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참전 유공자 장순도 씨의 노년의 행복
6·25 참전 유공자 장순도 씨의 노년의 행복
  • 장명희 기자
  • 승인 2019.11.18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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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을 해로한 아내의 내조 있어 건재
2남 3녀 자식들도 큰 자랑거리
가족의 사랑은 무슨 말로도 부족해

 

인생의 늦가을을 만끽하고 있는 장순도 어르신.              장명희 기자
인생의 늦가을을 만끽하고 있는 장순도 어르신. 장명희 기자

 

장순도씨(93· 대구 달서구 성서서로)를 가을의 끝자락에 다시 찾았다. 아흔을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듬성듬성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은 자연의 순리에도 불구하고 노년의 아름다움마저 느끼게 했다. 주위에 선한 성품으로 소문이 자자하다던 말은 그 인상에서 은은하게 풍겨 나오고 있었다.

-지금까지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 환한 미소로 답하는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와 같다. 성경에 어린 아이 같은 사람이 천국에 가는 열쇠를 얻을 수 있다는 구절이 생각났다. 장순도 씨도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할 때는 아마도 천국의 문에 들어갈 것이라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2남 3녀의 자녀들이 모두 아무 탈 없이 건강하게 잘 지내고, 부모님 말씀을 거역함 없이 저마다 자신들의 뜻을 펼치면서 잘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장순도 씨의 자식 자랑 속에서 따뜻함을 느끼게 된다. 나이를 먹으니까 자식이 그늘이 되어준다고 말했다. 욕심 부리지 않고 주어진 일에 열심히 성실히 살면서 결과에 만족하는 것입니다. 역시 장수하시는 분은 생각이 남다름을 느꼈다.

 

보훈병원 입구에서 다정하게 아내와 포즈를 취한 장순도 어르신.      장명희 기자
보훈병원 입구에서 아내와 다정하게 포즈를 취한 장순도 어르신.      장명희 기자

 

-아내와 어떻게 결혼하게 되어서 이렇게 백년해로를 하시게 되었습니까?

▶아내가 지금까지 건강하게 곁에서 함께 지내게 되어서 너무 고맙기도 하고, 하늘이 특별히 맺어 준 인연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씨 가문은 대구 성서에서 인동 장씨의 가문의 종가로서 유명한 집안이라고 말했다. 지나가는 나그네가 장씨의 땅을 밟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부유했다. 그렇지만 흉년으로 때로는 끼니 걱정을 할 때도 있었다. 그때는 우리나라의 경제가 그렇게 어려운 시절이었기에 누구나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아내 김상분(88) 씨는 고향 마을에서 알아주는 미인이었다. 정말 너무 아름다웠다. 어른들의 주선으로 결혼을 할 수 있었다. 아내는 얼굴도 보지 않고 결혼했다고 늘 투정을 부렸다. 그 시절에는 그러한 일들이 흔했다. 올해로 결혼 70주년을 맞이했다. 지금은 자신 때문에 그런 아름다운 모습은 볼 수 없어서 늘 미안했다. 농사일 때문에 하루라도 편안한 날이 없었다. 인연은 억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천생연분은 하늘이 만들어 준다고 했다. 이렇게 지난날 삶을 되돌아보면 감사할 뿐이라고 했다. 서로 헌신적인 사랑이 백년해로의 비결이라고 했다. 이제는 눈빛만 바라보아도 서로를 알 수 있다고 했다.

 

노부부는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장명희 기자
노부부는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장명희 기자

 

-6·25 전쟁속에서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면서 어떻게 살아올 수 있었습니까?

