세상에서, 노자의 ‘자연’은 새롭고 매력적인 의미로 다가온다.

◆공자, <주례(周禮)>에서 답을 찾다.

‘학문’을 만든 사람은 누구일까? 학문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분야를 체계적으로 배워서 익힘 또는 그런 지식’이다. 공자는 가장 이상적인 삶의 틀을 주공(周公)에게서 찾았다. 시대가 이렇게 어지러운 것은 <주례(周禮)>가 무너졌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사랑의 의미를 지닌 인(仁)과 예(禮)를 확립하는 것이 이상적인 형태라 생각했다. 그에게 문화(文化)는 인과 예를 바탕으로 삶의 규범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말한 예(禮)는 견고해서 거스를 수 없는 그런 형태는 아니었다. 그가 말한 규범은 탄력적으로 운용 가능한 것이었고, 때로는 유연하게 상황에 맞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모든 사람을 옥죄기보다, 지배층에게 좀 더 높은 윤리를 강조하고 그럼으로써 이상적인 국가를 건설하는 것. 그것이 공자가 말한 문화였고, 그 문화는 ‘교육’에 의해 무늬를 아로새겨 나가는 것이었다.

노자가 ‘놔둠’, ‘비움’의 삶을 이야기한다면, 공자는 ‘채움’으로 인해 더 인간다워짐을 이야기한다. 노자는 품어주고 기다리는 ‘어머니의 사랑’을 이야기한다면, 공자는 조금 더 엄격한 ‘아버지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산은 어디를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모양이 달라진다. 공자는 곧게 서서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면, 노자는 측면에서, 위에서, 아래에서 바라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삶을 우리는 어떤 방향에서 바라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