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의 창] 다음은 우리다
[인문의 창] 다음은 우리다
  • 장기성 기자
  • 승인 2019.12.03 13:32
  •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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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은 악(惡)한 사람들의 거친 아우성이 아니라, 선(善)한 사람들의 소름끼치는 침묵'이란 지적이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도 큰 반향과 울림을 준다
마르틴 니묄러(1892-1984)는 독일의 루터교 목사이자 반나치 운동가이다.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라는 글을 쓴 것으로 유명하다. 위키백과
마르틴 니묄러(1892-1984)는 독일의 루터교 목사이자 반나치 운동가이다.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라는 글을 쓴 것으로 유명하다. 위키백과

독일 나치치하에서 파시즘을 반대하며 고백교회( 告白敎會) 운동을 이끌었던 마르틴 니묄러(Martin Niemöller) 목사의 이야기다. 고백교회는 1934년 히틀러정권을 반대하며 설립된 독일 개신교회를 말하는데, 예수만을 복종의 대상으로 삼을 뿐 히틀러에 대해서는 불복종을 선언한 바 있다.

한때 그는 게르만 민족의 영광을 외치던 히틀러에게 열광적 지지를 보낸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었으나, 나치가 침략전쟁을 벌이고 유대인 학살을 자행하는 것을 목격한 뒤부터, 반나치 운동의 독일 성직자그룹의 리더가 되었다. 하지만 니묄러와는 달리, 대부분 독일의 성직자들은 나치의 위협에 굴복했다.

칸트와 헤겔을 낳은 철학의 본고장 독일이, 바흐와 베토벤을 낳은 음악의 본고장 독일이 나치의 만행에 눈을 감은 것이다. 하지만 그는 독일 전국을 돌며 반나치 공개설교를 하다가, 마침내 1937년 체포되어 재판을 받게 된다. 첫 재판에서 그는 벌금과 함께 7개월 형을 선고받았으며 공판 기간이 이미 7개월을 넘겼기 때문에 선고가 내려지자마자 석방된다.

하지만 그에게 내려진 선고가 너무 가볍다고 여긴 나치 당국은 그를 더 무자비하게 탄압하기로 결심하고, 석방과 동시에 다시 체포하였다. 1938년부터 1945년까지는 다하우의 강제 노동수용소에서 보내게 된다. 1945년에는 다시 티롤의 감옥으로 이감되었다가, 2차 대전이 끝날 무렵 연합군에 의해 구출된 바 있다.

그의 주체적 사상은 평화와 사회정의였는데, 그가 쓴 것으로 알려진 아래의 ‘시(詩)’는 세계 여러 나라 교과서에 실리면서 널리 퍼져 귀감이 되고 있다. 원래 제목 없이 세상을 떠돌다가, 요즈음은 ‘그들이 처음 왔을 때’ 혹은 ‘다음은 우리다’ 등과 같은 제목으로 통일되어 가고 있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잡아들였을 때,

나는 침묵을 지켰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잡아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을 지켰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을 잡아들였을 때,

나는 저항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유대인들을 잡아들였을 때,

나는 침묵을 지켰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나를 잡으러 왔을 때,

나를 위해 저항해 줄 사람이

더 이상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 시가 말해주듯 독일의 지식인뿐 아니라 일반 국민 대부분은 나치의 만행에 대해 침묵했다. 단지 처음엔 유대인이 별다른 이유 없이 사회에서 제거되는 것을 팔짱을 끼고 구경만 했고, 다음엔 장애인이, 정신질환자가, 정치적 반대파가, 노동자가, 성직자가, 대학생들이 제거되는 것을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그러다 자신의 차례가 되자, 혼자밖에 남지 않은 것을 깨달은 것이다.

나에게 해당되는 일이 아니라고, 오직 방관으로 처신하는 이들의 침묵은 비열하고 비겁하기까지 하다. 이런 이기적이며 부끄러운 침묵이 급기야 자신을 향하게 된다는 간결한 시(詩)다.

짧지 않은 세월을 살아오면서, 이 시는 늘 나를 되돌아보게 한다. 정의롭지 못한 것을 알면서도, 나와는 상관없으니 그저 방관하고 눈을 감은 적도 있으니 말이다. 세상은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이 아니라, 악을 보고도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사람들 때문에 마침내 그 사회는 퇴보할 수밖에 없다.

침례교 목사이자 미국 흑인 인권운동을 주도했고, 비폭력을 주장했던 ‘마르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이 니묄러와 닮아있다. 1964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으며, 1963년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연설에서 인종차별의 철폐와 인종 간의 공존을 호소했던 사람이다. 그는 1969년 극우파 백인 제임스 얼 레이(James Earl Ray)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그가 남긴 다음의 짧은 글귀는 우리의 부끄러운 침묵과 무관심에 일침을 가한다.

 

“역사는 이렇게 기록할 것이다.

이 사회적 전환기의 최대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거친 아우성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끼치는 침묵이었다고…”

 

기원전에 플라톤도 정치에 무관심한 것에 대해 가장 큰 벌은, 당신보다 저급한 자들에 의해 급기야 지배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우리 사회의 최대 비극은 악(惡)한 사람들의 거친 아우성이 아니라, 선(善)한 사람들의 소름끼치는 침묵이란 지적은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큰 반성과 울림을 주고 있다. 왜 사는지 보다,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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