▶6·25전쟁 이야기를 하면서 장씨는 눈물을 글썽이었다. 그때는 정말 말도 하기 싫은 표정이었다. 강원도 최전선(철원)에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서 밤새도록 행군을 했다. 어떤 때는 식량도 차단되어서 사흘 동안 굶주리면서 행군을 했다. 배고픔과 피곤함에 지쳐 있었다. 밤새도록 행군을 하고난 후 새벽에 먼동이 트는 것을 보면서 매일 보는 태양이지만 감회가 새로웠다. 햇님에게도 기도를 드렸다. 전쟁이 빨리 끝나 평화가 찾아와서 가족 품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간절한 기도뿐이었다. 잠시 소대가 휴식을 취했다. 너무 피곤해서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백발의 할아버지가 잠에서 깨었다. “빨리 일어나라” 고함을 질렀다. 너무 놀라서 잠을 깨고 보니 벌써 적군에게 포위가 되었다. 정신없이 달렸다. 총알이 빗발치듯 날아왔다. 빗물 사이로 달린다는 말이 생각났다. 어디선가 수류탄이 하나 날아왔다. 총대로 막았지만 그 파편이 온 몸을 덮었다. 다리를 절룩이며 극적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장순도 씨의 상기된 얼굴에서 긴박한 전쟁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전쟁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어떨 때가 가장 행복합니까?

▶무엇보다도 대한민국에 평화가 찾아와서 너무 기쁘다. 하루 세 끼를 건강한 밥상을 맞이할 수 있어서 지난날 힘들 때 생각하면 모든 것이 감사하다. 지금 풍요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 속에서 나 자신도 그런 사람 중의 한 사람이라는 것이 가슴 뿌듯합니다. 지난날 선조들이 피와 땀으로 만들어 놓은 대한민국을 후손들이 행복하게 누리는 것을 보면서 행복했다.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아내가 곁에서 늘 다독여 주면서 살아온 추억들을 이야기하며 마지막을 준비하는 것이 어쩌면 행복인지도 모른다. 아내는 6·25 전쟁 중에서도 늘 기도하면서 기다려 주어서 고맙기도 했다. 그 덕분에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새벽에 일어나서 기도하는 모습이 너무나 진지하고 어떨 때는 엄숙함마저 느끼게 합니다. 부부는 서로를 위해서 아끼고 사랑하면서 생이 끝날 때까지 사랑해도 부족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지금 이 순간 모든 것이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짧은 덕담을 하면서 빙그레 웃으시는 모습에 생각은 모든 것을 만드는 동기가 됨을 느꼈다.

장순도 어르신 내외가 아들과 함께 가을나들이에 나섰다.       장명희 기자
장순도 어르신 내외가 아들과 함께 가을나들이에 나섰다.      장명희 기자

 

-자식들이 효자라고 효녀상을 받기도 했다는데요?

▶자식들이 부모에게 걱정을 끼쳐드리지 않아서 너무 고맙기도 합니다. 효자가 따로 있습니까? 스스로 찾아서 주위 사람들에게 따뜻한 인정을 베풀고 칭찬을 들으면서 가정교육을 잘 받았다는 것이 효자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들인 장종식(65·교육공무원) 씨는 주말이면 야외로 구경을 시켜주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사준다고 자랑한다. 너무 고맙죠. 고마운 것은 큰 것이 아닙니다. 작고 소소한 일상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딸 장양희(56·작가) 씨는 매일 아파트 마당을 걷게 해주면서 재활운동을 시켜줍니다. 매일 주위 사람들을 감동시켜서 효녀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너무 착합니다. 아내는 늘 장씨를 닮아서 착하다고 했다. 성품도 인품도 모든 부모를 닮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너무 가정이 다복하고 아름다운 인정이 넘치는 가정이라 본받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장씨를 보면서 6·25전쟁 이야기의 파란만장한 역사의 증인이면서 굳건한 애국심은 정말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속에서는 아픔이 있었다. 장씨의 아픔이자 우리 모두의 아픔이었다. 이제는 평화로운 모습에서 노년의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아픔 속에서 즐거움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언제나 행복하게 마지막 이별의 순간에서도 전쟁의 상흔은 잊어버리고 좋은 기억만 가지고 천국에서 아내와 함께 평화를 누리기를 기도해본다. 또한 70주년의 결혼기념일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한 다발의 장미꽃으로 축하를 드렸다. 부부의 진정한 사랑을 배워보면서 내 삶을 되돌아보았다. 많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취재에 응해주셔서 건강함을 과시했다.

문 앞에 새겨진 자랑스러운 국가유공자 명패        장명희 기자