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과 세계기록유산이 함께 있는 합천 해인사②
세계문화유산과 세계기록유산이 함께 있는 합천 해인사②
  • 장희자 기자
  • 승인 2019.12.03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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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축대 위에 솟은 대적광전은 해인사의 중심법당으로 비로자나불을 본존불로 모시고 있다.

극락전은 독립된 산내 암자로서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쳤으며, 1965년에 자운스님께서 회주가 되어 건물을 완전히 해체하여 지금의 선원 자리에 중수하였고, 그 뒤에 다시 1973년에 봉주화상이 주지로 있을 때 대장경판전을 신축하기 위하여 건물을 지금의 자리인 100자 아래 지점에 새로이 옮겨 세워 지금에 이르고 있다. 율원으로 쓰이는 한편 한주 스님들의 거처로도 사용되고 있다.

대적광전 좌측에 있는 스님들의 참선 수행공간인 궁현당

관음전(觀音殿)은 심검당(尋劍堂)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내부에는 목조관음보살상이 봉안되어 있다. 크기는 3동 80칸으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다. 현재 건물은 1908년 회광(晦光)이 천상궁(千尙宮)의 시주로 중건하였다. 현재 강원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약 100여 명의 스님들이 경전을 연마하고 있다. 나한전이라고도 불리는 응진전은 1488년(성종 19) 학조대사가 창건하여 역대선사의 영정(影幀)을 봉안하였던 곳이다. 현재 건물은 1817년 성안대사가 중건한 것이다. 처음에는 역대 선사의 영정만을 봉안했는데, 소조(塑造) 석가여래와 1918년에 판전 서재(西齋)에서 옮겨온 16나한상이 봉안되어 있다.

관음전은 대적광전 앞우측에 있으며 묵조관음보살상이 모셔져 있고, 현재 강원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약 100여 명의 스님들이 경전을 연마하고 있다.

일명 조사전이라고도 불리는 해행당(解行堂)은 1817년에 제월선사가 퇴설당을 중창할 때 함께 중창하고 수선사라는 편액을 내걸었다. 그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처음에는 선원으로 사용되었는데, 이회광이 주지로 있을 때 선객들이 드세다 하여 수선사를 폐하고 조사전이라고 이름을 바꾸면서 개산조 이하 역대 고승의 영정을 모셔 왔다. 1967년 목조 희랑조사상을 보장전(寶藏殿)으로 사용하는 구광루로 옮기고 이듬해에 해인총림을 설치하여 영정을 모두 경학원에 봉안했다. 상선원으로 사용해 오다가, 현재는 방장 부속실로 사용하고 있다.

대적광전 우측에 있으며 저승에 간 이들의 넋을 제도하는 곳으로 49제를 비롯한 제의들이 행해지는곳

퇴설당을 처음 창건한 시기는 알 수 없다. 다만 1817년에 불에 모두 타 버리자 제월대사가 중창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다시 1965년에 근담화상이 해체하여 보수하였다. 퇴설당은 최근까지 상선원으로 사용되었는데, 특히 1899년에 경허 대선사가 이곳에 주석하면서 동수정혜결사를 실천한 장소였던 점에서 역사적인 수행정신을 간직하고 있는 건물로서의 의미가 깊다. 선원이 지금의 자리로 이전됨에 따라 현재는 총림 방장실로 사용하고 있다.

처음에는역대 선사의 영정만 봉안하다가, 소조 석가여래와 16나한상을 함께 봉안하고 있다.

궁현당의 창건년도는 확실히 알 수 없고 몇 차례의 중창과 중수를 거쳐 현재의 건물은 1988년에 완전 복원된 건물로서 해인사 승가대학(강원)의 교사(校舍)로 사용되고 있다. 선불장(選佛場)이라 불리기도 한다. 구광루는 1818년 감사(監司) 김이재(金履載)의 주선으로 건립되었다. 크기는 67평으로 본래는 재식시(齋式時) 법요(法要)를 집행하던 곳이었으나, 현재는 사중의 유물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동쪽 한칸은 종고루(鐘鼓樓)로 사용되고 있다.

2007년 11월 24일 낙성식때 노무현대통령내외가 참가하였으며, 국내 최고의 쌍둥이 비로자나불을 모시고 있다.

