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높임말 과용(過用) 사회
(35) 높임말 과용(過用) 사회
  • 조신호 기자
  • 승인 2019.11.18 10:50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과도한 높임말을 사용하는 현상은 일종의 자기 방어기제의 결과이다.
pixabay
pixabay

 

“공군1호기 박 익 기장의 아버지이신 박영철님께서 19일 ①영면하셨습니다. 故 박영철님은 월남전 참전용사로 보훈대상자이시며, 임실호국원에 ②잠드셨습니다. 서울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문 대통령은 조종실로 직접 ③찾아오셔서 박 익 기장을 ④위로 하셨습니다.

문 대통령은 “이 좁은 곳에서 고생이 정말 ⑤많으셨다. 많이 힘드셨을 텐데 깊은 위로의 ⑥말씀을 드린다.” 고 말했고, 박 기장은 “공무에 누가 되고 싶지 않았다.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습니다. (청와대 부대변인 고민정)

대통령이 중앙아시아 3개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하고 나서, ‘서울공항 도착 관련 고민정 부대변인 서면 브리핑’이라는 제목으로 2019년 4월 23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글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청와대에 이렇게 사람이 없을까?’ 라고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① ② ③ ④ ⑤ ⑥ 의 높임말은 누가 보아도 올바른 어법이 아니다. 문맥의 적절성, 즉 화용론(話用論, pragmatics)으로 보면 잘못 된 문장이다.

그 아래의 문단은 앞뒤가 어긋난다. 공영방송 아나운서 출신의 청와대 대변인(그 당시 부대변인)이 작성한 것으로 볼 수 없는 수준 이하이다. 청와대 안에 이 글을 읽고 검토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 큰 문제이다. 누군가 검토했는데도 이러하다면 더욱 난감하다. 유튜버 진성호 방송에서 이 뉴스 브리핑 내용을 언급하면서, 수준 이하의 “초딩 국어 실력(?)” 이라고 통탄한 바 있다. 이러한 뉴스 브리핑은 대통령에게 누를 끼치는 것이라고 지적당하고도 남을 만하다.

필자가 여기서 논하고자 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한 높임말의 과용(過用)이다.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 해야 한다.’ 하지만 오늘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청와대 대변인까지 이러하니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실려 있는 위의 뉴스 브리핑에 들어있는 ① ② ③ ④ 존대말을 바로 잡아, 구어체로 다시 쓰면, “공군1호기 박익 기장의 아버지 박영철님께서 19일 ①영면했습니다. 故 박영철님은 월남전 참전용사로 보훈대상자여서 임실호국원에 ②잠들었다고 합니다. 서울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문 대통령은 조종실로 ③찾아가서 박익 기장에게 ④위로(의 말을 전) 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된다.

예부터 ‘지나친 친절은 오해를 산다!’ 라고 했다. 사십대 중반 어른이 다섯 살 난 사장 아들에게 ‘한 말씀 해 주십시오!’ 라고 한다면 웃음꺼리가 된다. '지나친 높임말은 웃음꺼리가 되고 만다.' 요즘 우리 한국인들이 지나치게 높임말을 사용하고 있으나, 그걸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백화점 직원, 시장 상인, 또는 민원실 공무원 등의 사람들이 한 말을 전달할 때, 특히 젊은 층에서, ‘ooooo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라는 지나친 높임말이 텔레비전에 자주 나온다. 이럴 경우에 ‘ooooo 라고, 말했습니다.’ 라고 하면 된다. 입은 바른데도 말을 삐뚤어지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일반 시민들이든, 청와대 대변인이든 요즘 사람들이 높임말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원인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적 배경에 있다. 악성 댓글 때문에 어떤 연예인이 자살했다는 뉴스를 접하는 많은 시민들이 자기도 모르게 불안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정치인들이 툭하면 고소한다는 뉴스에도 심리적으로 위축된다. 이런 일들이 빈번해지면서 심리적으로 위축된 많은 시민들이 언어 표현에 자기 방어기제(防禦機制, defense mechanism), 즉 ‘자아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속이거나 상황을 다르게 해석하여, 감정적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심리 의식이나 행동’을 취하게 된다.

과도한 높임말을 사용하는 현상은 일종의 자기 방어기제의 결과이다. 높임말을 방패로 삼아 안전을 보장하려는 언행이다. 방송사 마다 특정 화면에 모자이크 처리를 하는 것도 높임말 방패처럼 언론사가 취하는 자기 방어기제로 볼 수 있다. 옷에 붙은 상표를 흐리게 처리하거나 특정인의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하는 것은 혹시 있을지 모르는 항의나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 이다.

입은 바른데 말은 삐뚤어지게 하면서 살아갈 수 밖에없는 오늘의 현실이 안타깝다. 삶이 고해(苦海)라고 해서 그러한가? 아! 인생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