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필드의 천사’ 행복플러스봉사클럽 김영숙 코치
‘그린필드의 천사’ 행복플러스봉사클럽 김영숙 코치
  • 류영길 기자
  • 승인 2019.11.19 12: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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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크골프를 봉사활동에 접목, 독거어르신에게 희망 줘
연맹 사무장 겸임, 600여 초심자들에게 파크골프 전수
2019 자원봉사 우수사례에 선정, 복지부 장관상 수상

대구노인회 행복플러스봉사클럽 코치이자 대구파크골프 시니어연맹 사무장인 김영숙 씨. 오늘도 그는 강창파크골프장에 서 있다.     류영길 기자
대구노인회 행복플러스봉사클럽 코치이자 대구파크골프 시니어연맹 사무장인 김영숙 씨. 오늘도 그는 강창파크골프장에 서 있다. 류영길 기자

“세상에 이런 데도 있구나 싶을 정도였어요. 그때부터 아침에 눈만 뜨면 자동으로 여기 나오게 됐죠.” 지난 16일, 대구 강창파크골프장에서 만난 서신자(75) 어르신은 자신보다 많이 젊은 한 여인을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다. “자식들보다 더 챙기고 더 관심 가져 주니 누가 보고는 제 딸인 줄 알았대요.”

서 어르신이 지칭한 사람은 누구일까? 파크골프를 통해 독거어르신들을 케어하고 있는 대한노인회 대구시연합회(회장 이장기ㆍ이하 대구노인회) 행복플러스봉사클럽의 김영숙(62) 코치가 바로 그다. 허윤범 회장이 이끌어가고 있는 대구파크골프 시니어연맹의 사무장 직책도 맡고 있다.

그가 파크골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3년 전의 일이다. 직장생활하면서 틈틈이 봉사활동을 했다. 요양원을 방문하기도 하고 대구노인회 행사에도 참여했다. 유달리 적극적이고 활동적이던 그는 당시 대구노인회 사무처장이었던 허윤범 회장의 눈에 띄었다.

그때 허 회장은 파크골프가 노인을 위한 최적의 운동이라 생각하고 파크골프를 근간으로 하는 ‘어르신 건강천국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었다. 이를 실행하기 위해 어르신들에게 파크골프와 그라운드골프를 가르칠 조력자가 필요했다. 그러던 차에 김 사무장을 만난 것이다.

파크골프에 대해 문외한이었지만 파크골프가 어르신들에게 도움이 되는 운동이라고 판단한 김 사무장은 허 회장의 요청을 받아들여 파크골프 봉사자 교육을 받았다. 지도자 자격증은 물론 강사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김 사무장은 파크골프와 칩거어르신을 연계한 봉사활동에 마음이 꽂히기 시작했다. 돈 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봉사하는 것이 더 보람될 것이란 판단 아래 직장일도 그만두었다.

파크골프 초심자들에게 티샷 방법을 가르치고 있는 김 사무장. 행복플러스봉사클럽 제공
파크골프 초심자들에게 티샷 방법을 가르치고 있는 김 사무장. 행복플러스봉사클럽 제공

허 회장을 따라 현풍, 서재 등 대구 시내 이곳 저곳 파크골프장으로 옮겨가며 어르신들에게 파크골프를 가르쳤다. 그러다가 허회장과 함꼐 황무지 같은 강창교 밑에 새롭고 아담한 18홀 파크골프장을 달성군의 도움으로 개척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독거어르신들을 모실 차례가 되었다. 파크골프 동호인들 중에서 뜻을 같이할 봉사자들을 찾았다. 15명의 봉사자가 모였다. 이것이 2017년에 태동한 대구노인회 소속 ‘행복플러스 봉사클럽’이다.

외로움이 우울증으로 변하고 우울증이 죽음으로 몰아갈지도 모르는 독거노인들. 이들에게 접근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김영숙 코치와 행복플러스 봉사클럽 회원들은 케어 대상자를 찾아 문을 두드렸지만 어르신들은 금방 마음의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봉사자들은 먼저 어르신들의 말동무가 되어 주기로 했다. 그 다음 어르신들이 집밖으로 나오게 하고, 그런 후 친구를 만들어주고 파크골프나 그라운드골프를 가르쳐 주기로 했다.

봉사자들의 끈질긴 정성에 어르신들의 마음이 녹기 시작했다. 인간관계를 포기한 채 살아가던 어르신들이 바깥세상으로 나왔다. 어두운 방에만 틀어박혀 있던 어르신들이 찬란한 그린필드에서 새 삶을 누리게 되었다. 아무 대화도 없이 외로운 나날을 보내던 어르신들에게 운동을 가르쳐, 갈 곳이 있고 만날 사람이 있도록 만들어주는 행복플러스봉사클럽의 목표는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K어르신(77)은 부인의 간호를 받으며 생활하던 중 갑자기 부인이 세상을 떠났다. 실의에 빠져 있던 K어르신을 봉사자들이 찾아갔다. 말벗이 되어주고 함께 식사하며 파크골프도 권했다. 운동에 소질이 없다며 극구 거부하던 어르신이 요즘은 파크골프에 흠뻑 빠져 매일 구장으로 나온다. 서울에 사는 아들이 모셔가겠다고 해도 마다하고 새로운 친구들과 어울려 웃으면서 지내고 있다.