경학원은 경홍전(景洪殿)이라고도 하며 크기는 34칸이다. 1892년 민형탁(閔炯托)의 뜻에 의하여 범운화상이 건립하였다. 본디 왕, 왕후, 태자의 만수무강을 비는 삼전위축소(三殿爲祝所)로 건립되었다. 그 뒤에 1946년에 이르러 환경스님이 주지로 있을 때 손수 경학원이라고 글씨를 써서 건물의 이름을 바꾸었고, 1968년에 지월화상이 중수하여 이듬해부터는 해행당에 봉안되어 있던 역대 고승들의 영정을 옮겨 모셨다가, 1975년부터 승가대학의 도서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대적광전애서 바라본 구광루 전경

선열당은 종래에 하선원으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노전실과 부방장실과 영정 안치실로 쓰이고 있다. 특별히 노전실은 응향각이라고도 하는데 응향각은 향을 사른다는 뜻이고 노전은 의식을 집전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사운당의 크기는 146평으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며, 1490년 설호대사가 중건하였다. 그 후 몇 차례 중수되었으나 현재의 건물은 1984년에 중수된 것으로 지금은 종무소임자들의 방사(房舍)로 사용되고 있다.

대적광전 건물 우측 뒷편에서 바라본 구광루 뒷편으로 매화산줄기가 펼쳐저 있다.

해탈문의 창건연대는 미상이며 1817년 중건하였고, 1899년 범운대사가, 1940년 사중에서 중수하였다. 봉황문은 1817년 건립하였으며, 사천왕탱(四天王幀)이 안치되어 있다. 일주문은 1940년에 건립되었다.

대적광전 뒷편에서 팔만대장경이 보관되어 있는 장경판전으로 올라가는 계단

이 밖에 해인사의 성보(聖寶)로는 합천 해인사 길상탑(보물 제1242호), 해인사 삼층석탑(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54호), 합천 해인사 홍제암 사명대사탑 및 석장비(보물 제1301호), 해인사 석등(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55호), 해인사 동종(보물 제1253호)과 같은 지정문화재와 오백나한도(五百羅漢圖)·금은자사경(金銀字寫經)·세조영정(世祖影幀) 등이 있다.

팔만대장경을 보간하고 있는 장경판전은 총 4동으로 대장경 판각이 보관되어 있는 수다라장과 법보전이 마주보고 있고 좌우에 동서 사간전이 배치되어 있다.

해인사를 도량으로 삼고 머물렀던 고승들 가운데 불교사를 통하여 뚜렷한 위치를 차지하였던 이들로는 사명대사(四溟大師)·선수(善修)·희언(熙彦)·각성(覺性) 등이 있다. 그리고 사상적인 맥을 따질 때, 이 절이 화엄사찰이므로 의상대사를 비롯하여 신림·희랑 등 신라시대의 화엄의 대가들과도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고려시대에 와서는 의천(義天)·경남(敬南) 등이 있고, 조선시대에는 학조·체정(體淨)·유기(有璣)·유일(有一)·상언(尙彦)·유안(油安)·성여(性如) 등 유명한 승려들이 이 절에 머물렀다. 또한, 역대 명인들과도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것이 다른 사찰들에 비하여 두드러진 점이다.

대장경 판각이 보관되어 있는 남쪽건물을 수다라장, 북쪽건물을 법보전이라고 한다.

말년에 가야산에 들어와 생애를 마친 최치원(崔致遠), 대장경 조성에 전설적인 이야기를 남긴 이거인(李居仁), 김정희(金正喜), 그리고 홍길동으로 알려져 있는 정인홍(鄭仁弘) 등은 모두 이 절과 떼어 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다.

해인사 원주가 거주하는 공간인 정수당(正修堂)

산내 암자 중 유서가 깊거나 규모가 큰 것은 신라왕실의 원찰(願刹)로 전해지는 원당암(願堂庵)을 비롯하여, 고불암(古佛庵)·고운암(孤雲庵)·금강암(金剛庵)·길상암(吉祥庵)·백련암(白蓮庵)·보현암(普賢庵)·지족암(知足庵)·희랑대(希朗臺)·국일암(國一庵)·약수암(藥水庵)·용탑암(龍塔庵)·삼선암(三仙庵)·금선암(金仙庵)·청량사(淸凉寺)·홍제암(弘濟庵)이 있다.

원주실과 주변에 있는 스님들이 거주하는 공간인 선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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