S어르신(73)은 딸이 외국으로 출가한 후 홀로 어렵게 살아가고 있었다. 행복플러스봉사클럽 회원들이 찾아가 친구가 되어 주었다. 선한 봉사자들 덕택에 이제는 운동도 즐기며 신바람 나는 생활을 하고 있다.

파크골프를 통해 외로운 어르신들에게 새 삶을 드리는 행복플러스봉사클럽 회원들.      행복플러스봉사클럽 제공
파크골프를 통해 외로운 어르신들에게 새 삶을 찾아주는 행복플러스봉사클럽 회원들. 행복플러스봉사클럽 제공

사실상 파크골프는 그래도 좀 잘나간다는 사람들의 운동이다. 누구나 자신 있게 선뜻 필드에 나설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칩거노인이 집을 박차고 나와 잘난 사람들 틈에서 골프채를 휘두른다는 것은 기이하고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운동과 봉사활동을 절묘하게 접목시킨 허 회장과 김 코치의 전략이 적중한 것이다.

행복플러스클럽 봉사활동으로 나날이 행복에 젖어있다는 '코치 김영숙'. 강창파크골프장을 찾는 모든 파크골프 초심자들을 미소와 친절로 대해 주는 '사무장 김영숙'. 두 직책 다 무임 봉사다. 그런데도 늘 기쁨으로 이 일들을 거뜬히 감당해내는 그의 봉사정신은 어디에서 나온 걸까?

그는 경남 양산에서 태어났다. 고등교육을 받은 아버지는 이웃 사람들이 행정적인 절차나 법적인 문제로 어려워할 때 서류를 작성해 주는 등 친절하게 도와주고 동네 큰일에도 늘 앞장을 섰다.

어머니는 새벽마다 맷돌로 두부를 만들어 자전거에 싣고는 아침 일찍 통도사로 향했다. 두부를 납품하고는 하루 종일 절에서 온갖 궂은 일 다해주고 떡과 과자 등 사찰음식을 얻어 와서는 동네 어르신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어린 김 사무장은 이런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자랐다.

그는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부터 새벽 2시에 일어나 어머니를 도왔다. 어머니가 돌리는 맷돌에 콩을 한 숟가락씩 넣어주는 일을 했다. 일곱 살에 부엌에 들어가 밥상을 차려나올 정도로 세상 살아가는 능력을 빨리 익혔다. 그 후 가족들이 부곡으로 이사와 큰 마트를 경영할 때도 그는 여장부처럼 일했다.

안타깝게도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6남 1녀의 맏이인 김 사무장은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하여 여섯 남동생들을 위해 거친 일들을 해야만 했다. 아버지를 닮아 동네 행사 때면 약방감초처럼 불리어 다녔다.

그는 남자처럼 강인하게 성장했다. 어머니 도와주랴 동생들 돌보랴 억척같이 일하며 살아왔다. 화장을 하거나 예쁜 옷을 입는 건 그에게 사치였다.

대구로 나와 직장생활을 했다. 타향에서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복지관 민요교실에 등록했다. 일하면서 배운 민요와 풍물을 요양원과 노인회 행사장을 돌며 어르신들 앞에서 선보였다. 그러다 대구노인회 봉사활동 프로그램 중 하나인 파크골프의 세계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궁산과 금호강을 끼고 있는 강창파크골프장은 지하철 대실역에서 10분 거리로 경관이 아름답고 입지조건이 가장 좋은 파크골프장으로 꼽히고 있다. 류영길 기자
궁산과 금호강을 끼고 있는 강창파크골프장은 대구 지하철 대실역에서 10분 거리로 경관이 아름답고 입지조건이 가장 좋은 파크골프장으로 꼽히고 있다. 류영길 기자

그는 여느 파크골퍼들처럼 파크골프에 푹 빠져있다. 그러나 파크골프를 자기건강과 여가활동만을 위해 즐기는 것이 아니다. 파크골프를 매개체로 하여 세상과 벽을 쌓고 있는 어르신들을 밝은 세상으로 이끌어 내 주리라는 사명감으로 뛰고 있다.

“그렇게 하면 안돼요! 옷을 왜 이렇게 입었어요? ...” 그는 때때로 필드에서 어르신들에게 호령한다. 그러나 절대 막말이 아니다. 딸이 부모에게 하듯 정말 사랑하는 마음으로 일깨워드리는 것이다.

“제가 잔소리를 많이 해요. 어두운 색깔의 옷을 입는 어르신에게는 밝은 옷 입어라고 질책도 하죠. 그래도 기분 나빠 안하셔요. 이제는 무슨 일이 생기면 저를 믿고 저한테 얘기를 다 해 줘요.” 김 사무장은 까칠하게 굴어도 믿고 의지해주는 어르신들 때문에 마음이 뿌듯하다고 했다.

김 사무장이 딸처럼 대하니 어르신들도 딸처럼 편안한가 보다. 한번은 공 건지다 물에 빠진 어르신이 흠뻑 젖은 몸으로 김 사무장에게 구조를 요청했다. 김 사무장은 검은색 대형 비닐봉투를 가져와서는 모서리를 잘라 옷을 만들었다. 그것을 입히고는 젖은 옷을 빨아 말려 다시 입혀서 보내기도 했다.

그는 강창파크골프장에서 어르신들의 해결사로 통한다. “우리 사무장님은 만날 생글생글 웃으면서 일해요. 인상 좋고 인자하고 다른 사람보다 세 배 빨리 걸어요. 사명감으로 하는 것 같아요. 우리 사무장님 없으면 이 파크골프장 돌아가지도 않죠.” 대구파크골프 시니어연맹 동호회의 하나인 단풍회 언니들이 이구동성으로 김 사무장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독거노인에게 도시락 배달을 가도 문 안 열어 줍니다. 그냥 문 앞에 두고 가라고 하시지요. 그만큼 마음을 닫고 계시는 분들입니다. 이런 분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게 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김 사무장이 이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김 사무장의 활동을 지켜보아온 허 회장의 말이다.

“저는 65세 이하 친구가 없어요. 거의 70대 80대 90대 친구밖에 없어요. 언니가 없이 자란 저는 이게 오히려 더 좋아요.” 이런 마음을 가진 김 사무장을 어르신들은 ‘하늘에서 보내준 천사’로 여긴다.

그에게는 흔한 계모임도 없고 다른 취미생활도 없다. 그를 바라보는 어르신들이 하나둘 늘어나니 그의 삶은 파크골프에 올인될 수밖에 없다. 그의 마음은 늘 어르신친구들에게로 향해 있다. 두 딸이 출가하여 그에게도 벌써 손주가 다섯이나 있다. 이게 늘 마음에 걸린다. 남편에게도 한없이 미안하다. 그러나 그는 봉사의 발길을 돌릴 수 없다.

김 코치가 봉사자들과 함께 어르신들과 어울려 율동을 하고 있다. 행복플러스봉사클럽 제공
김 코치와 봉사자들이 어르신들과 어울려 율동을 하고 있다. 행복플러스봉사클럽 제공

“저녁에 피곤하여 잠에 곯아떨어져도 아침에 일어나 어르신들이 오실 필드를 생각하면 왠지 새 힘이 솟구쳐요. 신기해요.” 김 사무장은 아무리 지쳐도 오뚝이처럼 일어난다. 어머니가 힘차게 살아가니 딸과 사위들도 어머니의 생활을 지지했다. 어머니가 그저 건강한 모습으로 보람된 일을 하며 지내는 게 감사할 따름이다.

김 코치와 행복플러스봉사자들 덕택에 그린필드로 나온 어르신들은, 자신은 물론 친구까지 데리고 나왔다. 봉사를 받던 어르신이 봉사자가 되는 기적도 일어났다. 케어 하는 자들과 케어 받는 자들이 한데 어우러져 더 힘 있는 봉사단이 되었다. 함께 파크골프장에 모여 노래하고 율동하고 게임을 즐길 때는 천국잔치를 방불케 한다.

“여기는 노인들의 천국입니다. 친척들도 못하는 일을 해요. 집에 있는 것 가져와서 나눠먹고 여기 필요한 게 있으면 서로서로 먼저 가져오려고 하고요. 왜냐하면 감동을 받거든요. 여기 오면 배울 점이 많아요.” 행복플러스클럽에 봉사자로 합류한 서신자 어르신은 김 코치가 있는 파크골프장에 나가는 것이 ‘딸네집’에 가는 것보다 더 가슴 설렌다고 했다.

행복플러스봉사클럽의 활동이 전국 노인자원봉사 우수사례에 뽑혀 노인회 각 지회 수상자들과 함께 보건복지부장관상을 수상한 김영숙 코치(왼쪽에서 세 번째).       대구노인회 제공
행복플러스봉사클럽의 활동이 전국 노인자원봉사 우수사례에 뽑혀 노인회 각 지회 수상자들과 함께 보건복지부장관상을 수상한 김영숙 코치(왼쪽에서 세 번째). 대구노인회 제공

김영숙 코치가 이끄는 행복플러스봉사클럽은 지난 10월, 2019년 대구노인회 노인자원봉사클럽 우수사례 심사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선행은 전국적으로 인정 받아 지난 14일 대전에서 열린 대한노인회 주최 ‘2019년 노인자원봉사 성과보고 및 우수사례발표회’에서도 우수사례로 뽑혀 보건복지부 장관상까지 받았다.

행복플러스봉사단은 앞으로 독거어르신을 찾아나서는 팀, 독거어르신과 대화하는 팀, 이들 어르신에게 골프운동을 가르치는 팀으로 구분하여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파크골프와 그라운드골프로 봉사하는 것이 제 천직인 것 같아요. 아플 여가가 없어요. 꾸밀 줄도 모르고요. 제가 걸을 수 있을 때까지 이 일을 계속하고 싶어요.” 아름다운 헌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김 사무장의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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